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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의 ‘장소’의 전복

심현섭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의 ‘장소’의 전복


    1. 들어가며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뉴욕과 파리 등 도시의 건축물을 이용한 예술적 실험을 시도한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 1943-1978)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건축을 해체하는 반건축적 행위를 통하여 삶과 예술의 일치를 추구한 점에서 오늘날 건축가와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마타-클락은 드로잉을 하듯 수직과 수평의 선, 원형으로 건물을 잘라 내·외부 공간을 재구축하는가 하면 건축물을 통째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장소와 건축물의 이동성을 실험하였다. 또한 인간을 소외시킨 채 자본의 논리로 지어지는 기능주의적 건축의 대안으로서 아나키텍처(Anarchitecture) 활동과 예술가들이 함께 먹고 작업하는 식당 ‘Food(푸드)’ 경영, 쓸모없는 땅의 매입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상품 물신화와 유통의 허구성을 고발하고 개인주의를 극복하는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마타-클락의 활동은 예술적으로 모더니즘 이후 새로운 예술을 실험하는 과정이었으며 자본주의의 팽창 가운데 인간의 장소가 극단적 소비와 경쟁사회로 변해가면서 물리적, 정신적으로 황폐화하는 현상에 대한 경고이자 저항이었다. 

마타-클락의 작업의 근저에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정신과 전통, 질서, 권위 등에 도전하는 전위적인 예술정신이 자리한다. 자본주의 비판은 동시대 유럽에서 발생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Internationale situationniste, 이하 I.S.)의 장소, 특히 도시의 일상생활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 무분별한 개발과 이로 인한 인간 소외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유하는 바가 크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는 먼저 I.S.의 기본적인 개념과 사상, I.S.와 마타-클락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후 마타-클락이 동시대 일상공간을 지배한 자본의 메커니즘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배양한 시대적 통념과 상식을 뒤집은 그의 작업과 활동을 예술적, 사회·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전복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전위적 예술정신의 구현은 위의 네 가지 전복이 예술적인 방법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다. 그의 작업에 나타난 전복의 내용들이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세분한 이유는 마타-클락의 작업이 함의하고 있는 자본주의 비판의식과 전위적인 예술정신을 강조함으로써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재고하고 이후 각 전복의 해석을 확장할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2. 마타-클락과 I.S.의 장소

   마타-클락은 어린 시절부터 르 코르뷔제(Le Corbusier)와 함께 일했던 건축가 아버지를 따라 파리를 오갔다. 특히 1963-1964년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당시는 기 드보르(Guy Debord)와 같은 상황주의자들이 계급투쟁을 통한 자본주의 해체와 도시개발과 관련하여 기능주의적 건축을 비판하면서 통합적 도시계획을 주장하던 때다. 이런 배경아래 마타-클락은 상황주의자들의 인간소외, 무분별한 건물의 양산 등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비판정신에 공감하고 이를 자신의 작업개념으로 정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지역은 미국의 유럽 부흥 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 ERP)에 힘입어 전쟁의 폐허를 복구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전력투구하였으며 그 결과 엄청난 호황기를 구가한다. 이런 환경은 새롭게 진화하는 자본주의를 관찰하는 기회였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국민의 식민화를 위해 광고와 같은 새로운 기술적 혁신 수단을 사용하여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재정비하였다. 이 과정에서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프랑스의 관료체제 속에서 개인의 일상생활은 인간다운 삶에서 더욱 멀어졌다.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한 다다이스트들과 초현실주의자들이 주축이었던 I.S.는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와 강력한 관료제에 의해 수동적 객체로 전락한 인간의 소외와 억압에 주목하면서 사회 시스템을 비판했다. I.S.는 이러한 사회 시스템 즉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스펙터클’이라 명명하고 이를 전복하고자 했다. I.S.는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등 전 세대 아방가르드가 자신들의 실천 영역을 예술 영역에 한정짓거나 더 이상 사회·정치적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을 비판하면서 행동의 범위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확대하였다. 이들은 실천의 목표와 방식을 구체화하기 위해 ‘삶’의 보편적 추상성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일상’으로 분절하여 대체하였다. 스펙터클의 소외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스펙터클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장소 또한 소비 자본주의로 물든 일상이어야 했다.

스펙터클을 해체하기 위한 상황주의자들의 전략은 ‘전용(détournement)’, ‘표류(dérive)’, ‘심리지리(psychogéographie)’ 등이었다. I.S.의 전략들은 ‘통합적 도시계획(urbanisme unitaire)’이라는 구체적 실천방안으로 수렴되었다. 상황주의자들은 팽창하는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이야말로 현대의 사회위기와 정치위기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고 보고 기존 체제의 도시계획을 적대시하였다. 이러한 구상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인간, 특히 피지배·무산계급이 소외되고 즐거움을 잃어가는 권태로운 ‘장소’를 살만한 공간으로 회복하려는 I.S.의 비판정신과 전복의 사유는 68혁명은 물론 이후 건축, 미술, 정치 등 사회 각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다양하게 적용되었다. 

마타-클락이 파리에서 돌아와 본격적인 작업을 펼치는 70년대 초반, 그의 작업근거지였던 뉴욕은 상황주의자들이 비판하였던 자본주의의 폐해 즉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인한 인간소외, 기능적 건축의 범람으로 인한 장소의 획일화, 천박성 등이 그 말기 증상을 보이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하였다. 뉴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정부의 주도 아래 체계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경제 도시로 부상하였다. 뉴욕주는 기존의 많은 건물들을 철거하고 도로와 거리를 정비하는 광범위한 도시 재개발에 착수하였다. 뉴욕의 중심부는 버려진 사무실이나 로프트들이 늘어나고 많은 거주 지역들은 빈민촌처럼 황폐해졌다. 맨하탄의 로어 이스트(Lower East) 지역에 속하는 소호(SoHo)는 이와 같은 도시 재개발 과정의 핵심지였다. 철거되지 않은 로프트에는 예술가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싼 임대료를 내고 대거 입주하였는데 마타-클락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런 뉴욕의 현실은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공부하였던 마타-클락으로 하여금 도시와 자본의 관계, 도시개발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했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산업사회가 도시를 성장시키며 주거단지를 생성하지만 이와 같은 주거 단지의 역할이 점차 ‘무저항적이며 고립적인 포로와 같은 소비자’들을 양산한다고 본 것이다. 상황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은 마타-클락은 자신이 처한 도시의 일상 속에서 작업과 활동을 통해 장소의 ‘상황’을 구축하려했고 그 바탕에는 제도와 권력, 자본에 대한 비판정신이 깔려있었다. 이러한 정신은 마타-클락의 작업과 행위에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려는 의지로 침전하고, 이는 건축과 미술을 통합하는 파격적인 실험, 예술의 사회적 기능으로서 체제 비판 등으로 분출하는데 이를 형식상 분류하자면 예술적, 사회·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전복 등이다.

    3. 마타-클락의 작업에 나타난 ‘장소’의 전복 

  1) 예술적 전복

   마타-클락의 작업은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가 쓴 편지내용에 따르면 모더니즘의 기능주의적 태도에는 철저하게 반대했다.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 정신은 수용하지만 필요와 목적만을 앞세워 질서와 통일의 명목으로 획일화를 양산하는 기능주의는 거부했으며, 무엇보다 기능주의와 같은 모더니즘에 내재한 권력체제의 지배방식에 반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마타-클락의 비판적 태도는 반건축적인 파괴, 미술제도에 대한 저항, 건축공간의 고정성과 일상공간에 대한 비판 등으로 나타난다.  

마타-클락의 작업은 1960년대 미니멀리즘 이후 재료선택의 확장, 미술과 조각의 모호해진 경계 등 변화한 미술의 내용을 함의한다. 196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이 점차 ‘건축’과 ‘환경’이라는 물리적 속성으로 확장하고 조각과 건축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건축적인 조각(architectural sculpture)’이라는 새로운 양상이 등장했다. 그러나 마타-클락의 작업은 색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종이에 드로잉 하는 것처럼 건물을 드로잉한 마타-클락의 작업은 첫째, 물리적으로 건물을 파괴한다는 점 둘째, 짓고 세워 건축가의 정신을 구현하는 대신 해체함으로써 정신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반건축적 조각(anti-architectural sculpture)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 나타나는 물질성의 부정은 조각이라는 범주를 넘어선다. <하루의 끝(Day's End)>(1975)이나 <원뿔형으로 가로지르기(Conical Intersect)>(1975) 등에서 보듯이 그는 자르고 구멍 내는 해체의 방법으로 건축물에 개입하였고 이들은 훗날 사라진다. 곧 폐기 처분될 건물을 대상으로 작업한 마타-클락은 처음부터 이러한 사라짐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전인지는 모든 우주가 동일성 안에서 사라진다는 ‘엔트로피(entropy)’ 개념을 공유했던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이 자신의 작업이 사라지는 것을 저지하고 보존하려고 했던 것과 비교할 때 작업에 임하는 태도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이 차이는 마타-클락의 작업을 물질성을 기반으로 하는 조각이라는 범주로 한정할 수 없게 하고 동시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의 수위와 그의 실천적 예술의 면모이다. 그는 사라지는 작업으로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자신의 작업이 상품화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 미술제도에 저항하였다. 이 같은 마타-클락의 태도는 미니멀리즘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진입하면서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더욱 함몰되었던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감안하면 그가 가지고 있었던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진정성을 증명한다.      

한편 마타-클락은 건축을 고정적으로 보는 대신 가변적이고 유동적으로 보았고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집을 통째로 옮겨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강 위에 부유하는 공원 등을 드로잉한 작업들은 마타-클락이 상상한 공간을 보여준다. 마타-클락은 유동적인 공간 개념을 스미슨과 공유했다. 마타-클락이 드로잉한 <허드슨에 있는 섬(Islands on the Hudson)>(1970-1971)과 스미슨이 제작한 <맨해튼 섬 주변을 여행하는 부유하는 섬 습작(Study for Floating Island to Travel Around Manhattan Island)>(1970)을 비교해보면 두 사람 모두 도시 공간의 가변성과 이동성에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마타-클락의 초기 작업에서 이동의 대상이 자연이었다면 후기로 가면서 그 대상이 건축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스미슨 등 대지미술가들의 관심이 일상을 벗어난 자연에 있었던 반면 마타-클락의 시선은 일상공간인 인간 삶의 장소에 맞춰졌다. 그의 자본주의 비판은 일상에서 고립된 자연 보다는 자본의 메커니즘이 극도로 작동하는 도시와 그 안의 건축물에 더 적합한 것이었다. 이는 마타-클락의 작업이 자르기, 구멍 내기 등의 강제적인 방법으로 건축에 개입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마타-클락의 관심은 인간과 고립된 자연보다는 인간 삶에 밀착한 도시의 건축물에 담긴 사회·정치적인 함의에 더 기울었다. <허드슨에 있는 섬> 아래의 노트에 쓰여 있는 “움직이는 장소라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금기처럼 여겨진다.”라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본주의하에 형성된, 주택이 소유하고 독점하는 재산 축적의 도구라는 시대적 통념을 흔드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소유와 독점을 비판했던 상황주의자들의 사상과 ‘엔트로피’ 개념이 영향을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타-클락은 자본주의 체제의 기능적인 건축에 대한 비관과 결국 사라질 물리적인 건축에 대한 허무적인 회의를 바탕으로 장소와 어울리는 건축의 보존 혹은 구축보다는 그의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건축해체를 통한 비판적 담론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마타-클락의 주택 이동이라는 급진적인 작업방법은 주택이 함의하고 있는 가족제도, “계급적 위치, 성실성, 소유욕,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보는 이의 강한 흥미를 유발하는 동시에 주택에 대한 통념과 상식을 전복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2) 사회·정치적 전복

   마타-클락의 사회·정치적 전복은 개인적으로나 ‘아나키텍처(Anarchitecture)’ 그룹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나키텍처’는 ‘anarchy’와 ‘architecture’의 결합어로 무정부 혹은 반정부적인 정치성을 가진 건축을 지향한다. 마타-클락과 아나키텍처 그룹원들은 건축 자체를 자본주의 체제에서 ‘석화한 문화적 실재(hard-shelled cultural reality)’의 상징으로 보았다. 마타-클락이 건물에 가하는 폭력적 행위는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을 상징하는 건축에 대한 비판의 메스였다. 마타-클락은 건물의 파괴를 통해 대 사회적 비판의 발언을 생성하는 이론적 근거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마르크스주의 해석학(Marxist Hermeneutic)’, 즉 일상의 유물론적 변증법에서 찾는다. 그에게 건축은 파괴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건축을 논하는 건설적 비판의 장이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벤야민의 ‘구원의 니힐리즘(The saving nihilism)’과 상통한다. 벤야민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죄 자체를 지향하는 ‘교리 없는 제의적 종교’로서 영구적이고 몰락과 파괴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세속, 특히 자본주의의 몰락에서 메시아니즘을 발견하고 파괴를 넘어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I.S.나 벤야민의 현실비판은 통합적 도시와 구원의 도래라는 신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허무적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마타-클락의 자본주의 비판 역시 절망과 희망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실천방법은 현재의 것을 몰락시킴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전용’이었다. 이는 벤야민이 철거위기에 놓인 파리 도심의 아케이드가 사회진보의 환상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고 본 변증법적 해석과 다르지 않다. 마타-클락은 건물을 통해 물질과 소비, 경쟁 등으로 소외된 인간과 그러한 소외를 양산하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한계를 보고 ‘짓기’보다는 자르고 구멍 내는 반건축적인 해체와 ‘파괴’의 방법을 선택하여 비판하였다. 

이러한 변증법적 ‘전용’의 방법으로 자본주의의 기념비적인 건물을 비판한 대표적인 작업은 <원뿔형으로 가로지르기>이다(사진 1). 마타-클락은 도시 개발의 현장에 있는 두 건물을 선택하여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커다란 원뿔형 구멍을 냈다. 마타-클락이 잘라 낸 구멍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소피 칼(Sophie Calle)이 ‘사악한 이미지들’이라 부르고 프레데릭 제임슨(Fredric Jameson)과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allrd)가 하이(high) 모더니스트들의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를 드러내는 건축물이라고 비판한 퐁피두센터가 보인다. ‘구멍’을 통해 철거와 개발의 장소를 병치함으로써 파괴와 개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공·통시적으로 관통하는 <원뿔형으로 가로지르기>는 역사적으로 개발의 상흔이 있는 장소의 선택, 철거 직전의 침울한 건물과 자본의 막대한 힘을 상징하며 솟아오르는 기념비적 건물의 대비, 그 대비를 확연히 보여주는 구멍의 선연함, 그 구멍을 통해 열리는 생경한 공간 등의 극적 효과와 관객의 감상을 현상학적으로 융해한다. 이로써 <원뿔형 가로지르기>는 자본과 기술의 무의식적인 지배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고도로 계산된 묵시론적 시공을 제시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사진 1. 해리 그뤼아트(Harry Gruyaert), 작업 중인 마타-클락과 허베기미언, 1975. 

마타-클락의 사회·정치적 전복의식은 작업을 수행하는 건물과 장소의 선택에서 나타난다. <원뿔형으로 가로지르기>의 작업 장소는 19세기에 파리 개조사업으로 일컬어지는 오스망(Haussmann) 프로젝트로 수많은 골목을 없애고 큰 길을 중심으로 재편된 곳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토지가 상승, 도심 노동자들의 추방 등은 계급 계층에 따른 도시 공간의 사회적 분화를 심화시킨 바 있다. 마타-클락이 작업한 주택은 당시 재개발 과정에서 기득권의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사회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던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 초 그는 작업의 장소로 사우스 브롱스(South Bronx)의 주택에 주목했다. 마타-클락은 행정 관료들과 개발업자들이 말하는 재개발에 동의하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거주지 박탈 및 지역 커뮤니티의 붕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그에게 빈 공간과 방치된 구조물의 남은 유용성 즉 활용가치는 자본주의하에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문명의 오류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마타-클락은 버려진 구조물을 수리한다거나 하는 기존의 의미의 개선보다는 70년대를 점유했던 기능과 목적 중심의 도시주의(urbanism)와 같은 근본적인 사고방식을 전복하려는 의도로 사우스 브롱스 주택을 선택한다. 

이때 마타-클락은 제도권 밖의 미술이었던 그래피티(graffiti)를 관료들과 개발업자들의 관심 밖에 있던 거주지 및 지역 커뮤니티 문제를 부각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미술권력에 대한 저항과 자본주의 체제 비판을 접목한다. 마타-클락은 사진 위에 자신이 낙서로 덧입힌 <사진조각판(Photoglyph)>(1973)을 워싱턴 스퀘어에서 열리는 그리니치 빌리지 아트페어(Greenwich Villlage Art Fair)에 출품했으나 그래피티를 미술로 인정하지 않는 주최 측의 거절로 무산되었다. 이에 대한 대항으로 그는 소호의 머서 스트리트(Mercer Street)에 ‘워싱턴 스퀘어 아트 페어 대안전시(Alternative to the Washington Square Art Fair)’를 개최하였다. 마타-클락은 <사진조각판>을 전시하면서 그 옆에 트럭을 배치하고 사우스 브롱스 주민들을 동원하여 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낙서로 표현하도록 하였다. <그래피티 트럭(Graffiti Truck)>(1973)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동시대를 지배했던 미술권력과 국가권력, 잘못된 도시주의 등 사회·정치적 체제를 전복하려는 의도의 산물이었다.  

  3) 경제적 전복  

   마타-클락의 경제적 전복은 음식점 경영, 토지에 대한 가치를 무산시키는 부동산 계약과 같은 구체적인 활동을 통해 현실화한다. 1971년 마타-클락은 캐롤린 구든(Caroline Goodden)과 함께 ‘푸드(Food)’(1971-1974)라는 음식점을 개점하였다. 마타-클락은 ‘함께 먹기’에서 ‘함께’를 상실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고립과 소외를 읽어내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1971년 브루클린 다리 아래에서 이루어진 공연에 초대받았을 때, 작업 <잭(Jacks)>을 마치면서 돼지고기를 구워 나눠주기도 하고  1972년, <오픈 하우스(open house)> 혹은 <쓰레기통 끌기>(Dumpster Drag)로 불리는 작업에서도 2층에 바비큐 공간을 마련한다. 그는 함께 먹는 행위를 통해 자본주의의 체제의 도시 내에서 타인과의 친밀함이 줄어드는 개인의 고립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다. 마타-클락은 푸드를 경영하면서 음식제공과 판매과정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예술적 퍼포먼스로 승화한다. 실제로 살아있는 재료를 제공한 <날 것>(Alive)이라는 음식에서는 실제로 심한 소리가 났다. 이외에도 벌목공들(Lumberjacks)’, ‘중고차 스튜(Used Car Stew)’ 등과 같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판매하였다. 이런 식으로 마타-클락은 우리가 먹는 음식의 판매 행위를 전용하여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상품 가치기준의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푸드’는 마타-클락이 자본주의의 결과인 인간의 고립을 극복하고 자본주의 가치를 전복하는 음식점이면서, 자본주의로 인해 팽배해진 개인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공동체적 삶을 실험하는 장이기도 하였다. 마타-클락은 ‘푸드’를 기지로 삼아 자신이 가장 아끼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아나키텍처’ 그룹을 결성한다. 당시 춤, 건축, 음악,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도권 예술을 거부하는 저항아들로 인식된 이 그룹은 1973-1974년에 걸쳐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1974년에 그린가(街)(112 Greene Street)에서 개최한 ‘아나키텍쳐 전시(Anarchitecture Show 1974. 3. 9-20)’를 끝으로 해산한다. 여기에서 마타-클락, 수잔 해리스(Suzanne Harris), 리차드 노나스(Richard Nonas), 지나 하이스테인(Jene Highstein),  티나 지루어드(Tina Girouard) 등 아나키텍처의 핵심 멤버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사진으로 찍어 익명으로 전시한다. 이들 중 일부는 1974년 플래쉬 아트 매거진(Flash Art Magazine)에 의해 출판되는데 아나키텍처가 미술운동으로서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였다. ‘푸드’와 ‘아나키텍처’는 예술가들이 자본주의에 저항함과 동시에 자립적 삶을 실천하고 공유하는 실험적인 예술 공동체로서 그린가(街)를 중심으로 이들이 보여준 3년여의 경제공동체 실험은 오늘날 대안공간을 만들어 제도권으로부터, 특히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창작조건을 구상하는 작가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이다.

마타-클락의 자본주의 전복은 ‘푸드’의 실험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상품에 해당하는 토지의 매매행위에 대하여 조롱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쳤다. 마타-클락은 ‘푸드’를 개점한 이후 <진짜 재산: 가짜 부동산 (Reality Properties: Fake Estates)>(1973)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퀸즈(Queens)와 스테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 있는 자투리 땅 15조각을 경매를 통해 각기 25불에서 75불에 구입한 프로젝트이다. 푸드 음식점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제공하여 자본주의의 매매 가치와 소비행각을 전복했다면 토지 경매 프로젝트에서 마타-클락은 ‘쓸모없는 땅’을 구입하여 사람들의 소유욕을 빌미로 가치를 부풀려 이익을 극대화하는 부동산의 자본 논리와 이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무비판적 태도를 해학적으로 비판한다. 이 프로젝트의 자투리땅들은 ‘접근불가능’하여 설계도면 상으로만 남아있는 유명무실한 공간으로 교환가치만 있을 뿐 경제가치가 없는 가짜 상품, 가짜 부동산이었다. 마타-클락은 ‘가짜 부동산’을 유통하는 퍼포먼스를 통하여 자본주의 시장을 농락하며 희화화한다.  

  4) 환경적 전복 

   마타-클락은 쓰레기를 재활용하면서 자본주의가 양산한 소비주의를 비판하였다. 이브 알랭 부아(Yve-Alain Bois)에 의하면 그의 아나키텍처적 작업은, 건축물은 곧 폐기물이라는 등식의 사유 속에서 이루어졌다. 마타-클락은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지는 건물들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폐기물에 담긴 일상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재활용하는 사유와 실천의 전복을 통해 모더니즘 건축 비판, 무분별한 개발과 과도한 파괴행위, 과소비 등 사회적 의미를 부각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도심을 빠져나가면서 미처 치우지 못한 캔, 유리병, 종이 등 생활 쓰레기들을 작업 소재로 활용하였다. 통조림, 병, 폐지 등과 시멘트를 섞어 철로 된 틀을 이용하여 만든 <쓰레기 벽(Garbage Wall)>(1970)이나 자신이 살던 로프트 지하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던 장소를 주워온 병들로 가득 채운 <겨울정원(Winter Garden)>(1971>, 그리고 <유리 식물: 쓰레기 벽돌들(Glass plant: Garbage Bricks)>(1970-1971), <오픈 하우스(Open House)>(1972) 같은 작업들이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를 재활용한 사례이다. 그의 작업은 자본의 이익을 쫓는 무분별한 개발이 배출하는 수없이 많은 쓰레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TV, 네온사인 등 매체의 광고가 부추기는 사람들의 소비주의를 경고한다. 이러한 과소비는 공기와 수질 오염 등 환경파괴를 가져오는 바 마타-클락은 이에 대응하여 금속으로 된 보호대를 주위에 세운 <장미 덤불(Rose-bush)>(1972) 작업을 통해 환경보호와 복구의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도시 내 공기오염의 심각성을 고발하기 위해 <신선한 공기 운반차(Fresh Air Cart)>(1972)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이 직접 제조한 소형의 운반차 위에 질소 79%, 산소 21%로 된 ‘순수한 공기(pure air)’ 탱크를 싣고 2주에 걸쳐 월 스트리트(Wall Street)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스스로를 “보조 의료 자선사업가(para-medical philanthropist)”라고 소개했다. 마타-클락이 운영한 ‘푸드’에서는 음식물 재활용이 이루어졌다. 그가 <마타 뼈들의 만찬(Matta Bones Dinner)>요리를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동안 보석 세공업자인 히사치카 타카하시(Hisachika Takahashi)는 뼈에 구멍을 뚫어 목걸이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마타-클락은 자본주의 사회의 과소비와 자원낭비를 고발하는 의미에서 음식물 쓰레기인 뼈를 재활용하여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사진 2. 마타-클락, <하루의 끝(Day’s End)>, 1975. 

마타-클락의 재활용의 범위는 일상용품을 벗어나 건물로까지 넓어졌다. <하루의 끝(Day’s End)>(1975)은 뉴욕 허드슨 강(Hudson River) 부두 52에 있는 낡은 창고를 절단한 작업이다(사진 2). 그는 도시 개발 과정에서 철거될 운명에 처한 건물들을 재활용하여 자르기, 구멍 내기 방법으로 사회적 의미 뿐 아니라 미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그는 위험하고 힘든 노동으로 바닥과 천장을 잘라내고 얇은 양철 벽에 고양이 눈이거나 잎 혹은 달로 보이는 형태의 구멍을 냈다.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은 거칠고 폭력적이다. 소리를 제거한 23분 10초의 영상은 긴장된 침묵가운데 여기저기 튀는 산소용접 불꽃, 굵은 줄과 쇠사슬을 끌어올리는 도르래와 견인기, 두꺼운 나무를 잘라내는 전동커터기, 마타-클락의 거친 망치질과 발길질을 기록하여 작업을 향한 마타-클락의 야망이 지배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그러나 마타-클락의 폭력적인 야망은 역설적이게도 시적 서정으로 반전한다. 전기톱으로 절단된 바닥에 비치는 강물은 내·외부 공간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면서 모호한 시공을 형성한다. 서쪽 벽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들어오는 태양 빛은 버려진 창고 안을 마치 성스러운 제단으로 바꾸는 과정인 듯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물에 떨어져 흘러가는 목재는 그가 발언한 인간 문명의 덧없음을 계시한다. 햇빛이 들어찬 흰 벽과 바닥, 검은 물의 흔들거림은 그것이 비록 영상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시적이다. 폐허와 같은 산업건물에 폭력적인 개입으로 완성된 마타-클락의 작업은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장소의 이미지를 탈바꿈한다. 곧 폐기될 건물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기능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마타-클락의 전복적 발상과 전용은 오늘날 공공미술의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특히 재개발의 과정에서 건축물을 우선 제거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마타-클락의 건물 자르기와 구멍 내기 등 반건축적 작업은, 비록 그의 사라지는 건물에 대한 개념에 반하는 면이 있지만, 적은 예산으로 기존 건축물을 활용하여 다양한 도시경관을 창출하고 장소의 역사성을 보존하는 공공미술의 한 방법으로 재고할 가치가 있다.  

    4. 나가며

  오늘날 우리는 수없이 많은 빌딩과 공사 현장을 스치며 산다. ‘또 하나의 같은 장소’로 획일화한 비슷한 건물과 거리들은 과거의 장소가 어떠했는지, 그 기억을 앗아간 지 오래다. 도시의 지도는 자본과 자본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와 환경에 의해 편집되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 주체적 판단 등은 통제력을 상실한 채 소외된다. 이는 도시 즉 삶의 장소에 대한 거주민의 권리가 박탈당했음을 의미한다. 크고 화려해진 총체와 달리 평범한 수입으로는 가족이 거할 집 한 채 구하는 일조차 버거워진 사람들이 거주의 안정성 대신 유목적인 삶을 선택한(그 극단적 형태는 노숙이다) 배경은 자본의 개입인가, 인간의 선택인가. 사람들은 말 그대로 ‘고향’을 잃어버리고 서로를 소외시키고 자신마저 소외된 채 떠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자본주의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인간의 소유욕과 이기심, 소비를 지나치게 자극하여 공동체성을 와해하고 인간의 삶을 메마르게 하는 현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한 건축, 거리, 도시와 농촌 등 획일화한 공간은 망각과 권태의 지루한 일상을 가중하며 시각적 공해를 낳는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지향하듯 황폐화한 장소는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구원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본의 왜곡된 개입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는가. 누가 이러한 인식을 제공해야하는가. 마타-클락은 20세기 자본주의의 용광로라고 할 뉴욕 등 대도시에서 자본과 물질이 주는 환상의 모순과 틈을 발견하고, ‘쌓아올려 짓기’보다는 ‘해체하여 사라지는’ 전복적인 예술 작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시장논리와 개인주의에 저항하며 장소의 회복을 도모했다. 이는 예술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따른 적극적인 실천이었다. 지금, 마타-클락의 작업을 돌아보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삶의 자리인 장소의 획일화와 황폐함에 대응하는 예술가의 정신은 무엇이며 그 실천방안은 어떠해야 하는지 마타-클락은 자본의 메커니즘이 잠식한 동시대 예술, 사회·정치, 경제, 환경에 대한 통념과 상식을 전복함으로써 강렬한 전범을 선보였다. 
(한국예술연구, 2019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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