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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한묵, 김창억, 추상과 구상을 자유로 넘나드신 원로미술인

김정



김정, 한묵 드로잉


한묵(1914-2016) 선생을 가까이서 직접 만나 뵌 적은 딱 두 번이었지만 박고석 선생을 통해 1960년대부터 전해 들어 익숙한 분이다. 한묵 선생은 한평생 거의 프랑스에서 지내셨다. 박고석 선생의 말을 빌리면 “한묵 선생는 성질이 좀 화끈한 데가 있디, 오랜 세월 서로 신뢰하니깐 나도 그 분을 좋아하디....” 하셨다. 한묵,박고석 두 분은 비슷한 시절을 사셨지만 한묵 선생이 3살 위셨다.

1990년 10월 20일 점심때였다.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이만익, 필자, C 씨, P 씨 등 4명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묵 선생이 들어오셨다. 식사하던 우리 일행은 깜짝 놀랐다. 한묵 선생은 “아 만익이... 오랜만이네 잘 지내?” 하시며 우리가 앉아있는 식탁으로 오셔서 옆 의자를 끌어 합석해 이만익 선생에게 “요즘도 00를 좀 밝히냐? 허허허” 하셨다. 미처 대답할 여유도 없이 “요즘은 너도 늙어가느라 옛날 파리 시절보단 좀,” 하고 덧붙이자 이만익 선생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하하하, 에이 참 그만 좀 하시죠. 여긴 파리가 아닌 서울인 거 아시죠…?” 하면서 식당 종업원을 불러 “여기 식사 주문 좀 합시다!”라고 큰 소리로 한묵 선생의 말을 가로막았다. 

한묵 선생은 젓가락으로 반찬 한두 개 집어 드시곤 웃다가 “아 참! 내가 깜빡 잊은 게 있어서. 난 지금 가야되. 나 간다” 하시면서 아마도 보실 일이 생각나신 듯 급히 나가셨다. 우리 일행은 다시 밥을 먹었다. 이만익 선생은 “한묵 선생은 누구도 못 말려요. 하하하, 옛날 옛적 얘기를 웃자고 하신 거겠죠~” 라며 멋쩍은 듯 본인 이야기를 덮었고, 일행들도 다 웃자는 얘기로 끝냈다.

느닷없이 오간 대화였지만, 한묵 선생의 바로 직언하시는 버릇을 목격했던 현장이었다. 당시 77세였지만 마치 청년 같으신 정열이 있었다. 한묵 선생은 한국 근현대시대의 원로화가 중 한 분이다. 한묵 선생이 식당 오셨던 날 이틀 뒤, 현대화랑에선 한묵 초대전(1990.10.22-10.31)이 있었으니, 아마도 전시 때문에 인사동에 들르신 것으로 추정됐다. 잠시였지만, 마치 서부영화의 액션 장면처럼 기억이 생생했다.


김정, 김창억 드로잉


김창억(1920-97) 선생을 우연히 만나 뵈면서, 옛날얘기를 듣게 되었다. 1992년 청담동에 있던 효천화랑이 주최한 김정 아리랑 초대전(10.23-11.5) 기간이었다. 지금의 청담동은 한산하지만, 당시 청담동엔 자고 나면 화랑이 생기던 1990년대 시절이었다.

1992년 11월 4일 전시종료 하루 전 오후 4시경 효천화랑에 잠깐 들렀는데, 노인 한 분이 서서 돌아보셨다. 가까이 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그때 김창억 선생을 처음 만났던 것이다. 김창억 선생은 “지인을 만나고 지나가다가 전시가 있어서 그냥 들른 겁니다”라고 하셨다.

사람인연도 묘하지만, 차를 대접하며 잠시 대화를 했다. 건강은 그냥 보통이셨으나 힘이 없어 보였다. 김창억 선생을 뵈니 장욱진 선생이 생각났는데, 얘기 끝에 장욱진 선생의 경복중학시절 얘기를 하신다.

“장욱진 선생도 경복중학교 동창이죠. 동문은 권옥연, 이대원, 유영국 등 11회들이에요. 미술 선생은 일본인 사또구니오(佐藤九二南)였고, 당시 우리는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그래서 1960년 초 미술 교사 이름을 따고, 제2고보란 이름도 따서 ‘이구회전(二九會展)’을 창립하여 5회전까지 전시를 했지요. 이구회전 모임 장소는 시청 앞 반도화랑(대표 이대원)이였어요.” 모이는 날이 바로 술 먹는 날이었고 당시 반도화랑의 여직원이 바로 박명자 여사로 지금의 현대화랑 대표였다고 얘기해 주셨다.

술자리에선 유영국 손금이 늘 화제가 됐었다고 언급하셨다. “유영국 선생 손금은 바로 특이한 일자(一字) 직선이었지요, 양조장 사업은 잘 안되어 문 닫게 된 거래요.” 유영국 선생과 생선 횟집에 술 마시러 같이 가면 생선 이름을 천재처럼 다 안다는 것이다. 그 비결의 에피소드도 알려주셨다. “그분이 부친 사업이 망해 잠시 고깃배 아르바이트 생활도 했지요. 그때 익힌 생선 이름이죠.” 유영국 선생의 폭넓은 인간적 도량은 젊을 때 고생이 약이 된 걸 보여주신 인생 성공신화 같았다. 대화 중 장욱진 선생과 임완규 선생이 경복중에서 양정중으로 옮겼던 숨은 일화도 있었으나,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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