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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순위 매기기, ‘파워’는 없다

호경윤

 얼마 전 영국 미술잡지 『ArtReview』에서 발표한 ‘파워 100’에 한국 국적의 미술인이 4명 포함되었다. 2002년부터 매년 한 번씩 작가뿐 아니라 평론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있다. 누가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뽑는지도 정확히 밝히지 않는 이 순위를 잘 믿지 않으면서도, 나 역시 올해는 좀 발표 시기가 늦어진 순위 결과를 은근히 기다리게 됐다. 어쨌든 재미있으니까. 누구의 순위가 지난해 비해 올라가고 내려갔는지, 또 누가 새롭게 등장했는지. 내가 모르던 미술인도 공부하고, 또 그사이 누가 일하던 곳을 옮긴 것도 파악하고…. 11월 3일에 발표된 올해의 리스트에는 다른 어느 해보다 한국인의 숫자가 많고, 그중 한 명은 그동안 한국인 중에 가장 높은 순위에 올라 국내 일간지에서도 후속 기사를 여럿 냈다.


좌)『 ArtReview』 2017년 11월호 표지
우)『 월간미술』 1990년 10월호 P.51,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물론 국내에서도 과거에 이렇게 미술인의 순위를 매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월간 『 아트프라이스』에서 신년마다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인물 순위를 발표했으며, 일간지에서도 지난 한 해 동안 혹은 새해에 활약한(할) 작가를 내기도 한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월간미술』 1990년 10월호에서 기획특집으로 다루었던 <미술작품의 예술성과 가격>인데, 미술평론가 20명의 앙케트 응답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특집이 흥미로운 이유는 『ArtReview』처럼 모호한 방식이 아니라, 미술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 136명을 대상으로 장르별로 A/B/C를 점수를 매기고 그 총점과 백분율을 냈다. 결국 이 앙케트의 포커스는 그 당시에 미술시장에서 뜨겁게 이야기되던 작품의 가격체계의 정당성 논란을 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지면에서 평가를 당한(?) 몇몇 작가들은 잡지사에 항의하기도 했다고.

 이렇게 인물에게 순위를 매기는 것은 매체에서 종종 하는 것이다. 스포츠와 가요 순위 같은 것처럼 전통적인 것 외에도, 포털사이트의 뉴스 랭킹과 실시간 검색 순위는 이슈를 더욱 확산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 케이블 TV 프로그램에서는 사소한 가십 뉴스를 가져다 랭킹을 매기는 것을 마치 특종 같은 중요한 콘텐츠처럼 다루기도 한다. 하나 쓸데없고 심지어 정확하지 도 않은 정보임에도 하위권부터 점점 상위권으로 올라가면서 알려주는 방식에 무의식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유독 한국 미술에서는 이러한 순위들에 긴장감이 없다. 앞서 소개했던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월간 『아트프라이스』의 순위를 예로 들자면 매년 상위권의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2015년 ‘한국미술 전시공간의 역사’전을 준비하면서 미술계 인사 20명을 대상으로 영향력 있는 전시공간 순위를 냈지만 올해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다시 진행한다 하더라도 아마 그 결과는 크게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번 『ArtReview』 파워 100이 발표되자, 해외 온라인 미술매체 <ARTSY>에서도 후속 기사가 나왔다. 이 기사에서는 올해 여성 작가인 히토 슈타이얼이 1위를 차지한 점에 주목하면서, 파워 100이 시작한 2002년 순위와 15년이 지난 2017년의 순위를 다각적으로 분석해 성별, 인종, 직종 등이 훨씬 더 다양하고 균등해졌음을 밝혔다. 한국미술에서도 다양하고 재미있는 순위를 보고 싶다. 예를 들면 가장 팔리기 어려워 보이는 작품이라던가, 옷을 잘 입는 미술인이라던가…. 이렇게 시시한 랭킹으로라도 새로운 이름들,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한국미술 파워 100’ 비슷한 것을 하더라도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유명한 사람, 큰 미술관이 파워가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리스트를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또 과거에 어떤 순위 매기기 때문에 한 잡지사에 불매운동이 일어났던 것과 달리 우리 모두가 쿨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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