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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파울 클레(Paul KLEE), 꿈에서나 뵐 분이 운명의 장난처럼, 바로…

김정

1 파울 클레 어린 시절, 김정 드로잉


1950년대 중고교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장승업, 장발, 고흐, 세잔, 클레, 칸딘스키를 보며 지냈다. 나는 클레(Paul KLEE, 1879-1940) 그림을 마치 동화 그림처럼 좋아했다. 그 후 대학원 석사 논문도 「클레의 회화적 추상성에 관한 연구」를 썼고, 여타에도 글 쓴 적이 있다. 클레를 좋아하다 보니 내 책장엔 클레 관련 책이 모아졌다. 나를 평소 귀여워해 주신 원로화가 박근자 여사가 1969년 미국 여행 다녀오신 후 “평소 클레를 좋아하는 거 같아 한 권 사 왔지”라며 책을 선물로 주셨다. 내가 클레 좋아하는 걸 아신 모양이다. 클레는 마치 먼 할아버지처럼 느끼다 보니, 클레는 아리랑을 어떻게 느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 적 있다.

1981년 나는 서독으로 공부하러 갔다. 서독 남부 아우크스부르크대학원 잔트너(Hilda SANDTNER, 1919-2006) 지도교수와 미술전공 학위문제로 고민에 부딪혔다. 지도교수는 박사 학위공부를 권했고, 나는 학위보단 작가로서 석박사 융복합과정공방작업을 희망했다. 의견 충돌은 쉽지 않아 한 달간 힘든 고통이었다. 진통 끝에 내 의견이 수용됐다. 박사학위 없는 1-3단계 공방작업 4년 연구였다. 이것은 이른바 독일 화가의 아버지로 일컫는 알브레히트 뒤러(A. DURER, 1471-1528)가 그의 스승인 미하엘 볼게무트(M. WOHLGEMUTH, 434-1519)에게 공방작업 수업을 받던 최고수준의 전통방식 모델이었다. 지도교수는‘고생하면서 박사학위 없이 실기하는 건 드물다’고 하시며 인간적 대우를 해주신 듯했다.


2 오버버거 교수, 김정 드로잉


나는 판화 및 회화작업실은 지도교수와 공동사용했고, 거처는 지도교수가 대학 앞 꼬마방 1년을 확보해주셨다. 그것이 1단계 공방작업 과정이었다. 제1단계: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연구, 2단계: 슈타트베르겐(Stadtbergen) 연구, 3단계: 민델하임(Mindelheim) 연구 등 모두 4년 작업과 답사연구였다. 1, 2단계는 회화 및 판화 작업 등 2년 연구, 3단계는 미술관 현장탐방 및 작가토론연구 2년이었다. 당시 동서독 분단으로 서독 시절이었다.


3 잔트너 교수, 김정 드로잉


지도교수인 힐다 잔트너 교수는 뮌헨대 미술과를 나온 여류작가다. 큰 오빠는 탱크병, 둘째 오빠는 보병으로 참전해 2차 대전때 전사하였고, 두 아들을 동시에 잃은 충격으로 부모는 쇼크사로 결국 가정이 파탄됐다. 잔트너 교수와 언니 등 두 자매는 갑자기 고아가 된 채 외롭게 공부만 하다가 평생 독신으로 두 할머니가 됐다. 그런 아픈 가정사를 안고 교수로 성장해온 탓인지 매사에 꼼꼼하고 자상한 모습이셨다. 이웃에 살며 힘든 1년을 보내던 나는 자연스레 두 노년 자매의 양아들이 됐다. 잔트너 교수는 내 모친 연령과 비슷했고, 언니도 퇴직교사 노파였다. 고생하는 내가 안됐는지 두 할머니는 어미의 마음처럼 채소(Salat)도 가끔 갖다 주셨다. 나 홀로 객지 생활고에 비싼 채소 못 사 먹는 걸 보신 듯했다. 당시 나는 영양이 나빠 치아가 자고 나면 빠지던 힘들었을 때였고, 현재 틀니는 그 시절이 원인이다.

3단계 시절은 민델하임연구다. 40분 거리 뮌헨의 렌바하우스(Lenbach haus)미술관을 자주 갔다. 렌바하우스는 독일 표현주의와 청기사 그룹의 멤버였던 칸딘스키, 클레, 마크, 마케, 뮌터 등과 깊은 관련 있는 미술관이다. 특히 클레는 젊은 시절 남독 무르나우(Murnau)를 오가며 작가 능력을 키웠다. 무르나우는 남독 알프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여기엔 클레, 칸딘스키, 마크 등이 중심이 된 화가 작업촌이다. 결국엔 청기사 그룹을 낳게 한 무대였다. 그들은 시골에만 머물 순 없고 밥벌이 때문에 가끔 뮌헨 등 도시로 나와 돈을 벌어야 했었다.

그때 클레는 33세. 뮌헨에서 미술교습소를 했을 때 오버버거(J.OBERBERGER, 1895-1968)라는 17세 청년이 클레 화실을 드나들며 데생과 이론을 배웠다. 그 뒤 오버버거는 뮌헨대학을 졸업 후, 뮌헨대 교수가 됐다. 그런 오버버거 교수의 뮌헨대학 제자가 바로 나의 스승인 잔트너(H. Sandtner) 교수였다.

따라서 스승과 제자 관계를 보면, P.클레(1879-1940), J.오버버거(1895-1968), H.잔트너(1919-2006), 김정(1940- ) 순으로 된다. 다시 역순으로 보면, 김정, 잔트너, 오버버거, 클레다. 

결국 클레-오버버거-잔트너-김정으로 이어진 스승 제자 맥이다. 우연치고는 정말 놀라웠다. 나는 꿈같은 현실을 보고 한동안 멍했었다. 내가 청년 시절부터 그토록 좋아했던 클레, 물론 두 단계를 거쳤지만 참으로 묘한 사제관계다. 이런 관계를 알고 당시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게 꿈이냐 생시냐’를 혼자 느끼며 마치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너무도 신기하고 흥분돼서 잔트너 지도교수에게 나의 청소년 시절 클레 얘기를 하니, 들으시곤 “정말 기적 같구나”라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클레가 살던 남독 무르나우(Murnau)를 다시 가서 뮌터(G.MUNTER 칸딘스키 애인)의 집을 비롯, 동네도 스케치했다.


4 클레 일기와 김정의 한국기록노트


클레가 19살부터 쓴 일기(Paul KLEE Tagebücher)는 독일 화가의 연구 사료가 됐다. 형식 없이 자유로 쓴 클레의 기록은 당시 화가들 인문학연구에 크나큰 보물이었다. 클레 기록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었다. 필자도 한국 작가의 숨은 얘기를 간단히 적어왔지만, 클레 기록 이후에 인문학적 연구의 자세로 더 깊게 기록하게 된 계기가 됐다.


5 클레 책


재독시절 쾰른에서 공부하시던 권영필 교수님도 만나 하룻밤 신세 진 고마움도 있고, 프랑크푸르트 한국일보 남정호 특파원님에겐 며칠씩 묵던 감사함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괴팅겐의 서수연 님도 감사드린다.

필자 귀국 후 스승이신 잔트너 교수는 생전에 아들 나라 방문을 희망, 내한하셔 1986년 4월 20일 세종호텔 금강홀 한국조형교육학회 창립 2주년 기념 세미나에 참석해 격려 말씀도 해주셨다. 경복궁, 박물관, 용인 민속촌 등 4박 5일 체류하신 뒤 귀국, 민델시립미술관에서 서울 스케치 전을 하셔, 독-한 양국 친선의 애정을 보이셨고, 2006년 88세에 타계하신 큰 스승이며 여류작가셨다.


6 최경한


7 이열모

본 연재를 끝내면서 언급지 못한 김상유, 김원, 김윤순, 김종휘, 김화경, 박길웅, 변영원, 유영국, 이열모, 정병관, 최경한, 하동철, 한봉덕, 한풍렬 님 등 아쉬움을 남긴 채 마친다. 자료를 찾느라 필자도 힘들었지만, 2년여 애쓰신 편집부 여러분도 감사드린다.

8 앙가쥬망수첩


미술계 외에 언론 법조 문학 등 각계 여러분이 ‘본 연재는 화가를 뛰어넘는 한국 문화의 소중한 숨은 얘기로 흥미 있게 읽었다’며 격려해 주셨고, ‘미술 인문학의 새로운 관심 분야를 개척했다’는 문화계 원로분들의 격려 말씀도 정중히 받아들이며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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