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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박석호, 박항섭, 김영교 1960-80년대를 장식한 분들

김정




                                                                상) 김정, 박석호, 김충선 드로잉
                                                                중) 김정, 박항섭 드로잉
                                                                하) 김정, 김영교 드로잉

박석호(1919-94) 선생을 1970년대 구상전에서 뵌 뒤, 덕수궁 학생미술대회 때 그와 박고석,필자 3인이 4시간 동안 심사를 한 적이 있다. 5시 심사가 끝날 무렵엔 박석호 선생은 담배 한 갑을 다 피우셨다. 평상시 하루 두 갑반의 흡연량이었다.

박석호 선생은 충북 옥천출생으로 1949년 홍익대 1회 졸업 후 1961년 홍익대 전임강사였지만 1967년 구상전 창립에 참여하며 대학을 그만두었다. 본인 스스로 “난 작업을 항상 시간 맞춰 그린다”고 하셨다.

1988년 수표교회에서 이춘기, 김재임 부부의 장남 결혼식 때 박석호 선생을 만나, 피로연에서 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신랑 엄마 재임씬 내가 여고 재직시절 가르쳤던 제자였죠. 세월이 흘러 벌써 아들 장가보내네요” 라며 웃으셨다. 

필자가 묻길 “그럼 박 선생님은 어느 시절 누구한테 배우셨는지요” “오래됐지요. 조선미술협회에 부설된 연구소에 그림을 배우러 갔었고, 그때가 아마도 1946년일 겁니다. 

그때 회장이 임용련이었고, 이북 오산중학교에서 이중섭을 가르치셨던 당시 엘리트 교사였지요” 임용련은 미국에서 미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그의 부인은 백남순으로 당시 여류화가였다. 

임용련과 백남순 두 분이 만나게 된 인연은 “임 선생이 구라파(유럽) 여행 때 백남순 씨를 만나 알게 되어 결혼을했다”는 박석호 선생의 설명이다. 그가 연구소 다닐 시절 미술 지도해준 화가는 고암 이응노였다. 고암 선생은 데생을 가르치셨는데, 아무

거나 닥치는 대로 그려보라고 했다. 당시 데생지도 선생은 고암과 청전 이상범이라고 했다. 이응노 선생의 부인은 박인경인데, 이화여대 제1기생이었다. 그녀가 연구소를 드나들던 시절에 고암 선생과 눈맞아 인연이 되어 결혼했다고 증언했다. 박석호 선생은 “나도 그 연구소에서 임용련 선생의 조수(助手) 노릇을 1년간 했지요”라고 설명하셨다.

박항섭(1923-79) 선생은 황해도 출신. 1943년 일본 가와바다미술학교(川端畵學校)를 나온 뒤 고교교사를 하다가 서라벌예대에 출강했다. 평소 박고석 선생 왈 “박항섭은 미남형이고 멋쟁이 신사 타입이지”라고 칭찬하시면서 “고집도 센 작가”라고 하셨다. 

1968년 구상전 공모심사장에서 박고석, 박항섭, 박석호, 홍종명 4인이 심사하던 중, 박고석 선생이 우수작으로 뽑아놓은 것을 박항섭이 내려놓자 두 분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박고석 왈 “이거이 작품구성이 조티아나?”하자 박항섭 왈 “그렇지만, 제 맘엔 안 드니까요” 6세 후배인 박항섭의 거부로 묘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박석호 선생이 결국 박고석 추천작을 올림으로 정리됐다. 

박항섭, 박석호 두 분 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분인데 박항섭 선생도 박석호 선생 앞에선 조용했다고. 두 박 씨의 날카로운 대결엔 박석호 선생이 약간 강했다고 박고석 선생의 후일담이었다.

김영교(1916-97) 선생은 대구출생이지만, 일본유학 후 부산에 정착한 분으로 내성적 성격이셨다. 부산의 1세대 작가(1953-54)로 토벽동인 전 멤버로 맹활동하셨다. 1980년대 숙명여대 재직하실 때 앙가주망그룹참여로 김영교 선생을 만났다. 

장욱진 선생보다 한 살 위로, 모임 땐 언행도 조용한 분이셨고, 특히 장 선생이 참석하실 땐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셨는데 음주를 못 하셔 장 선생하곤 어색했기 때문이다. 동인활동 2년 후 정년퇴직 뒤엔 모습을 감추셨다.

그 후 1993년 필자가 도봉산 산행 중 우연히 근처 밭에서 일하시는 김영교 선생을 만났다. “요즘 잘 지내시는지요?” 여쭈니 “예 그냥 그럭저럭”하셨다. 건강이 안 좋으신 모습이었다. “그림 작업도 여전하신지요?” 안부 여쭈니 웃음만 보이시면서 슬슬 사라지셨고, 4년 뒤 조용히 작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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