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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달러 들고 작가 스튜디오 맹렬히 누비던 루벨 부부, 유망주 발굴 육성하는 미국 최고의 ‘아트조련사’ 되다

이영란


돈 루벨, 메라 루벨 부부



지구상에 미술애호가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이 부부처럼 끝없이 ‘발로 뛰는’ 애호가는 흔치 않다. 주급 100달러를 받던 신혼 초부터 작가 작업실과 화랑을 매달 수십 곳씩 찾으며 작품을 음미하고, 창작활동을 목도했다. 그렇게 반세기 동안 미술품을 열정적으로 수집했던 미국의 루벨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돈 루벨, 메라 루벨(Don & Mera RUBELL) 부부는 ‘작품이 탄생하는 창작의 산실을 찾아, 작가와 대화를 나눈 후 그림을 수집한다’는 원칙을 컬렉션 초기에 세웠다. 이 원칙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루벨 부부가 방문했던 스튜디오는 수천 곳이 넘는다. 모름지기 아트컬렉션은 작품 평가는 물론이거니와, 작가의 됨됨이와 예술철학·투지 등을 두루 점검한 후 이뤄져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두 사람은 브룩클린대 도서관에서 만났다. 3년의 연애를 거쳐 돈이 24살, 메라가 21살 때인 1964년 결혼했다. 돈은 코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의대에 진학한 시기였고, 메라는 막 교사가 됐던 시기였다. 월수입이라야 4-500달러였지만 이 부부는 매월 25달러를 그림 사는데 썼다. 메라는 “급여를 받으면 조금씩 따로 떼어, 작품을 샀다. 당시 경제불황이 극심해서 청년작가들은 상점 초입에 화구를 들여놓고 그림을 그렸기에,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시작한 작품 수집은 50년이 흐른 오늘, 6,800점이란 방대한 컬렉션으로 귀결됐다. 작가 수도 840여 명에 이른다.


마이애미, 워싱턴DC에 호텔과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루벨 부부는 사실 엄청난 부호는 아니다. 재산이 수조 원에 달하는 슈퍼리치 컬렉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들의 컬렉션 리스트에는 장 미쉘 바스키아, 키스 해링, 신디 셔먼, 야요이 쿠사마, 제프 쿤스같은 쟁쟁한 작가들이 올라 있다. 금액으로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 찰스 레이, 마우리치오 카텔란, 폴 매카시처럼 대단히 전복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포함됐다. 일반 컬렉터가 수집을 꺼리는 미디어아트와 개념미술도 다수 보유 중이다.



찰스 레이의 <오 찰리, 찰리, 찰리…>는 1992년 독일 카셀도큐멘타에 출품됐던 조각이다. 8명의 실물 크기의 벌거숭이 남성마네킹들이 난잡한 파티를 벌이는 장면을 희화화한 이 조각을 본 부부는, 미국으로 돌아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자 결국 매입했다. 주지육림에 빠진 이들을 낱낱이 묘사해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많지만, 부부는 “예술이란 때론 우리가 감추고자하는 이면까지 드러내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1990년대부터는 아들 제이슨 루벨(47)까지 가세해 3인 합의 체제로 컬렉션을 이어가고 있다. 세 사람이 모두 동의해야 결정이 내려진다. 1994년에는 마이애미에 전시관을 마련하고 ‘RUBELL Family Collection(약칭 RFC)’이란 이름으로 수집품을 대중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루벨 부부는 재능은 있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해 스타작가로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수중의 돈이 얼마 안돼 어쩔 수 없이 덜 알려진 작가에 주목했다”고 토로하지만,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오늘날 유명작가로 등극한 이들의 초기 주요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게 RFC의 특징이다. 헝그리 정신과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 날의 치열한 투혼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이어서 그 울림은 만만찮다. ‘초심이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루벨 부부는 ‘될성부를 작가’라 판단되면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 작품 전반을 살핀다. 그리곤 한두 점이 아니라, 여러 점 또는 거의 전량을 수집한다. 또 그 작가가 유명세를 얻기까지 지속적으로 후원하면서, 작품을 계속 사들인다. 하지만 스타덤에 오르면 또다른 유망주에게 눈을 돌린다. 이러한 전략 때문에 루벨부부의 컬렉션은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방대하고, 가장 도전적이며, 가장 압도적인 개인컬렉션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루벨 부부에 의해 유명작가로 발돋움한 사례는 일일이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키스 해링을 필두로 리차드 프린스, 다미안 오르테가, 존 밀러, 아론 커리, 스털링 루비, 헤르난 바스 등이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사이 톰블리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 오스카 뮤릴로는 루벨 부부가 첫 개인전을 26살 때 열어줌으로써 단숨에 ‘어린 스타’로 등극했다. 뮤릴로의 회화는 뉴욕 필립스경매에서 추정가의 10배가 넘는 금액에 팔리기도 했다. 



리차드 잭슨, The Blue Room, 2011



오늘날 ‘루벨 부부가 점찍은 작가’라는 타이틀은 미술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작가’로 치환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부부에게 발탁(?)되길 염원하는 작가들이 부지기수다. 화랑 또한 마찬가지다. 가진 돈이 부족해 무명작가에 주목했던 루벨 부부는 오늘날 미술계 ‘최고권력자’가 됐고, 글로벌 미술계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과의 만남은 부부를 본격적인 컬렉션에 진입하게 했다. 1981년 루벨 부부는 큐레이터였던 해링을 Mudd클럽에서 맞닥뜨렸다. 돈 루벨을 ‘부인과 함께 미술품을 곧잘 사러 다니는 의사컬렉터’로 간파했던 해링은 “큐레이터로 활동하지만 실은 나도 아티스트다. 내 첫 개인전에 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부부는 전시장을 찾았고, 씨티뱅크에서 아트 어드바이저로 일하던 제프리 다이치와 안면을 트게 됐다. 해링의 작품 한점을 사들인 다이치의 조언에 따라, 부부는 출품작 전체를 매입했다. 30여 년이 흐른 오늘날 해링의 작품은 점당 수억, 수십억 원을 호가하지만, 당시만 해도 값이 아주 쌌다. 그런데 해링의 초기작은 더없이 재기발랄하고, 에너지로 가득 차 가치가 매우 높다. 두 사람은 1990년 해링이 에이즈로 숨질 때까지 10년간 후원했고, 해링의 부모를 만찬에 초대하는 등 호의도 베풀었다. 자식을 골칫덩이로만 여겼던 부모는 이후 생각을 바꿨다.


1990년대 초 뉴욕에서 마이애미로 근거지를 옮긴 부부는 1993년, 마약과 불법무기를 몰수해 보관하던 시(市)의 낡은 건물을 싼 값에 매입해, 뮤지엄을 조성했다. 이듬해에는 4만 5,000ft²(1,264평)의 창고에 RUBELL Family Collection이란 새 간판을 내걸었다. 현대미술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마이애미로선 매우 의미 있는 뮤지엄이 탄생한 것이다. 또한 루벨 부부는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조직위와 함께 출범시키기도 했다.


아들 제이슨의 제안으로 ‘Contemporary Arts Foundation’을 설립한 부부는 괄목할만한 대형 기획전을 꾸준히 펼쳐왔다. 흑인작가 30명의 작업을 모은 ‘30 Americans’가 한 예다. 역량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를 찾기 위해 두 사람은 무려 12개 지역을 탐방했다. 이 전시는 큰 돌풍을 일으켰고, 주요 미술관에서의 순회전이 이어지고 있다. 루벨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 50주년과 RFC뮤지엄 개관 20주년이 겹친 지난 2014년에는 중국 유망작가를 소개한 ‘28 Chinese’전을 개최했다. 새롭고 파워풀한 중국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부부는 10년간 중국 각지를 6차례나 찾았고, 100곳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이 전시 또한 샌프란시스코, 샌안토니오로 이어졌다. 올해는 여성작가들의 작업을 집대성한 ‘No Man’s Land’전을 기획했다. 컬렉션 50주년을 기념하며 부부가 펴낸 도록을 살펴본 작가 리차드 프린스는 “놀랍다. 예리한 인식과 안목의 결과물이다”고 평했다.


루벨 부부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초보자들이 컬렉션을 시작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가?”이다. 50년간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이어왔기에 그 비결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부부는 “많이 보고, 많이 읽고(연구하고), 그리고 바로 실행하라”고 강조한다. 메라 루벨은 “좋은 작품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일은 결코 없다. 당신이 예술에 다가가야 한다”고, 돈 루벨은 “예쁜 그림, 장식적인 그림은 소용없다. 낯선 그림을 골라라”고 조언하고 있다.


일각에선 루벨 부부가 방대한 컬렉션을 일궜으면서도 작품 기증에 인색하다고 비판한다. 이에 부부는 “우리는 문화적으로 척박했던 마이애미 우범지대에 뮤지엄을 열어, 예술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작품도 언제든 대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너나없이 유망작가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작금의 미술계에서, 장장 50년에 걸쳐 이를 치열하게 실행해온 루벨 부부는 팔순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창작의 산실’을 누비고 있다. 언제나 그래 왔듯 올블랙 패션에, 스니커즈 차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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