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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어른의 눈에 반하는 어린아이들의 그림

박영택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어린아이들의 그림을 심사하고 있다. 이는 내게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다. 유치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그림은 기발하고 재미있는 게 다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순간 대다수 그림이 경직되고 따분해진다. 대략 4학년 정도 되면 그렇게 된다. 참 희한한 일이다. 교육을 받을수록,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림을 망친다는 얘기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그림은 상당수 선생이 손을 대준 흔적이 역력하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20세기 현대미술의 한 자락은 저 어린아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자 했다. 루소나 피카소, 뒤 뷔페나 클레의 그림이 그런 좋은 예증이다. 우리의 경우는 장욱진이 대표적일 것이다.

‘어린이’란 근대기에 태동한 새로운 개념이다. ‘어른’에 대한‘아동기’의 출현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는 17세기 중반, 근대적 가족의 성립과 궤를 같이하는데, 이때부터 ‘작은 어른’들은 새롭게 ‘귀여움을 받고’ 보호되는 대상으로 재해석되었다. 여기서 사회적 약함이나 의존성이 특별히 강조된 ‘어린이다움’이 나타나고, 어린이는 시민사회의 도덕과 질서를 따르도록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가정과 학교에 둘러싸이게 되었으니 이른바 ‘아동’이 탄생한 것이라고 아리에스는 말한다. 근대 국가는 아동을 국민구성원으로 훈육하고 양성하는 일을 조직, 체계화해 가정, 학교에서 맡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주어진 사회현실과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길러져야 했다. 여기에는 아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고 성숙하지 않았으며, 어른으로 향하는 도중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고 동시에 아이들을 어른의 일방적 시선 아래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른들이 원하는, 체제가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동을 교육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교육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어른이 원하는 대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고 충분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초등학생의 그림


창의력과 상상력, 사물과 세계를 보는 길들여지지 않는 눈을 요구하는 미술의 경우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어린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미술이란 사물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기르는 일이고 인습적이고 상투화된 사고, 안목, 감각을 벗어나는, 뛰어넘는 것이자 그런 몸을 가꾸는 일이다. 종래의 나와는 다른 나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교육의 힘이란 사람을 ‘한 가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때때로 아주 고통스럽고 고민스럽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강요하는 일’이 된다. ‘성장 과정을 통해 암암리에 훈육되고 다져진 인식의 터전을 흔들어 혼란을 경험하게 하는 것’ 또한 미술교육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해하고 있는 사물과 세계는 모두 특정한 가치나 신화, 이념, 욕망에 의해 매개되어 있어서 그 본래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눈과 의식으로 세상을 보기보다는 이미 주입받은, 학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코 자신의 눈과 사고로 대상을 바라보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자기 눈으로 보고, 반복해서 보면서 깨닫는 것이다.

기존 미술계에 공식화된 어른 중심의 미술 언어를 아이들에게 추종하게 하거나 익숙하게 훈련하는 것은 진정한 미술교육이 아니다. 좋은 작품은 사물과 세계에 드리워진 모든 편견과 허위의식을 거둬 내는 데서 가능하며 그에 따라 그 아이만의 독특한 감성과 감각의 힘이 느껴지는 것이 좋은 그림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림은 학원 등에서 관습적으로 만들어주는 그림이나 어른들이 손을 댄 그림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과 대상에 대한 관찰력을 키우고 자발적으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자기식으로 담아내는 그림을 그리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당대의 지배 논리가 현실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동일화된 감성에 순응하지 못하고 그것과 불화를 일으키고 저항하는 사유를 지닌 아이들을 길러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아이들이 결국 한 개인으로 살아남으며 상상력과 창의성을 지닌 인간, 예술가적인 인간이 된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서 벌어지는 숱한 미술대회에 출품되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에서는 그런 창의성과 상상력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나는 그런 안타까움을 안고 심사를 하다 문득 내 눈에 들어와 박힌 보석 같은 몇몇 그림들을 사진으로 모아두었다. 이 그림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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