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공공미술 8/ 장소의 비물질화와 기호화

심현섭

공공미술 8/ 장소의 비물질화와 기호화

미니멀리즘 이후, 작가의 주도성과 신비화가 위축하고 매체가 다양해지는 현상은 이를 기반으로 한 모더니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징후였다. 더구나 매체의 다양화를 주도한 것은 더 이상 모더니즘이 강조하였던 작가의 의도나 천재적인 구상이 아니었다(혹은 더 이상 그렇게 해석되지 않았다). 크라우스에 의하면 매체의 다양화는 동시대 아방가르드들이 기술에 눈을 돌린 결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현상이었다(Rosalind E. Krauss, 2011). 이는 1839년 사진의 발명으로 기술이 미술의 영역에 침투한 이래, 꾸준히 진행해왔던 기술과 미술의 상호 갈등과 보완의 관계가 미학적, 기술적으로 동등하고 불가분의 관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술과 기계(술)의 조우로 이루어진 미니멀리즘 이후 미술은 모든 예술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린버그가 강조한 바 있는, 자본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개념미술은 미술의 자본주의적 상품화에 저항하였고, 이는 미술의 물질적 오브제를 거부하는 현상으로 진전했다.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1937- )는 이 시기를  ‘오브제의 비물질화’ 과정으로 본다. 크라우스는 당시, 이전의 물질적 실체가 ‘아이디어’와 ‘개념’으로 대체하면서 미술의 특정매체에 대한 환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9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위기 당시 세 가지 일이 벌어지면서 특정 매체가 역사의 쓰레기더미 위에 떨어진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첫 번째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미니멀리즘의 형광상자, 평판조각박스와 같은 즉자적 물체의 상품화에 대한 거부다. (…)  두 번째는 개념 미술과 그 대상이 이제 분리된 매체의 분산을 초월한 아이디어 미술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의해 대체되었다는 선언이었다. (…) 세 번째는 뒤샹이 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인 피카소를 일식(eclipse)한 것이다. (…) 미술이 ”아이디어“가 되면서 과거의 특정매체는 사라졌다. 이 세 가지는 발터 벤야민의 ‘기계적 복제시대’에 대한 언급에 걸맞은 포스트 미디엄 조건이라 불리는 우리 시대를 열었다.”(Rosalind E. Krauss, 2011)

이 시기는 크라우스가 말했던 모더니즘의 한시적이나마 유익했던 맥으로서 오염되지 않은 이상주의적 공간, 즉 장소가 기술과 사물의 물질성과 오염된 일상적 공간을 거쳐 아이디어와 개념이라는 비물질적 장소로 전환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여기에서 ‘포스트 미디엄 조건’은 미술 작업을 위한 관습과 규칙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까지 매체에 포함하는 것으로 매체의 물질성을 개념과 아이디어로 대체하는 관념적인 매체의 수용을 뜻하였다.

한편, 전통적 매체와 제도적 배경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미니멀리스트들의 미학적 열망은 개념미술과 제도비판미술로 이어졌다(권미원, 2002). 이들은 미술의 장소를 미술 제도를 비판하는 호전적인 투쟁의 장소로 인식하였다. 이들의 미술제도 비판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장소는 당연히 지금까지 미술작품을 독점해온 미술관 같은 전시 공간이었다. 전시 공간 내에 존재하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권력의 폐습을 폭로하려는 이들의 분위기는 뷔렌(Daniel Buren, 1938- )의 언급에 잘 나타난다.

        “미술은 다른 무엇보다도 전적으로 정치적이다. 필요한 것은 미술이 존재하고 투쟁하는 형식적이고 문화적인 한계들 양자 모두에 대한 분석이다. 이러한 한계들은 여러 가지이며, 상이한 강도를 지니고 있다. 비록 지배 이데올로기 및 그것에 연루된 미술가들이 모든 방법을 다해 그 한계들을 위장하려 하고, 그 한계들을 날려버리기에는 아직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지만, 그것들을 폭로할 때는 왔다.”(Daniel Buren, 1970)

작가의 작업행위를 저해하는 미술제도와 같은 정치·문화적 폐습에 저항하는 이러한 시도는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작가로 하여금 갤러리/미술관이나 다른 전시장소의 물리적 매개 변수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정한 입지를 지닌 물리적 조건이 장소의 핵심 요소에서 기본 요소로 축소하는 이러한 과정에서 ‘장소의 비물질화’는 본격화한다. 이는 장소가 물리적인 지형을 가리키는 즉자적 장소에서 사회·경제·정치적 의미를 함의하는 기호로 바뀌는 ‘장소의 기호화’를 의미한다. 

장소의 비물질화 및 장소의 기호화는 공공미술의 지형을 재편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역사의 분기점이 늘 그러하듯 역사적 재편을 추동하는 필연적인(한편으로 우연하게도) ‘사건’이 발생한다. 공공미술의 비물질화 과정에서 <기울어진 호> 철거 논쟁이다. 리처드 세라가 1979년 미 행정관리청의 의뢰를 받고 1981년 뉴욕 연방 광장에 설치한 높이 365센티미터, 길이 6미터의 이 공공미술은 언론과 사회의 첨예한 관심 속에 철거여부에 대한 법적 심의, 공청회 등을 거쳤다. 그 결과 1989년 3월 15일, <기울어진 호>는 철거된다.  

당시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어난 작가와 비평가, 법률가, 정치가, 대중 사이의 치열한 논쟁은 그동안 공공미술이 가지고 있던 틀을 흔들면서 미술과 장소, 작품/작가의 부동성과 이동성, 작품을 둘러싼 작가와 관객의 권력과 상호소통, 장소의 기호로서 공동체, 장소 해제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뜨거운 공공미술의 근본적인 쟁점들을 담고 있다.  

(다음: 동시대 공공미술의 대사건: 세라의 <기울어진 호> 철거 논쟁)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