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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특정적 비엔날레의 모색

심현섭

장소특정적 비엔날레의 모색



2018년 광주, 부산, 대구, 서울 등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에서 열린 비엔날레는 저마다 주제를 내세우고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문화관광체육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는 나름의 평가기준을 만들어 각 비엔날레의 순위를 매겼다. 사업의 평가란 것이 평가 기준과 심사위원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므로 큰 의의를 둘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1등급에 해당하는 매우 우수한 비엔날레가 없다는 결과는 비엔날레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욱 우려스러운 바는 절대기준에 미흡한 2등급 전시에 대한 자성 없이 비교순위를 내세워 자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엔날레 당국의 감사 문구이다. 정부기관의 관료주의적 산술적 평가가 내적 비판과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비엔날레에 대한 냉정한 비판에 둔감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2108년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은 대략적으로 한국적 시각의 빈곤함, 해외기획자들에 대한 의존도, 새로운 이슈와 담론의 부재, 자본과 미술권력의 네트워크 등으로 압축된다. 이는 비엔날레가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보여준 한계와 문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비판의 내용이 회를 거듭하며 반복되고 있다는 말인데 2018년에 이르러 이 비판은 다소 신랄하다. 여기서 신랄하다 함은 비판의 내용이 달라졌다거나 더 심해졌다는 의미보다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실망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을 가리키는데, 이런 실망감은 자성의 부재와 더불어 비엔날레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비엔날레는 세계비엔날레협회가 집계한 수만도 14개, 집계에서 빠진 수까지 합하면 약 20개에 달한다. 이는 비엔날레가 이미 사회 내에 구축된 예술적 현상으로서 대중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체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비엔날레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없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비엔날레의 실적과 실체를 인정하고 수정보완의 길을 가야 할 것인가. 나는 후자의 편에 선다. 비엔날레는 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하는 주제전의 확장된 형태로서 문화적으로 동시대 미술을 논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비엔날레는 대중들에게 세계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대규모의 구경거리로 자리 잡고 예술의 대 사회적 소통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비엔날레의 실체를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역시 근대화와 모더니티 개념의 대안을 제시하고 지역 차원에서 예술가가 작업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며 무엇보다 세계 곳곳에서 예술이 대중과 만난다는 점을 들어 비엔날레를 긍정한다. 엔위저에 의하면 미술관이 제도화한 정적인 공간으로서 ‘지체(delay)’ 과정을 자신의 매커니즘으로 삼는 반면, 비엔날레는 하나의 역동적 ‘파괴’ 모델로서 존재의미를 가진다. 광주비엔날레가 1990년대 이후 한국미술계가 글로벌 미술현장의 무대로 인정받고, 실시간으로 글로벌 미술의 담론과 실천, 그리고 큐레이팅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보여주었다는 양은희의 현실적 평가 역시 비엔날레의 존속을 옹호한다. 이와 같이 비엔날레의 실체를 인정하고 지속한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남는 문제는 무엇을 수정 보완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는데 비엔날레에 내재한 비판적 요소는 스스로의 역사에서 노정하였다.


 

자본에 물든 비엔날레의 획일화


1895년 4월 30일 <제1회 베니스 시의 국제미술전>이라는 명칭으로 시작한 비엔날레는 제국의 패권주의와 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힘겨루기의 장이었다. 1980년대 동서냉전체제의 잠복과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경제적 부상은 비엔날레에 변화를 가져왔다. 동·서독의 통합과 구소련의 해체 등으로 1989년 냉전이 사라지면서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의 사유단위가 되었다. 서구 지배이데올로기가 퇴조하는 가운데 특히 1990년대 이후 아시아 지역 비엔날레의 증가는 문화적 탈중심화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패권주의와 탈중심적 복합문화주의,” “글로벌리즘과 지역주의” 등의 담론이 왕성해지면서 비엔날레를 통한 민족적 패권은 적어도 가시권에서는 희미해졌다. 그러나 이후 비엔날레는 자본에 본격적으로 잠식당한다. 오늘날 비엔날레가 미술과 상업화랑, 옥션 등 미술계의 다양한 제도들과 긴밀히 얽혀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무소불위의 자본의 힘은 이제 비엔날레와 같은 제도 속으로 파고들어 비엔날레 자체를 황폐화하고 있다. 2003년에 열린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리뷰에서 피아크라 기본스(Fiachra Gibbons)는 비엔날레는 아방가르드가 최고 부자와 만나는 곳으로 거대한 돈다발, 국가의 자존심, 부패의 연기와 속삭임이 모두 들어있다고 비판한다. 자본의 지나친 개입은 경계해야 하지만 비엔날레가 자본과 연계한 사실 자체를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는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자본주의가 미국의 주도아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앞세워 ‘세계화’라는 이름의 표준화를 상대에게 강요한다는 점이다. 표준화는 차이를 배제한다. 차이가 없는 것들의 반복은 획일성을 낳는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서 세계자본은 지역의 미세한 차이를 흡수한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속성은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베른하르트 제렉스(Bernhard Serexhe)의 말대로 비엔날레 시스템과 세계화된 미술시장이 신식민주의적 기업체제로 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융합은 비엔날레에서 변별력 없는 전시로 나타났다.

 


미술관 전시의 한계를 보완하고 글로컬한 문화 교류의 장으로 기능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는 지금까지 패권주의, 자본의 지배, 획일화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 따라서 비엔날레를 지속하기 위한 명분의 확보는 이 문제들을 극복할 보완책 마련에 있다고 하겠다. 첫 번째 문제인 과거 제국의 시대에 이루어졌던 민족적 패권주의는 1980년대 국제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적어도 우리의 가시권에서는 멀어졌다. 또 우리가 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어떤 대안을 내놓는다 해도 정치·문화적 변방에 위치한 한국으로서 그 논의와 대안은 강대국의 패권다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적어도 현 상태로서는 일정 수준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다. 두 번째 자본의 지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과 그 실천은 미술과 자본의 불가분의 관계를 고려할 때 자본주의 하에서 미술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은 문제인 획일화는 다른 문제에 비해 정치와 자본의 테두리를 벗어나있는데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의 유일성 혹은 특정성으로 인하여 대안제시가 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나는 획일화의 문제를 장소성에 집중하여 논하고자 한다.


 

비엔날레의 공공성과 장소 특정성


비엔날레의 획일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의 특정성이다. 부산, 광주, 카셀, 리용, 이스탄불 등 비엔날레에 따라붙는 지역의 이름이 지시하듯 비엔날레는 장소를 기반으로 한 미술전시이다. 장소는 공공미술이 관통해온 하나의 축이기도 하다. 60년대 이후 공공미술의 역사를 정리한 권미원(Miwon Kwon)에 의하면 장소는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장소이며, 정치·사회· 문화· 제도 등 인간의 역사의 축적물로서 의미를 함축하는 기호이다. 현상학적 미니멀리즘에서 출발한 장소특정적 미술은 제도비판이라는 유물론적 탐구를 거치면서, 장소를 미술의 이데올로기적 시스템을 규정하고 유지하는 스튜디오, 갤러리, 미술관, 미술시장, 미술비평 등의 사슬 혹은 네트워크로 새롭게 이해했다. 작품을 보여주는 장소에 함의된 제도적 틀에 저항한 미니멀리즘은 자연스럽게 이슈와 담론의 당사자, 관심자 등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주목하게 하고 장소는 공동체로 대체하였다.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 이를 대표한다. 장소의 정의가 물리적 근거가 있는 고정적이고 실제적인 입지로부터 유동적인 가상의 담론적 벡터로 전환한 것이다.

 

장소특정적 미술은 이렇게 구체적인 공간, 물리적 장소 뿐 아니라 담론으로서 장소라는 의미를 지시하는 방향으로 전개해왔다 나는 이와 같은 공공미술의 ‘장소’ 개념을 적용한 비엔날레를 ‘장소특정적 비엔날레’로 부르고자 한다. 비엔날레에 대한 공공미술의 방법론 적용은 비엔날레가 가지고 있는 공공의 성격으로 인해 타당성을 더한다. 비엔날레는 공적자금을 투여하여 지역사회구성원의 사회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공공미술에 속한다. 공공(公共, public)이라는 말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이익과 관계한 사회성을 지닌다. 비엔날레의 사회적 이익은 구체적으로 지역차원에서 예술가가 작업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의 확보와 지역미술의 질적 수준에 대한 편견 타파, 국제적 행사를 통한 지역문화의 경쟁력 확보와 발전의 계기, 개최도시 마케팅, 문화 투어리즘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도시이미지의 고급화, 지역주민의 자긍심 고취 등이다. 나는 공공미술이 장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기호의미를 장소의 특정성으로 변환하여 전위적이고 차별화한 공공미술로 나아왔듯이 비엔날레가 열리는 장소의 특정성을 차별화 전략으로 삼아 비엔날레의 획일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도출하고자 한다. 장소야말로 물리적 현존, 역사적 사건이 구체화하는 삶의 현장으로서 특정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소의 특정성: 광주의 역사와 부산의 자연 조건


장소특정적 비엔날레는 물리적 장소, 기호의 의미를 담은 장소의 특성을 활용하는데 구체적으로 장소의 지역성, 지리적 조건, 담론 등을 가리킨다. 지역성은 타 지역과 구별되는 지역의 특성으로 장소의 정체성(place identity, locational identity)을 의미한다.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장소성이라는 개념을 개개인의 정체성과 안정감을 확보해주며 인간이 세계 내에서 뿌리내리고 실존하게 해주는 중요한 근원이라고 하면서 장소성이 상실해가는 현 세태를 지적한다. 따라서 장소특정적 비엔날레의 장소·지역성에 대한 강조는 장소성을 발견한다는 긍정의 의미와 장소성을 상실한 세태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지역의 정체성은 그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과 구체적인 삶을 살아온 지역민들이 일궈낸 역사의 압축이다. 한 지역의 사건은 때로 전 지역에 정치·사회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로써 그 사건은 모두의 역사, 모두의 기념의 대상으로 의미화하면서 지역 정체성과 특정성을 구축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역사적 특정성을 가진 대표적인 지역은 전남 광주이다. 광주 비엔날레를 방문하는 나의 심정은 늘 무겁다. 고교시절 뜬소문처럼 듣고, 대학시절 처녀들의 젖무덤이 잘리고 덥수룩한 머리의 청년들이 군인들의 몽둥이와 군화 발에 치이는 닳고 닳은 사진으로 대했던 그 광주, 그러니까 5·18 민주항쟁으로 떠오르는 내 기억이 만든 페이소스인지 모른다. 이렇듯 장소는 역사의 현장으로서 사회의 집단 기억과 구성원 개개인의 감정을 분리하지 않는다. 이 점이 광주비엔날레를 보는 관객의 수용과 평가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이다. 광주민주항쟁은 군부독재의 폭력이 극에 달했던 사건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결정적 계기로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였다. 유네스코는 광주민주항쟁을 필리핀, 중국 등의 민주화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운동으로 기록한다. 대한민국 군인의 총칼에 희생당한 광주시민들의 실상은 국가권력 앞에서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요구했다. 그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동시대 사람들은 훗날 역사의 허구성을 깨우치고 동시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졌다.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으로 형성된 87년 정치체제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문화예술 지형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문학, 음악 등 문화계에 리얼리즘이 일어났다. 특히 미술계에서는 회화와 판화를 중심으로 민중미술이란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광주민주화운동은 해방 이후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광주의 역사적 지역성은 이 사건에 있다. 따라서 광주비엔날레는 일차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억을 소환하는 역할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지역에 존재했던 엄연한 역사적 사건의 재현과 기억의 소환을 통해 인권, 빈부격차, 난민 등 인류가 직면한 보편적 문제에 다가서는 비엔날레의 구현, 광주비엔날레의 지속적인 특정성은 이 지점에서 발휘할 것이다.


2018 광주 비엔날레는 광주라는 지역의 특성, 광주비엔날레의 초기 취지 등을 고려할 때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첫째,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주제의 평이함이다. 세계화 이후 민족적, 지정학적 경계가 재편되고 있는 동시대 현상 속에서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 정치, 경제, 감정, 세대 간 복잡해지고 눈에 보이지 않게 굳건해지고 있는 경계에 대해 다각적인 시각으로 조망할 계획이라는 주최 측의 기획 의도는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온 타 전시 주제와 그리 다른 것이 없다. 42개국 163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는 주제전, GB커미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광주비엔날레전시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구 국군광주병원 등에 걸쳐 전시했는데, 다수의 큐레이터 기획전이 갖는 주제 분산의 한계로 인해 대다수의 작품이 주제를 선명하게 지시하지 않았다. 이는 광주의 역사성과 장소성과 맞물려 중요한 문제이다. 광주 비엔날레는 창설 취지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건강한 민족정신을 존중하며 지구촌시대 세계화의 일원으로 문화생산의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모색해 왔다. 광주 비엔날레의 특징은 역사적 사건의 발상지로서 그 정신의 공유에 있다. 세계의 수많은 비엔날레와 구별된 비엔날레로서 광주 비엔날레의 변별력과 지향점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역사적 사건은 엄연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나 작품이 애매함이나 모호함 보다는 선명하고 뚜렷한 주제의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광주비엔날레가 2018년 광주정신의 지속가능한 역사화·담론화의 시각화를 위해 시작한 ‘GB커미션’은 매우 적절한 시도로 보인다. GB커미션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처를 문화예술로 치유·승화시킨다는 광주비엔날레 창설배경을 도시의 역사 현장과 결합한 작품들을 통해 세계 시민사회에 재천명하면서 민주·인권·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으로 계엄사에 연행돼 심문하는 과정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부상당한 시민들이 치료를 받았던 구 국군광주병원을 전시공간으로 사용하여 장소특정성을 극대화하였다. 2018년 주제전이 집단 큐레이팅의 전형적인 실패사례라든지 주제의 식상함을 드러냈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지만, GB커미션은 광주비엔날레가 차별화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법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출발점이다. 광주만의 역사를 장소의 특정성으로 되살리는 방법을 통하여 차별화한 광주비엔날레의 가능성을 선보인 GB커미션이 향후 주제전과 어떤 관계설정 속에서 융합하여 발전해나갈 것인가가 광주비엔날레의 지속적인 차별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관건일 것이다. 


제렉스는 2015 부산비엔날레학술심포지엄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비엔날레가 부산시민의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부산의, 부산사람들의 비엔날레가 가진 독특함과 차별성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부산의 독특함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부산의 지리적 특징인 뛰어난 경관의 바다에 있다. 부산비엔날레의 차별화는 바다라는 지리적 특성을 자연, 생태, 대지, 환경, 문학, 노래 등의 주제와 결부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존 K. 그란데( John K. Grande)의 생태 미술적 접근은 부산비엔날레의 한 대안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란데는 자연미술가들이 오늘날 신체적이고 감각적이고 살아있는 세계로부터 인간을 단절시키는 마취적인 문화로부터 인간을 자연과 연결하는 다리라고 하면서 이 역할이 미래의 교육자, 저술가, 예술가들에게 도전과제임을 강조한다. 그는 “자연미술(Nature Art)”이 진정한 세계화, 타문화의 상호교류적 참여를 끌어 모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해날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주장은 자연미술가의 입장일 수 있지만 바다라는 최적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는 부산으로서는 주의할 필요가 있는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타이페이 시립미술관 학예실장 팡-웨이 창(Fang-Wai Chang)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를 돌아본 소감을 말하면서 본 전시보다는 산에서 열린 작은 규모의 전시가 더 인상적이었으며 그런 좋은 기억은 요코하마나 이스탄불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술회한다. 그러면서 창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한국이 더 많은 시민단체들에게 도움을 주고 열정적인 참가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비엔날레를 개최하려면 역사와 자연, 지역의 현실들과 예술적 가치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연속의 거대도시라는 부산의 지리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재의 <바다미술제>를 비엔날레의 대표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부산비엔날레 당국은 부산비엔날레가 1981년과 1987년에 시작한 부산청년비엔날레와 바다미술제, 1991년에 열린 부산국제야외조각심포지엄 등을 1998년에 통합한 미술 전시로서 정치적인 논리 혹은 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발생하지 않고, 부산 지역미술인들의 순수한 의지와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고유한 특성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바다미술제 측의 소개는 약간 다르다. 바다미술제에서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비엔날레 행사에 통합·개최하다가 바다미술제를 독자적인 문화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2011년에 부산비엔날레로부터 분리하면서 홀수 해마다 부산 곳곳의 해수욕장 등에서 독립적으로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통합 혹은 독립개최의 방점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위의 사실은 바다미술제가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는 바다미술제가 부산 지역의 자연환경 및 여건이 반영된 결과로서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조우한 미술제임을 추론하게 한다. 2011년 이후 바다미술제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떠나 바다와 모래사장 위에 자유롭게 펼쳐진 조각 등의 설치작업을 통해 관람객과 작품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현상학적 체험을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국고 지원 시각예술분야 평가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은 《보다-바다와 씨앗SEE-SEA & SEED》전에 이어 2017년 다대포해수욕장에서 열린 《아르스 루덴스 Ars Ludens: 바다+미술+유희》는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의 예술적 가치를 적극 활용한 전시였다.  드넓은 백사장과 바다의 수평선 위에 배치한 작품들이 관객과 함께 어우러져 유희의 축제를 펼친 전시 공간은 또 하나의 ‘가상적 실재(Simulacre)’로서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더욱 풍요로운 ‘감각(Sensation)’으로 이끌겠다는 기획 의도를 어느 정도 성취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바다미술제는 38만4천526명이 전시장을 찾았는데 이는 2018년 광주나 부산비엔날레의 관람자 수를 넘어선 수치이다. 비엔날레의 대중성이 성공여부의 절대적 평가기준은 아니지만 바다라는 자연환경을 활용한 바다미술제가 부산 시민들과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임엔 틀림없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의 자연환경 등 장소특정성이 차별화한 비엔날레를 만들고 이것이 곧 비엔날레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임을 입증한다. 


이상과 같이 역사적 지역성과 지리적 조건은 비엔날레의 완성을 위해 전시 작품을 축으로 기여한다. 이때 지리적 조건과 역사성은 장소특정적 비엔날레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작품의 예술성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차별화한 비엔날레를 만든다. 이러 면에서 광주와 부산은 역사성과 지리적 조건과 같은 장소특정적 비엔날레를 위한 훌륭한 구성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관건은 이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전략적 사고의 유무이며, 이로서 광주와 부산의 차별화한 비엔날레의 성공여부는 판가름 날 것이다.  

 

담론생성의 장으로서 비엔날레 


장소의 역사와 지리적 조건이 장소특정적 비엔날레를 이루는 고정적 조건이라면 담론은 물리적 조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 이념과 정신과 같은 기호적 함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유동적 조건이다. 이념과 정신은 추상적이다. 추상적인 정신은 구체적인 사건의 기억을 소환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소멸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일어난 6월 항쟁을 대학생 10명 중 6명이 모르는 실태는 이를 증명한다. 장소의 정체성은 담론의 생성, 활성화를 통해 기억되고 재생한다. 또 담론은 지역의 역사성과 지리적 조건을 보편화하는 매개로 작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장소특정적 비엔날레에서 장소는 담론의 벡터이다. 담론은 지역과 세계로부터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담론의 보편성은 지역의 특정한 역사와 동시대 역사적 맥락이 조우할 때 이루어진다. 이러한 보편성을 잃고 지역적 관점에 머물면 국제적인 비엔날레의 의미는 희미해진다. 이렇듯 비엔날레의 담론은 보편성을 갖춰야 하지만, 보편성에 매몰되면 그 속성으로 인해 담론의 선명함이 희석되고 표준화의 함정에 빠진다는 맹점이 있다. 따라서 보편성을 갖추면서도 담론의 명확성을 유지하면서 표준화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 잡힌 방법론이 필요하다. 심상용은 지역 언어로 남기를 포기하고 세계의 언어를 지향하는 현대미술을 대규모로 전시하는 비엔날레에서 괄목할 만한 변별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지적하면서 차별화한 비엔날레는 그 자체로 허구라고 지적한다. 심상용의 지적은 보편성과 특수성의 균형을 이룬 차별화한 비엔날레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한다. 비엔날레가 세계화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지나치게 추가 기울어진 현 상황에서 비엔날레의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성과 역사성을 강조한 명확한 담론이 필요하다. 예컨대 “광주정신은 억압과 배제 그리고 소외의 최소화와 자유, 민주, 평화 그리고 인권의 최대화를 위한 저항이다. 광주정신은 광주의 정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보편적 시대정신이기 때문에 정신인 것이다.” 라고 했을 때 그 타당성은 광주 시민이 자유, 민주, 평화, 인권을 위한 치열한 사건을 경험한 데서 설득력을 얻는다. 이처럼 장소특정적 비엔날레의 담론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때 차별화한 비엔날레는 비로소 가시권에 들어온다. 


최근 광주비엔날레는 타인의 입을 통해 광주를 말하는 맥락의 재구성이나 광주와 유사한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통한 특수성의 보편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광주라는 지역의 특수성 즉 역사성과 결부하지 않으면 보편성에 함몰하여 변별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마치 서도호의 작품 <서울 집/L.A. 집/볼티모어 집/런던 집/시애틀 집/ L.A. 집…>이 그 제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서울’이라는 오리지널 로케이션의 중요성이 점차 희석되어 ‘서도호가 떠나온 그의 고향집’은 끝없는 ‘전치’의 과정 속에 누구의 집도 될 수 있는 보편적 존재로만 남는 이치와 같다. 광주 비엔날레는 담론의 배경이자 근거였던 광주민주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광주라는 지역에 실재했던 5·18민주화운동의 실체와 기억을 반복하여 소환하는 것을 전제로 오늘의 맥락과 관련한 다양한 담론을 생성해야 한다. 부산비엔날레도 마찬가지다. 대도시 안의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을 활용한 비엔날레의 개최와 이와 연계한 자연, 생태, 환경 등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성해나갈 때 보편성과 지역성의 균형을 확보하고 차별화한 비엔날레로 지속가능할 것이다. 


비엔날레의 담론을 논함에 있어 기획자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뒤에 제안할 공동체적 협의체에서 토의 과정을 거친다 해도 비엔날레의 담론의 주제와 방향 등 최종 결정에 대한 책임은 결국 기획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필의 언급은 이렇다: 


        비엔날레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나라의 작가들이 만나는 장소이지만 

       장소특정성을 강조하는 주제와 지역의 작가를 발굴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큐레이터는 비엔날레가 ‘누구의 이야기, 누구의 역사, 누구의 지역, 누구의 의미, 

       누구의 미래에 대한 것인지’ 어떤 작가들이 제도에 참여하고 어떤 대중들이 어떻게 

       이득을 볼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려하여 그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힘써야 한다. 


기획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비엔날레는 보편적인 담론(discourse)의 반복적 순환을 극복하고 관객과 상호소통(dialog)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talk)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기획전의 성격을 띤 비엔날레에서 담론의 책임은 기획자에 있다. 이처럼 중요한 기획자의 역할을 고려할 때 지역과 세계의 이슈를 선정하고 담론화하는 과정에서 기획자의 윤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할 포스터(Hal Foster)가 경고한 “민족지학적 관찰자”의 태도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포스터에 의하면 “예술가는 자신을 재현하는 생산물에 지역을 개입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허가를 받은 권위 있는 전형적인 외부자”이다. 장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외부자의 유목은 여행자의 유람에 그칠 수 있다. 기획자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족지학적 관찰자로서 권위를 가지고 지역문제에 개입했을 때의 폐해 즉 세계화에 대한 헛된 기대, 과도한 투자의 후유증 등은 작품을 걷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작가나 기획자가 아닌, 지역에 남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세계화의 이름으로 치러지는 대규모 행사의 위세 앞에서 정작 지역의 특성이나 지역의 이슈가 잠복하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점은 반드시 외국의 기획자를 초대한 경우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국내외를 망라하고 어떤 기획자든 해당 장소의 이슈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배려가 결여될 경우 언제든지 “민족지학적 관찰자”의 오류, 즉 섣불리 잃어버린 역사를 밝히려 하거나 지역 거주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드러내려는 타자화의 욕망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구체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흔적을 지우며, 그 장소와 연결되어 작동하는 그들의 심리적 구조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크다. 이러한 위험을 예방하는 하나의 조치로서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장소특정적 비엔날레를 위한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 


차별화한 비엔날레의 조건인 장소의 역사성, 지리적 조건, 담론은 많은 토론과 협의의 과정을 통해 그 중요도와 실현 가능성이 결정된다. ‘장소’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주민, 전문가, 행정관계자 등 비엔날레의 주체들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공동체적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주디스 바카(Judith Baca)는 장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미술가와 역사가, 과학자, 환경운동가, 사회봉사자 등을 포함하는 공동 작업을 제시하면서 협의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카의 주장에서 주목할 점은 구성원의 다양성이다. 이는 예술의 창의성·감각성, 인문학의 사회성·문화성, 경영 및 기술의 과학성이 융합할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의 구축을 의미한다. 협의체는 남녀비율, 세대별 참여율, 각 주체의 숫자 등 세세한 면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협의체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업시스템이어야 한다. 다양한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협의체는 진정 새로운 책임의 형태, 큐레토리얼 과정을 보는 새로운 방법, 다채로운 관점을 열 수 있는 과정의 방식이다. 이것은 미술 전문가의 ‘독단’과 ‘시선의 한계’를 방어하는 안전장치이다. 


장소특정적 비엔날레를 위한 공동체적 협의체에서는 특히 지역주민의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지역의 역사적 지리적 특징을 살리는 장소특정적 비엔날레에 구체성을 부여하여 비엔날레의 획일화를 극복하고 특수성을 형성하는데 그들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지역거주자들은 자신들의 거리에 관한 한 ‘전문가’이고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도시의 구성 요소들을 능수능란하게 판단하며 지역적 분위기에 일체감을 느낀다. 단순한 참여 수준을 넘어 창조성의 실제적인 권리, 즉 제안권과 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수행과 결정 과정에서 지역주민의 실질적인 참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장소’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의 도출은 예술 감독이나 큐레이터 등 미술계 전문가들로만 이루어진 토론장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주민과 함께 지리학자, 지역문화연구자, 도로교통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안과 결정권에서 실질적인 평등이 이루어진 공동체적 협의체 안에서 장소특정적 비엔날레의 조건인 지역성, 역사성, 담론 등은 더 선명하고 풍부해질 것이다.


                                                                          미술평단, 2018 겨울호(제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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