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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의 휴머니즘 아카이브 인생(9): 김달진이 이룩한 휴머니즘 아카이브

심현섭

김달진이 이룩한 휴머니즘 아카이브

 

김달진은 수집가와 기록자로서 의미 있는 결과물들을 내놓았다. 첫 열매는 1995년에 출간한 바로 보는 한국의 현대미술(발언, 1995)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미술 전시, 사건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월간 전시계>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써온 자신의 글을 망라한 이 저작은 인간 자료실이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백과사전과 같은 꼼꼼하고 정확한 자료정리가 돋보인다. 책에 수록된 방대한 자료는 오랜 작업의 지난함을 견뎌낸 그의 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수집가로서 김달진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말하듯 미술사가나 미술평론가가 아닌 미술자료수집가로서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는 것으로 책을 꾸렸다. 하지만 수록된 31개의 글 각각은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당시 역사를 객관적으로 알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기록에 대한 경각심, 신문보도의 정확성 등 당시 미술계의 기록 문화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비록 작품 자체를 논하는 글은 아닐지라도 시대의 평론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10)은 그가 평소에 설파하는 이등별, 삼등별론을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1979<월간 전시계>6회에 걸쳐 연재한 <근대작고미술가 인명록>이다. 그 후 한국미술연감, 열화당미술연감, 월간미술연감 등에 지속적으로 미술가들의 약력 등을 제공했다. 이와 함께 창작미술인 찾기는 쉽지만 미술계에서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서 월간 <서울아트가이드>2006년부터 2009년까지 비창작미술인을 30회 연재하기에 이른다. 꾸준히 이어 온 카드 작업, 부고 메모를 합쳐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발행한 것이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명인뿐 아니라 지금까지 존재가 묻혀있던 숱한 미술인을 소개하고 있다.

 

           아까 얘기했던 대로. 이런 것들을 해서 내가 그때 생각 했던 거는 왜 지난번에 홍진기 창조인 상 수상할 때도 얘길 했지만 그런 비유가 굉장히 사람들한테 호소력이 있었던 거 같아요. 밤하늘에 왜 일등별만 보느냐, 이등별 삼등별이 있어야 일등별도 다 빛나는 것처럼 동시대 살았던 많은 화가들이 있는데. 우린 맨날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만 알고. 그 동시대를 그래도 평생 화가라는 이름을 걸고 살았는데 그 동시대 사람만 기억하고, 자손들만 기억하고 잊혀지고, 묻히고, 없어지는데 그 사람들을 우리가 더 남겨놔야 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에 계속 카드화 작업을 하고 이런 걸 연재를 했던 것죠.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야지 했던 것이, 31년 만인 2010년에 책으로 나온 결과물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입니다.

 

김달진은 최근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16.6)에 이르기까지 10여권이 넘는 단행본을 발행했다. 그의 책들은 대부분 자료를 정리하고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초창기 미술평론가를 꿈꾸던 그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미술사가나 평론가보다는 자료전문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더욱 확실히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또 자료축적과 분석 등에서 아직 걸음마수준에 있던 한국 미술계가 어느 누군가의 헌신을 요구할 때 그 부름에 응답한 결과였다. 시대의 필요에 자신의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김달진이나 한 사람을 얻어 또 하나의 내용을 채울 수 있었던 한국 미술사나 그 시기를 돌이켜보는 지금 우리로서는, 사람과 역사가 만나 이룬 훌륭한 융합의 결과를 보는 것 같아 여간 다행스럽고 신기한 게 아니다.


김달진의 연구와 결과물이 학계에서 받는 평가는 다양할 것이다.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하지 않느냐, 역사적 팩트 만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느냐는 등의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런 비판이 나온다는 자체가 김달진의 성과물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팩트에 대한 확인이 없거나 잘못된 팩트에 근거하여 역사를 해석하는 오류보다는, 정확한 팩트 위에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것은 비판과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학문적이라고 해야 옳다. 잘못된 팩트에 근거한, 더욱이 저자의 권력이 개입된 연구는 잘못된 진실의 확대에 불과하다. 비판조차 허용하지 않는 이러한 미신화, 신화화된 학문이 전통, 위계, 권력의 이름으로 횡행하는 일부 학계의 그릇된 관행을 심심찮게 목도하는 현실에서 김달진의 팩트에 근거한 자료 분석과 연구는 더욱 가치를 발휘한다. 따라서 그 팩트의 정확성이 비판받을 수는 있으나 그 연구방식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 않다. 역사는 바른 팩트 위에 성립한다는 점에서 김달진은 미술사 연구의 기초를 쌓은 주춧돌, 적어도 정확한 팩트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한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그의 수집인생을 관통한 수집 철학의 첫째 원칙이었던 오늘 정확한 기록은 내일 역사가 된다는 투철한 기록정신과 확고한 역사관의 열매였다.

 

1970년대 말, 불모지와 같던 한국 미술 아카이브에 뛰어들어 스스로 길을 열어온 김달진 연구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당대의 이름난 일등별 뿐 아니라 이등, 삼등별 등 소외된 별들을 기억하고자한 미술인들에 대한 각별한 시각이었다. 세속은 승리의 역사와 승리자만 기록한다. 승리와 영광 뒤에 있었을 개인의 절망이나 좌절은 지워진다. 역사적 기록은 앞뒤가 잘 맞아야 한다는 폭력적인 정언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당대의 권력자 혹은 당대의 인정을 받은 자를 중심으로 정렬되어 정사로 수용한다. 그러나 김달진의 시각은 사뭇 달랐다. 인정받지 못한 자, 주류에서 밀려난 변방의 예술가들에게 각별한 애정의 눈길을 가지고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역사를 기록하고자 노력했다.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투철한 기록정신과 함께 소외된 예술가를 향한 시선은 김달진의 수집인생을 이끄는 동인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한국 미술사는 더욱 풍부해졌다. 김달진은 버려진 잡지, 눈에 띄지 않는 기사, 관심 밖의 사람에 주목하였다. 작고 초라해 보이는 곳을 향한 그의 시선은 그 모두를 하나의 별로 떠오르게 하였고 역사에 기록하였다. 이것은 아마 그 자신이 오랜 세월 비주류의 입장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자료의 정확성과 미술인에 대한 애정이 함께 섞인 태도와 정신은 그로 하여금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수집가의 면모를 갖추게 하였다. 지난 50여년 척박한 환경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내 자신만의 휴머니즘 아카이브를 완성한 김달진의 태도와 정신은 한국 미술자료수집사에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바, 그 방법이나 기술에 앞서 수집가의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철학으로서 오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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