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숙 미술시평(39)
뉴욕을 며칠 다녀왔다. 현대미술의 메카라고 부르기에는 좀 한가하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다른 볼 일이 있어 갔던 터라 첼시의 화랑들을 돌아보지는 못해 단언해 말할 수 없지만, 뉴욕경기가 점점 물이 오른 데 비해 미술계는 한산한듯 해보였다. 구겐하임의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전시는 며칠 차로 놓쳤고 모마에서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bera)회고전’을 하고 있었다. 하나 두드러진 특징을 들라면 미국미술계가 이전에도 그랬지만 한층 더 남미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과 인도와 중앙아시아권역의 작가들에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한국계 이민 2세대, 3세대들이 활발하게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모습은 새삼스레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보는 것 같아 매우 뿌듯하였다. 일본 모리미술관에서의 이불 개인전은 미국 가는 길에 일본을 들러 보려 했지만 놓치고 말아 앞으로 있을 아트선재센터 전시(9.6-10.28)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난 1월과 2월 두 개월 동안 무엇보다도 한국화단을 뜨겁게 달구었던 것은, 특히 대중적 인기를 고려할 때, 갤러리현대에서의 김환기 전시(1.6-2.26)였을 것이다. 지하층부터 2층까지 서울 (1937-1956), 파리(1956-1959), 다시 서울(1959-1963)과 뉴욕시기(1963-1974)로 연대기 순으로 배열, 극히 상식적으로 구성된 전시는 일종의 회고전 형식을 띠고 있었으나 작품의 질에 있어서 좀 들쭉날쭉해 보였다. 일본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한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 작품들은 한국전쟁 전후에 제작한 소품 위주의 작품들로 피난열차, 거리의 행상들, 빈한했던 일상들을 소재로 했으나 기하학적 구성과 평면성, 단순 간결한 형태와 색채는 그의 1930년대 말 일본유학 시절에 시작해 지속한 추상적 양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난지에서 서울로 돌아 온 후의 김환기는 바다, 여인, 항아리들 피난지의 모습들을 민족적 정서를 상징하는 요소로 간주한 듯 그 특유의 개략적이고 간결한 양식으로 추상화 해 간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술계뿐 아니라 문화계의 주요인사로 활동하다 불혹의 나이에(44세) 파리로 떠나며 거기서도 당시 파리에서 한창 번성하고 있었을 법했던 앵포르멜 미술에는 동요됨이 없이 오히려 더욱 한국적 소재-항아리, 매화, 해와 달 등의 십장생의 모티브들로 고유의 절제와 여백을 살린 상징적 수법으로 확대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리, 니스, 브뤼셀 등지에서 개인전을 수차례 가지면서 활발한 전시활동을 했으나 경제난과 자녀교육문제로 파리를 떠나 다시 서울로 돌아온 김환기는 한국의 산, 달, 구름 등으로 표현한 한국의 자연을 구가하며 그의 상표라 할 수 있는 더욱 깊어지고 강렬한 푸른빛을 근간으로 작업을 지속한다. 간헐적으로 극도로 단순화한 색면 구성은 다음에 올 뉴욕시기의 작품을 예시하기도 한다. 개인전과 함께 더욱 빈번해진 사회활동과 국제비엔날레의 행적은 작가를 더욱 그를 바쁘게 움직이게 했던 한편, 전환기는 상파울로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기 위해-이 비엔날레에서 회화부문 명예 상을 받게 된다-1963년 미국을 경유, 뉴욕을 가면서 맞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하간 당시 저개발 국가였던 한국의 문화예술 진흥을 지원하기 위해 스폰서로 자청한 록펠러 재단의 기금을 받아 김환기는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에서 1974년 타계하기까지 머물면서 김환기는 결정적인 양식의 변화를 보인다. 1960년대 말부터 화면에 도입되기 시작한 점화는 1970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네모꼴로 테두리 지어진 점들을 반복적으로 찍어가며 화면 전체로 확대해가는 김환기만의 고유한 ‘점화양식’에 도달하게 된다. 이 ‘점화법’의 기원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김환기가 뉴욕에서 접했을 법한 파울 클레의 유사한 구성을 간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갤러리현대의 전시를 보면서 좀 의아했다면 왜 이런 전시를 미술관이 하지 않고 상업 화랑이 할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우리의 짧은 화랑의 역사에서 단연 독보적이면서 거의 아이콘과 같은 갤러리현대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대중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사진자료의 배열을 포함한 전시의 연출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