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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4/ 모더니즘의 관념적 경험과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

심현섭

공공미술 4/ 모더니즘의 관념적 경험과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

1960년대 미니멀리스트가 등장한 이래 작품 감상에 대한 모더니즘의 ‘관념적 경험’과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이 부딪힌다. 그린버그가 대변하는 모더니즘의 관념적 경험은 작품의 내적 관계들과 관람자의 의식 및 사유가 단독으로 만나는 즉각적인 순간을 중요시한다. 반면 현상학적 체험은 이를 작품이 놓인 장소와 관객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경험의 지속적 시간으로 대체한다. 모더니즘의 관념적 경험과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은 모두 세계와 현상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현상학의 시조인 후설(Edmund Husserl, 1859 –1938)은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존재’가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이후 사르트르는 자아의 의식이란 것이 현존하는 세계로부터 고립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선험적 자아’를 부정한다. 이어서 메를로-퐁티는 순수한 사유와 신체-주체를 구별하여 인간의 지각작용을 신체와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이러한 현상학은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선험적 자아’를 기초로 현상을 파악하는 그 때까지의 철학에 대한 회의에서 나왔다. 특히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 주체에 대한 회의와 피폐한 삶에 대한 반성을 불러왔다. 이 시기는 주체로서 인간의 지각과 사유는 더 이상 세상을 주도하여 이끄는데 적절하지 않으며 다른 존재의 도움과 역할 없이는 멸망에 이를 것이라는 실존적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새로운 사상을 요구했는데, 그 요구에 반응한 사유가 현상학이었다.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은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지각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다. 지각의 현상학은 인간의 의식이 현존하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다는 실존주의 철학에 근거하며, 신체 속에 육화한 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관념들은 결코 절대적으로 순수한 사고일 수 없고, 오히려 문화적 대상들이란 필연적으로 표현이 행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표현 행위의 원천은 이미 원초적으로 표현적인 그러한 현상적 신체 자체라는 사실을 주지시켜야만 한다. 요컨대 현상학은 신체 속에 육화된 의식, 그리고 세계에 내존 하는 의식에 대한 앎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까닭에 <육화된 주관성>은 메를로-퐁티의 중심이 된다.”(Monica M. Langer, 1989)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몸은 인간이 세계와 교류하는 매개체이다(Maurice Merleau-Ponty, 1964). 세계/대상은 또한 인간과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또 하나의 거대한 몸이며 정보 교류의 도구는 인간의 몸이 세계를 상대해서 발휘하는 원초적인 기능인 ‘지각(perception)’이다. 지각은 플라톤 이후 인간의 사유를 지배해온 모든 합리적 이성과 객관적 사고에 앞서 있는 근본적인 기초로서 모든 존재가 항상 전제로 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지각을 이끄는 것은 비전과 운동이 상호 융합하여 작용하는 ‘신체’다. 

신체와 대응하는 관념이나 사유가 대상을 객체화한다면, ‘신체’는 사물과 같은 세계의 구성물로서 새로운 자아를 방출하는 운동이다. 이렇게 신체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관점으로 지각경험의 공간-시간적 구조를 되살림으로써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관념적 사유를 전복한다. 이러한 신체의 관점에서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본다고 했을 때, 그것은 고정불변한 세계로 고착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움직임, 즉 신체적 운동에 따라 새로운 정보를 얻고 늘 변화하는 자신만의 경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이는 작품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신체적 운동이 우리를 ‘육화한 주체’, 즉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현상적 신체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체가 이끄는 지각은 미술작품 관람에 있어 대상(작품)과 관람자의 몸, 거리, 장소의 맥락이 유기적으로 얽혀 관심과 쾌감을 유발한다. 관객은 어떤 특정한 관점을 갖고, 이로 바탕으로 대상을 인식한다.

 “그러나 경험 체계는 마치 내가 신인 것처럼 내 앞에 펼쳐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확실한 관점을 가진 나로 인해 체험된다. 나는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다. 그것은 어떤 관점 안에서 나의 관여인데, 그 관점은 나의 지각의 제한과 모든 지각의 지평으로서 완전한 세계를 열어젖히는 것, 모두를 가능하게 한다.”(Merleau-Ponty, 1962)

미니멀리즘 역시 작품과 관객, 재료, 작품의 배치 장소 및 환경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경험에 주목하였다, 이로서 미니멀리스트들은 작품관람자의 경험을 이전의 관념적·초월적 영역에서 신체적·물리적 영역으로 확장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각작용은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이차원적 좌표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 작품 그리고 이 둘이 존재하는 장소 사이의 삼차원적 좌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었다.”(Douglas Crimp, 1986)

한편, 모더니즘은 현상을 작가의 선험적 경험을 담은 작품과(경험론) 관객의 의식이 만나는 관념적 조우(관념론)로 보았다. 이는 예술적 경험은 작품으로부터 나오고, 그것의 근원이 작가에게 있다고 보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작품과 관객의 단독적 만남을 강조한 미니멀리즘 이전의 작품들은 작품 안에서 의미 있는 형식 혹은 유기적 관계를 완결 지으려는 시도 속에 외부와 단절된 채 모더니즘의 특징 중 하나인 작가의 주체성을 근거로 존재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작가의 주체성은 작가의 신비화의 다른 이름이다. 미니멀리즘은 이에 반발하여 ‘저자의 죽음’을 구현하려는 듯 작가의 주체성을 배제하려 노력하였다. 미니멀리즘의 특징인 ‘하나의 사물 다음에 또 하나의 사물(one thing after another)’이 연속하여 나타내는 반복성은, 그것이 작가의 합리주의와 개입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단순한 질서(simply order)이기 때문이다(Donald Judd, 1965). 모더니즘의 관념적 경험이 전통적인 데카르트적 주체의 자기 완결성에 방점을 찍었다면, 미니멀리즘의 신체적 경험은 작품과 관객의 신체, 장소 등과 관계하는 상호주체성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또한 메를로-퐁티의 신체적 지각에서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스트들은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에 대한 감상은 새롭게 변할 것이기에, 관람자의 경험을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였다. 애초부터 현상학의 의식적 행위는 단번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람자의 시간은 작가와 작품에 의해 감상의 경험이 단번에 일어나야 하는 모더니즘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소모적인 시간이었다. 이렇듯 탈자아 혹은 탈주체를 기반으로 하는 현상학, 특히 몸을 지각의 매개로 정초하는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 작품에 내재한 작가의 주체성과 즉각성을 거부하였다. 특히 작가의 주체성을 관객, 재료, 주변 환경, 장소 등과 같은 여러 요소 중의 하나로 격하하였다. 미니멀리즘이 주도한 이 같은 주체의 분절은 작품이 놓이는 장소, 상황, 관객의 참여 등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는 현상학적 체험을 또 하나의 예술적 경험으로 만들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 1941- )는 이러한 주체의 분절을 자본주의의 생산논리와 연결 지으며 완전히 파편화한 대중문화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체로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니멀리스트의 ‘살아있는 신체적 경험’ – 과거 지식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에 대상과 조우하여 합체하는 – 의 주체는, 조금 더 밀면 완전히 파편화한 현대 대중문화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체로 아주 무너질 수 있다. 미니멀리즘은 전통적인 미술의 낡은 자아중심적인 주체를 느슨하게 잡음으로써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파편화를 준비한다고도 할 수 있다.”(Rosalind Krauss, 1990)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육체적으로 경험되는 1960년대 미니멀리즘의 주체가 198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호와 시뮬라크라의 미로 안에서 흩어진 주체로 변질하면서 자본주의의 상품생산논리에 함몰하는 과정을 미술사적으로 개관한 결과였다. 동시대 미니멀리즘의 작업과 이론에 대한 강한 비판은 모더니즘의 수호자격인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 1939- )로부터 나왔다. 그는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이 요구하는 지속적인 시간과 그러한 시간을 지속시키는 작품 외 요소들을 연극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로써 모더니즘의 관념적 경험과 미니멀리즘의 현상학적 체험 사이에 심도 있는 논쟁이 펼쳐진다. 이 논쟁으로 공공/미술에서 다양한 재료의 사용, 장르 융합의 싹이 트고 작품과 장소와 공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다.      

(다음: 미니멀리스트와 마이클 프리드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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