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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가정의 달, 가족사진에 대한 단상

박영택

5월 8일은 본래 어머니날이었다가 이후 어버이날로 바뀌었다. 사실 어머니날은 이승만정권 때 당시 피폐한 경제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을 이끌던 어머니들의 노고를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하려는 의도로 제정된 날이었다. 하여간 어린 시절 다가오는 어머니날이면 새삼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공연히 숙연해짐과 “나실 제 괴로움…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을 한 번이라도 헤아려봐야만 했다.

유학에서는 인간이란 세상 안으로 던져지기에 앞서 부모형제의 혈육이 있는 가족 안으로 던져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가족 질서를 유지하는 축은 바로 ‘효’다. 효는 가부장적 가족의 질서 유지와 관련되는데 가부장적 가족은 인간이 그 안으로 태어나는 가족을 아버지라는 중심에 따라 위계화시킨다. 이처럼 유학은 ‘가족 내부의 불화와 갈등, 분열을 아버지 중심의 차별적 위계질서로 일정하게 고정시킴으로써 그 분열이 폭력으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려 하고 가부장적 가족윤리에 의해 다스림으로써 가족과 사회를 다만 덜 불행하게 만들려’ 함을 목적으로 해왔다.

한편 가족이 본격적으로 미술 표현의 주제가 된 것은 지난 1950년대부터다. 한국전쟁이 초래한 위기의식, 즉 개인의 실존을 위협하는 체제의 폭력과 광기에 대한 미학적 반응물의 하나가 바로 가족 그림이었다. 무수한 전사와 실종, 행방불명으로 가족을 잃거나 남북으로 갈라져 가족끼리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사람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했다. 가족 구성원의 이산은 이별, 죽음, 그리움, 아픔의 가족상이다. 따라서 보편적 개념의 가족, 즉 가족과 관련된 그리움이 하나의 모티프가 되었다.


이해문, 가족사진, 1955


국가는 물론 이웃조차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만이 유일하게 의지할 안식처였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도피처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여간 한국전쟁은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던 전통적 질서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아버지를 정점으로 구축되는 가족의 질서, 더 나아가 그 가족이 사회적-국가적 질서의 기초를 이루는 전근대적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전쟁의 파괴와 살육을 체험한 전후 미술인들 역시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노출된 가족, 해체의 위기에 처한 가족을 중요한 그림 소재로 등장시키고 있다. 전후에 살아남은 이들에게 가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원을 가능하게 해줄 보상적 영역이 된다. 한국전쟁을 체험한 미술가들이 가족이라는 주제에 집착한 이유는 해체된 가족을 복원하고 직계가족을 지키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가족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며 불완전한 현실을 보상해주고 ‘상실된 나’를 ‘온전한 주체’로 복원시켜 줄 수 있는 것은 가족이라고 상상한 것이다. 따라서 전후 1950년대의 가족상은 그런 징후를 반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에서 그 예를 만난다. 그러나 나는 이해문이 1955년도에 찍은 자신의 가족사진을 우선적으로 떠올린다. 통상 가족사진은 사진관에서 연출되어 찍는다. 가족들은 피라미드 구조를 지으며 활짝 웃고 있다. 그것은 이상적인 가족상을 획일적으로 표상한다. 대형의 가족사진은 거실 텔레비전 위에 혹은 소파 위에 걸려있다. 그 사진은 가족 구성원 간의 모든 갈등과 상처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 사진이 역설적으로 그렇지 못한 가족 상황을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면 이해문의 가족사진은 그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가족의 진솔한 삶을 발언한다. 전쟁 후의 빈곤한 삶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모여 산다. 아빠/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다 지쳐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다. 큰딸은 내일 학교에 들고 갈 책가방을 정갈하게 챙겨놨고 한참 말썽꾸러기일 것 같은 둘째는 꿈에서도 무척 부산해 보인다. 보기에도 귀여운 막내딸은 엄마 옆에서 곤히 자고 있다. 엄마는 저 아이들 때문에 지친 몸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 까무룩 잠이 들었을 것이다. 머리맡에는 주전자와 요강이 놓여있다. 잠자리에서 필수적인 물건들이다. 이해문이 귀가해 방문을 열고 전등을 켜자 이 장면이 질펀한 살 내음, 땀 내음과 함께 훅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얼마나 많은 상념에 시달렸을까? 자신이 저질러놓은 저 ‘사건’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가족에 대한 여러 상념이 마구 북받쳐왔을 것 같다. 이런 것이 진정한 가족사진은 아닐까? 집에 굳이 가족사진을 건다면 이런 사진을 걸어두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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