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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공립미술관의 독점체제와 권력중심화 문제

심현섭

한국국공립미술관의 독점체제와 권력중심화 문제

한국국공립미술관은 자본주의 체계에 기거하면서도 시장을 벗어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중심적 자본주의 등을 거론하지만 이 또한 시장이라는 기본 원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결국 사회는 시장원리로 구성된다. 그러나 국공립미술관은 시장 속에 살면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경영의 압박에서 자유롭고, 따라서 이들의 전시기획은 이익 창출이라는 족쇄에 묶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불가피한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금을 기반으로 전시, 관람, 시설 환경면에서 우위에 있는 데다 국가라는 합법적 권력의 우산 아래 다른 기관이 따라오지 못하는 법적, 행정적 위상을 확보한다. 이렇듯 자본과 경쟁에서 자유로운 국공립미술관은 주어진 기반시설과 위상만으로 일정한 문화 권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문화 권력이 한국 미술문화전반의 전망과 지도를 보고 다양한 문화기관과 상생을 꾀할 때 국민문화증진이라는 문화전반의 긍정적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은 소규모 미술관 기관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공공기관의 위상과 공적기금을 이용하여 전시, 출판, 교육, 기업 협업 등 미술관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독점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국가와 세금이라는 공적 자산을 배경으로 ‘주어진’ 힘이 많은 공적기관이 사적기관과 동업하려는 방향보다는 내부 업무영역과 조직의 확장에 치중할 때 공적영역의 지나친 확대, 즉 독점과 권력의 중심화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미술의 다양한 발전과 국민의 편만한 문화적 향유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돈과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한국의 국공립미술관의 전시기획의 기준은 관람객의 숫자인 듯하다. 유통에서 자유로운 국공립미술관이 상대적으로 관객을 모으기 쉬운 전시기획에 기울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 한국 미술의 균형과 미래를 위한 투자와 작가 육성, 공공의 교육에 합당한 공공성을 가지는 전시 등 국공립기관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 있는 전시기획은 관객유치라는 내적 검열을 통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흥행의 논리에 개입하는 요소 중 하나는 국공립미술관의 정치성이다. 여기에서 정치성은 사상이나 철학과는 무관한 정치성이다. 국공립미술관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이는 대략 2-5년 임기의 관장이 아니다. 수십 년 자리를 지키는 전문 관료들이다. 그들은 나라에서 임명하는 관장의 정치성 성향에 맞추어 전시를 기획한다. 요사이 국공립미술관에서 부쩍 늘어난 민중미술에 대한 전시기획이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떨떠름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규모 시설을 이용하여 정권에 맞는, 정권이 뽑아 놓은 관장의 정치성에 맞는 전시를 기획하고 관객의 숫자를 늘리면, 문화정책을 홍보 혹은 선동의 수단으로 삼고 국민의 세금을 투여하는 정권이나, 이를 수행하는 관료들에게는 최선의 전시다. 이런 정치성의 영향은 정부를 대리하는 일부 예술 재단의 사업 운영에도 흔히 드러난다. 물론 미술이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정권이나 관장의 영향을 무조건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명분의 자의성이 지나칠 때 관객의 외면을 피할 수 없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의 <광장:미술과사회 1900-2019>전시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그 전조인지 모른다. 

‘천박한’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맘모니즘은 인간 본성인 이기심의 한계를 인정할 때, 동감과 자성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시장에 살면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치열한 생존의 법칙을 국민의 세금으로 벗어나 있는 국공립미술관의 정치성과 경영방식은 부도덕한 면이 있다. 이는 소규모 미술관들과 상생하는 구조에 대한 연구와 실행보다는 조직의 확장을 통해 관객을 독점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2018. 4.7일 <미술관은 무엇을 연구하는가>로 시작한 미술관 역할 시리즈(2019. 6월의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까지로 짐작되는)의 내용은 한 마디로 한국미술을 독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합관리하고 미술관장의 차관급 격상에 대한 논의는 그렇다 치고, 외국에 비해 절대약세에 있는 소규모 미술관과 상생하는 기초적 토대 없이 돈 걱정 없는 국립미술관에서 출판업무까지 하겠다는 식으로 업무와 조직을 확대한다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비윤리적인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 국공립미술관의 출판업무 자체보다는 한국의 미술관 지형 상, 국립미술관이 드러내는 독점의욕이 우려되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느낌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는지, 내 기억이 맞는다면 2018. 11. 30일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하는가> 심포지엄에서 전문가로 보이는 한 관람객은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역할 모색이 시급한 국립미술관이 시대에 뒤떨어진 제국주의 논의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강하게 어필하였다. 또 작지만 영향력 있는 미술관 관장은 내게 국현과 협력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국공립기관이 다른 소규모 미술관과 상생하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없는 상황에서 조직 확장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려는 태도는 오늘날 전시의 획일성과 대형화, 한정된 문제의식, 그 문제의식을 풀어가는 방법의 유사한 반복, 관객이 작가 혹은 기획자의 생각에 먼저 동의하지 않으면 개연성과 앞 뒤 논리를 잃어버리고 마는 주입식 전시구성 등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 국공립미술관으로 집중된 미술권력을 해체할 이유는 많이 있지만, 한국미술의 다양한 발전, 관객의 기본적인 관람권을 위해서라도 관료중심의 국공립미술관의 무분별한 확대와 독점체제, 이로 인한 미술권력의 중심화는 피해야 한다.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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