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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전상범, 초중고 미술교과서를 혁신한 조각가

김정


좌) 김정과 전상범, 학회 집담회 때, 우) 김정, 전상범 드로잉

 
김정, 전상범 드로잉


전상범 필적


조각가 전상범 ( 1926 -99) 선생은 1950년 교직에 있다가 교육부로 발탁되면서 일본잔재가 남아있던 문교부의 미술교과서를 개혁한 장본인이다. 1992년 9월 오전, 필자는 이문동에서 독신 생활하는 전상범 선생댁을 방문했다. 전날 한국일보 청소년미술 심사 후 폭음으로 무사한지 궁금했는데 언제 그랬느냐 하는 표정으로 멀쩡하셨다. 커피 들면서 이런저런 얘기 중에 “내가 1953년 배제중 교사 시절 미술교과서엔 도화(圖畵)나 공작(工作)이란 말을 일본 교과서 그대로 사용했다오. 그리곤 문교부로 이동 발령받았죠. 


당시 나는 도화란 용어를 어떻게 우리말로 바꿔야 할까 고민 고민하다가 ‘그리기’, ‘만들기’, ‘꾸미기’로 만들어 써봤어요. 그리고 슬며시 몇 학교에 반응을 조사했지. 현장 반응이 아주 좋았다오, 그래서 희망을 품고 1960년 중반부터 미술교과서에 그리기, 만들기, 꾸미기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게 최초요. 해방 후 교과서 역사로 보면 그게 큰 사건이었지.” 필자도 1950년대 도화와 공작으로 배웠었다.


필자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술교과서는 1903년 10월 3일 개교한 평양 숭의여학교의 교과에서 ‘도화’ 과목과 ‘공작’으로 분리기록, 교육이 실시돼 왔다. 그 이후 국내 국정교과서도 계속 1955년까지 60여 년간 일본식 도화, 공작으로 사용돼 왔음이 증명됐다. 이런 일본식의 과목과 명칭을 전상범 선생이 과감하게 바꾼 것이다. 아마도 그건 예술가의 대담성이었다. 


그는 조각 전공으로 종이 찢기를 입체로 만드는 시도까지 했다. 색종이에서 탈피해 신문지 활용한 입체조형, 잘게 찢은 종이를 위에서 밑으로 휘날리는 퍼포먼스로도 응용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입체 작업하는 조각가로서 출발해 다분히 그리기에서 벗어난 행위로 넓게 구성됐다. 그런 교과서를 한국식 신개념으로 만들기를 10년 지나자, 이번에는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일본 교과서에서 우리의 꾸미기, 만들기를 따라오는 현상까지 보이게 된 것이다. 그만큼 종이 활용에 대한 입체적 조형성은 전 선생의 창의적 미술교육이었다.


필자는 한국미술교육의 1950-60년 학술적 도입기에 크게 기여한 3인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었다. 전후 피바디교육사절단연구의 염태진, 미술교육행정개혁 성공의 전상범, 청소년미술교육 실천의 최덕휴 등 3인이었다. 이 3인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미술교육 근현대연구 선구자들이다.


전상범 선생은 손주먹이 매우 커서 어려서부터 장사라고 했다. 장난기 섞인 얼굴도 그렇지만 목소리도 탤런트 같은 멋을 풍긴다. 음주량은 앉은자리에서 막걸리 5병은 한입에 드셨다. 힘이 좋아 쇠를 번쩍 들고 작업했다. 주변에선 고릴라같이 생겼다고 ‘고조각 선생’이란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내가 그분을 가깝게 지내게 된 건 한국일보 주최, 청소년 미술대회심사였다. 해마다 3일 정도 중앙고교 강당에서 지냈다. 고정 심사위원은 필자를 포함한 안상철, 정창섭, 전상범, 이규선, 박철준, 유경채, 임영방이었다.


심사 끝나는 날이면 필자는 전상범 선생과 영동시장의 순댓집, 돼지머리 집을 번갈아가며 막걸리를 마셨다. 전 선생은 비계 한접시와 돼지국밥에 막걸리면 최고였던 분이다. 술 드시는 전 선생의 행복한 얼굴은 만족의 극치었다. 평소 막걸리만 드셨다. 그분의 웃는 모습은 풍부한 인간성과 멋진 아이디어 창조가 결합한 아름다운 겸손으로 보인다. 


그분 동생은 오페라왕이며 수채화 대가인 화가 전상수 씨다. 두 형제가 서울대 미술 동문이고 부친은 유명한 전영택 목사님이다. 전상범 선생은 필자가 1984년 창립한 한국조형교육학회에 자문 교수로 특강도 해주셨다. 세미나, 집담회(集談會)에서 거의 매회 참여하는 등 인간적 그릇이 큰 분이다. 


1995년 11월 18일 제26차 조형교육학회 집담회 때 초청된 인천교대 노재우 교수는 강의 발표 중 전상범에 관한 부분에서 “전상범, 편수관이 문교부에서 미술 교과서 시범안을 사전보고하는 회의 때 장발 도상봉, 이마동, 손재형 등 원로들이 참석평가 했다. 전상범 편수관의 현대 예술구상과 실천방향이 매우 잘됐고, 열심히 노력한 솜씨라는 평가결과를 얻었다”고 증언하였다. 이런 증언으로 전 선생의 미술행정력은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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