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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사동 유감

김정수

내가 파리로 떠나기 전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사동 길은 매우 고즈넉했었다. 화랑, 화방, 붓 가게, 한지파는 가게, 화가들의 작업실, 그리고 골동품 가게들…. 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았지만, 왠지 이곳은 시간이 오래 머물다 가는 거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 안국동과 수송동, 경복궁 앞에 화랑들이 몇 개 있었다. 그곳에서 누가 전시 오픈이라도 하는 날이면 지금의 쌈짓길에 위치한 유일한 한옥 고깃집에서 뒤풀이를 하며 정담을 나누곤 했던 기억이 난다. 골동품과 그림에 관계되는 사람들이 조용히 들렀다 가곤 했던 서울에선 덜 붐비는 곳이었다.물론 세월이 흐르고 여러모로 발전돼서 그렇겠지만, 지금의 인사동은 명동 뺨치듯 주말엔 사람들로 붐빈다.

얼마 전 화랑에 일이 있어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이벤트들을 경험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사동 입구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들어야 했다. 노점상에서 파는 호떡을 하나씩 입에 물고 걸어가는 아베크족들과 천원, 이천 원 하는 삑삑이를 불어대는 애들, 화장품 가게에서 호객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스치며 가다 보니 어느새 꽹과리를 울리며 사물놀이 하는 패들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가방가게나 옷가게 등 구경하는 인파와 꿀타래 만드는 장면을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를 다시 요리조리 피해서 걷다 보니 ‘아~ 시끌벅적한 난장이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주차금지 팻말에 적어놓은 낙서가 생각이 났다. “인사동 인사동 그래서 왔더니 볼 건 하나 없고”

어느 나라든 화가들이 모이고 화랑이 생겨나면 그 지역은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는 명소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림이 있고 골동품이 있고 문화의 향기가 배어 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인사동 하면 그림과 골동품이 있는 미술, 문화의 거리라는 인식이 짙게 깔린 곳인데, 화랑, 골동품 작업실 대신 노점상, 화장품, 가방, 옷가게, 식당, 찻집, 싸구려 기념품 가게 등이 대신해 버렸다. 국악은 국악의 거리에서 하면 되고, 화장품이나 옷 등은 그런 상권이 잘 발달하는 곳에서 사면 된다. 호떡이나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굳이 인사동까지 안 와도 된다. 자선 노래 부르는 걸 굳이 인사동에서 부르는 게 좋을까? 
누구의 탓을 하는 게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만약 인사동에 미술적인 특성이 사라진다면 인사동이라는 명소로 존재 가능할까? 우선은 갤러리나 아트 관련 가게가 아닌 일반 업종에 세를 좀 비싸게 받는다 쳐도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다른 상권들과 거의 비슷한데 큰 상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 

모 여대 앞거리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텅텅 빈 가게들을 다시 회복하려고 이제야 월세도내리고 노력들 한다. 그리고 누가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왜 인사동에 무대 공연장이필요한지, 왜 옛적 고관대작들 행차 행사가 인사동을 거쳐 가야하는지 내 조그만 머리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서? 미술의 거리엔 미술의 거리답게 연극의 거리엔 연극의 거리답게 음악의 거리엔 그런 거리답게 내버려 두면 좋겠다.

제발 똑같은 싸구려 난장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뉴욕 소호에 있었던 화랑들이 다른 일반 가게들이 자꾸 들어오니 임대료가 비싸지고 그러니 첼시로 다 옮겨갔다. 소호는 예전처럼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파리 6구 생제르망데프레에는 세느가(rue de seine)가 있다. 인사동처럼 길쭉한 거리다. 인사동의 30년 전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지금도 그곳은 그대로이다. 화랑들이 양쪽으로 쭈욱 있고 가운데쯤 오래전부터 화가들이 차 한 잔씩 했던 딱 한 군데의 카페 팔레트가 있을 뿐이다. 

인사동은 너무 많은 변화로 설명 불가하다. 세느가나 근처엔 아트에 관련된 가게들 외엔 들어올 수가 없게끔 시에서 미술의 거리를 보호한다. 물론 세계적 명품회사들이 근처에 가게를 내고 침투해 들어오려고 하지만 핵심 미술의 거리엔 들어올 수가 없다. 그러니 오히려 더 멋진 세계적인 명소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내외국인이 차분하게 그림과 골동품을 감상하며 감동을 마음에 안고 가는 진짜 인사동을… 진짜 명소를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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