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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비자발적 기억ㆍ지성ㆍ통일성’을 통해 본 임충섭의 예술세계

심현섭

들뢰즈의 철학에 비춰본 임충섭의 예술세계

질 들뢰즈(Gilles Deleuze)에 의하면 예술의 본질은 물질적인 작품이 정신적인 등가물로 나타나는, 즉 배움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깨닫게 되는 계시의 순간이다. 이는 관람자가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읽어내는 순간으로 작품의 기호들이 어떤 정신적 영향으로 다가가 그 의미가 관람자와 합일한 상태다. 이러한 본질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가나 관람자의 비자발성이 중요하다. 비자발성은 선험적으로 이미 주어진 규정 혹은 인간의 의도를 배제하는 것으로 ‘서로 다른 능력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동일한 능력들의 서로 다른 실행’을 가리킨다. 들뢰즈는 특히 비자발적 기억ㆍ지성ㆍ통일성이라는 세 측면의 서로 다른 실행을 강조한다. 이러한 비자발성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 아니라 우연에 기인하여 나중에 오는(comes after) 특징이 있다. 이미 주어진 규정이나 의도는 새롭게 생성되는 깨달음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여 작가의 상상력을 방해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이러한 의도적 기억이나 선험적 지성으로는 본질에 이르는 예술의 제작이 어려울 뿐 아니라 관람자에게 본질을 제공하기 힘들다. 관람자 또한 그러한 작품에서 본질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렇듯 비자발적인 기억과 지성은 예술작품에 본질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며 잠재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조건이다. 특히 예술작품이 모든 감상의 시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억이 형태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작가의 비자발성은 작품의 본질이 드러날 가능성을 높인다. 따라서 작품 분석에 있어 작가의 기억과 지성의 비자발성 여부를 밝히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자발성의 여부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의 연대기적 통일성, 즉 ‘나중에 오는’ 통일성은 작가의 비자발성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다. 이상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작품/작가로 임충섭을 들 수 있다. 

1941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임충섭은 어릴 적 고향의 경험과 기억을 매개로 자연과 문명의 다리로서 자신의 인식과 사유세계를 형상화하는 시각예술가다. 그는 1973년 고향 진천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한 이래, 문명을 상징하는 뉴욕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을 모티브로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릴 적 고향의 경험과 기억을 매개로 본인만의 사유세계를 형상화하는 임충섭은 1973년 고향 진천을 떠나 뉴욕으로 이주한 이래, 문명을 상징하는 뉴욕에서 고향에 대한 기억을 모티브로 회화, 아상블라주, 설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형태가 펼쳐놓은 이야기는 고향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이자 뉴욕이라는 문명의 상징적 장소에 살면서도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작가의 자화상으로 자신을 자연과 문명을 잇는 존재로 인식한 예술철학의 표현이기도 하다. 임충섭은 자신의 작업을 사물에 잠재해 있는 것을 가시화하고 자신의 마음을 파낸 결과라고 한다. 임충섭에게 예술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 즉 사물에 잠재되어있는 것을 가시화한 결과물이다. 보이지 않은 것은 임충섭의 기억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마음 속 풍경이다. 그는 그것을 파내어 해석(재구성)하고 가시화(형태화)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임충섭의 ‘마음파내기’가 우연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임충섭의 마음속에 거한 고향/자연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킨 것은 고향/자연과 뚜렷이 대비되는 도시/문명과의 우발적 만남이다. 그가 미술에 대한 욕구로 고향 진천에서 서울로 이사하고,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특히 1973년 뉴욕에서 만난 도시/문명은 임충섭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와 고향/자연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마주침의 우연성’이 임충섭에게는 도시/문명과 만남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들뢰즈에 의하면 이러한 마주침은 ‘무정부적’이고 ‘폭력적’일 만큼 강한 충격을 함의하는 우연성이다. 이러한 우연한 마주침에 의한 비자발적 기억은 작가 임충섭으로 하여금 ‘자연과 문명의 사잇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나의 작업 과정은 자연과 문화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을 비춤과 동시에 그 둘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하는 욕망과 연관된다. 나는 도시와 자연적 환경을 오가며 얻은 나의 경험들 사이의 관계를 모색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것과 인위적으로 다루어진 것 사이의 연결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에 흥미를 느낀다. 나의 작업은 이와 같이 하나의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여행하면서 드러나는 공간 을 점유한다. 그 안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이동하며 관찰 하는 나 자신이다.'

임충섭은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자연과 문명을 잇는 사잇존재로 여기면서 어느 한 쪽에 기울어지지 않는 중간자 역할을 자임한다. 많은 자연주의자나 생태주의자들이 문명을 부정하면서 둘 사이의 단절을 통해 발언한다면 임충섭은 자연과 문명 사이의 조화와 공존이라는 다원론적 해법을 선택한다. 이분법적인 단절의 사유와 실천이 한 쪽을 포기하거나 거부하여 사유와 실천의 범위를 한정하는데 비해 다원론적 통합은 양자를 다 수용함으로써 그 범위가 무한하여 혼란과 무질서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감수한다. 이 과정에서 임충섭은 미리 주어진 지성이 아닌 나중에 오는 비자발적 지성을 얻기 위해서 겪는 고통과 같은 ‘외로움과 단절의 느낌’을 겪는다.

'흙으로부터 인간 결속의 단절은 현대화의 본질이다. 그러나 뿌리가 없는 우리의 상황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은 전통의 억압으로부터 고양된 자유를 제공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외로움과 단절의 깊은 느낌을 유발시킨다. 임〔충섭〕은 그의 작업에서 모순과 역설들을 통하여 이러한 모호함을 표현한다. 그는 우리에게 늘 불안정하고 불완전하게 보이는 현실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음을 상기한다.'

이러한 고통은 임충섭의 자기인식이 비자발적인 기억과 선재한 지성이 아닌, 나중에 오는 지성에 의한 정체성 확인이라는 사실을 담보한다. 그가 과학이나 철학이 그렇듯이 선재하는 지성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자기인식에 이르고자 했다면 그에게 이런 의도치 않은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며 고통 또한 그를 피해갔을 것이다. 

    
좌) 임충섭, <무제-단색적 사고>, 1979, 캔버스에 혼합재료, 59×71.5㎝, 신세계미술관 소장
우) 임충섭, <월인천지>, 2012, 혼합재료, 비디오설치,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전시전경 

임충섭의 기억이 자연과 문명의 ‘사잇’존재로 의미화 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긴 시간에 걸쳐 나타나는 통일성이다. 201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임충섭: 달, 그리고 월인천지≫전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대비와 조화의 대서사를 펼쳐 보임으로써 미술계의 관심을 끌었던 임충섭은 2017년 갤러리현대의 ≪단색적 사고≫전에서 뉴욕으로 건너간 1973년부터 2017년까지의 평면회화들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작품들에 나타난 향토색과 변형 캔버스(shaped canvas), 화면에 등장하는 비정형적인 기호들이 최근의 작품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30여년의 시간을 관통하여 나타난 이러한 일관성은 들뢰즈가 말한 ‘다자(多者)들의 통일인 전체성’으로 ‘미리부터 존재하는 통일성과 전체성’이 아닌 나중에 생겨난 ‘비자발적 통일성’을 증명한다.

임충섭 작업에 나타난 형태와 기호들은 의도를 배제한 비자발적 기억과 지성, 긴 시간을 관통하는 연대기적 통일성으로 인하여 관람자에게 형태 너머에 잠재한 비물질적인 본질, 즉 정신적 등가물을 제공한다. 고향상실의 시대에 대한 자각과 문명에 대한 성찰이 그것이다. 임충섭이 작품에 배치한 기억의 사물과 움직임은 고향을 떠나온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에게 고향을 기억하라고 제언하며 상실을 위로한다. 이때 고향은 지정학적인 고향이라기보다 하이데거(M. Heidegger)가 말한바 문명이 인간을 불안과 공허에 빠뜨리기 이전의 ‘본향’이다. 이렇듯 임충섭의 비자발성은 무한한 해석과 의미를 함축하는 정신적 등가물을 낳으며 현대인이 무심히 묻어버리고 사는 상실과 결핍을 깨닫게 한다.

임충섭은 오늘도 뉴욕의 강가와 거리를 산책하며 마주치는 빌딩들, 강물에 떨어지는 빛, 길거리에 버려진 물건들을 보며 고향을 떠올린다. 어릴 적 고향에 대한 향수에 젖어 바라보는 수직의 빌딩에서 임충섭은 문명 속에 거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와 운명에 직면하고 수평적 삶과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모색한다. 그 가운데 임충섭은 마음속 기억을 형태화한다. 그가 만든 기억의 형태들, 예술의 기호들은 자연과 문명의 사잇 존재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인간 사유의 결과물이자 더 깊은 본질로 나아가는 삶의 여정이다. 

(한국예술연구 2021 제34호, 97-118쪽.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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