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사실은 작품판매액이 조(兆) 단위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750억 원의 제작비도 놀라웠지만 한 건의 전시로 조(또는 수십조) 단위 매출을 기록했다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 비밀은 ‘영리한’ 허스트가 189점의 출품작을 산호, 보물, 복제라는 버전 아래 점당 3점씩 뽑아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그림(1595년 작)을 조각으로 패러디한 <메두사>의 경우 값이 400만 달러(45억 원)였는데 모든 버전이 팔린 것은 물론, 2점의 AP(작가보유분)까지 팔라는 성화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케이트 모스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 금 세공 작품인 <원숭이> 등 컬렉터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조각들이 적지 않았던 데다, 평균가격 대가 100만-500만 달러를 호가해 총매출은 훌쩍 뛸 수밖에 없었다. 작품판매는 화랑인 가고시안과 화이트큐브가 했지만 이 모든 것을 내다보고 진짜와 가짜, 고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로드쇼’의 장(場)을 마련한 것은 피노였다. 수년 전부터 ‘인터넷 세대 이후의 미술’을 꿈꿔왔던 그의 통찰력과 배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피노 회장은 6월에도 빅 뉴스를 터뜨렸다. 파리 중심부 레알 지역의 옛 상업거래소(Bourse de Commerce) 건물을 현대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소식이었다. 이번에도 안도 다다오에게 건축 디자인을 맡긴 그는 개관 시점을 2019년으로 잡았다. 상업거래소는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역사적 건물로, 루브르와 퐁피두가 지근거리에 위치해 접근성도 뛰어나다. 파리 시장은 “현대미술이 취약했던 파리에 새로운 심장이 될 것”이라며 반겼다. 팡테옹 형태의 건물에 미술관을 들이는 데는 10억 유로(1조3천억 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피노는 원래 파리 세갱섬의 옛 르노자동차 부지에 현대미술관을 지을 생각이었다. 1999년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일을 추진했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에 분개해 2005년 베네치아로 기수를 돌렸다. 이탈리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피노는 자신의 소장품을 팔라조그라시(2006년 개관)와 푼타델라도가나(2009년)에 풀어놓았다. ‘Post-Pop’, ‘피카소 1945-48’, ‘루돌프 스팅겔’전 등 메가톤급 특별전도 선보였다. 2013년에는 공연장과 갤러리를 겸한 테아트리노(Teatrino)도 오픈했다. 이 공간에선 매년 150건의 이벤트가 열린다.
그런데 자신의 오랜 라이벌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2013년 파리 불로뉴 숲에 초현대식 미술관을 개관하고,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가슴 속 숙제로만 남겨뒀던 ‘파리 미술관’을 위해 다시 팔을 걷어붙인 것. 현재 3,500점에 달하는 자신의 컬렉션의 규모와 질, 혁신성과 파괴력은 아르노를 가뿐히 누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멋진 미술을 추구하는 아르노와는 궤를 달리하며, 파격적인 미술로 세상(뉴욕, 런던)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포부도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미술, 그렇게 나른한 게 아니거든. 예측할 수 없고, 한계가 없어야 진짜지’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피노는 또 루브르 분관이 세워진 프랑스 북부도시 랭스에 작가들을 위한 아트 레지던시도 조성했다. 전 세계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매년 후보를 선발해 랭스 작업실로 초대하고 있다. 2015년에는 언론인이자 미술저술가였던 피에르 덱스(Pierre DAIX,1922-2014)를 기리는 미술상도 제정했다.
이처럼 미술과 관련해 많은 일(주 업무는 크리스티를 챙기는 것)을 하는 그이지만 서른 살이 되기까진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던 사람이다. 예술과 담쌓고 지낸 청년이었다. 프랑스 서북부 브리타니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피노는 고교를 중퇴하고 아버지 일을 도왔다. 공부엔 소질이 없었지만 사업능력은 남달라 1962년 목재 및 건축자재 업체를 설립해 알짜 기업으로 키웠다. 이후 가구가전 유통업체 콘포르마, 통신판매업체 라흐두뜨, 프랭탕백화점을 인수·합병하며 유통 거물로 급부상했다. PPR의 탄생이었다. 1993년에는 와인 명가 샤토 라투르도 사들였다.
피노 회장이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구찌를 둘러싸고 아르노 회장과 피 튀기는 인수합병전을 벌이다 결국 2001년 구찌를 전격 인수하면서다. LVMH를 제치고 구찌를 손에 넣은 뒤로 PPR은 입생로랑,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 명품브랜드를 연달아 인수했다. 대신 프랭탕과 라흐두뜨를 매각해 럭셔리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췄고, 그룹명도 케링(Kering)으로 바꿨다. 현재 피노와 피노 패밀리의 자산은 243억 달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