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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7/ 새로운 장소를 향하여: 장소 특정적 미술

심현섭

공공미술 7/ 새로운 장소를 향하여: 장소 특정적 미술


미술은 한 번도 장소를 떠나본 적이 없다. 삶의 터전은 미술의 처음 장소였다. 무기와 몸에도 미술은 터를 잡았으며 수호의 상징인 솟대가 마을을 장식하였다. 권력과 손잡은 미술은 신전과 교회의 벽에서 기득권을 향유하였다. 권력이 무너지자 광장으로 나온 미술은 이내 부르주아를 등에 업고 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미술관에서 대중의 경외를 기다리던 미술은 20세기 후반 들어 미술관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해프닝, 퍼포먼스, 공동체 미술 등 다양한 형태로 공공장소에 펼쳐지는 미술은 원시의 그것처럼 인간의 삶에 밀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미술이 그 시원에서부터 장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지라도, ‘장소’라는 개념의 본격적인 논의는 현상학적인 미니멀리즘의 교훈으로부터 출발했다(Miwon Kwon, 2002).

크라우스에 의하면 모더니즘 조각은 작품이 받침대(pedestal)를 흡수하고, 재료와 제작과정을 통해 장소와 상관없이 자체로서 가치를 갖는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써 장소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였다(Rosalind Krauss, 1979). 한편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에 미니멀리즘을 따라 처음 출현한 장소 특정적 작업은 노스탤지어적 욕망에 근거한 부동성, 유형의 물리적 지형으로서 실제적인 장소에 집착하고, 작품과 관객 사이의 경험에 바탕을 둔 ‘현전(presence)’을 고집했다(Miwon Kwon).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 조각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작품과 장소의 분리와 이동성 대신 작품과 장소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수립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방법으로 모더니즘에 반응하였다. 이렇게 미니멀리즘의 장소 특성적 미술은 모더니즘적 미술의 자율성을 벗어나 주변 건축 및 풍경과 관계를 맺었다.

        “회화와 조각 같은 전통적 매체와 그 제도적 배경의 한계를 넘어서려는(네오아방가르드적인) 미학적 열망, 의미의 근거를 미술 오브제 내부로부터 그 맥락의 우발성으로 옮기고자 하는 인식론적 도전, 주체를 낡은 데카르트적 모델로부터 살아있는 신체 경험의 현상학적 모델로 재구성하려는 시도, 미술작업을 이동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유통시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세력들에 저항하고자 하는 자의식적인 욕망, 이 모든 긴급한 요구들이 결국 미술을 실제적인 장소에 밀착하도록 만들었다.”(Miwon Kwon)

그즈음, 1974년 미국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은 공공미술 작품이 ‘바로 그 장소에 적합‘해야 한다고 지침을 변경함으로써 작품과 장소의 관계를 강화하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한다. 로버트 배리(Robert Barry, 1936- )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8- )의 ‘작품은 옮길 수 없다’는 발언은 장소와 작품의 관계에 대한 당시 작가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이와 같이 1960년대 후반의 장소 특정적 미술에서 ‘장소’는 실제적인 지형을 가리키는 물리적인 장소로서, 70년대 후반까지 공공미술의 장소 개념을 지배한 실증주의적인 장소를 가리킨다. 

“내가 강조했듯이 <기울어진 호>는 처음부터 장소 특정적 조각으로 구상되었으며, ‘장소에 따라 조정’하거나 […] ‘재배치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소 특정적 작품을 주어진 장소를 둘러싼 환경적 구성요소들을 포함한다. 장소 특정적 작품의 규모와 크기, 위치는 그 장소가 도시이든 풍경이든 건물내부이든 간에 그 지형에 의해 결정된다. 작품은 장소의 일부가 되어, 그 장소를 개념적으로도 지각적으로도 재구성한다.”(Richard Serra, 1989)

세라가 <기울어진 호 Tilted Arc>(1981, 맨해튼) 철거 논쟁의 과정에서 밝힌 위의 글은 물리적 실체로서 장소를 강조하는 가운데, 장소와 무관한 작품의 고유성을 추구하였던 모더니즘과는 다르게 작품과 장소의 결합성을 주장한다. 또한 여기에는 미술의 자율성과 작가의 주도성 같은 모더니즘 미학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는 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장소 개념이 분출하려는 시기의 혼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시대의 혼돈은 장소의 비물질화와 작가의 유목이 빚은 저자성 부활이라는 모더니즘의 복귀로 보이는 의외의 역설을 낳는다. 
    
<다음: 장소의 비물질화와 관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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