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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사회참여 미술의 저항성 회복: 민중미술 그 이후

심현섭

사회참여 미술의 저항성 회복: 민중미술 그 이후 
    
미술이 과연 무엇인가. 미술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왜 필요하냐는 물음은 과연 미술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느냐는 미술의 역할에 관한 질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질문에 가장 실제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한 미술은 1970-80년대 일어났던 민중미술이다. 민중미술은 미술이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나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변화의 방향은 사회·정치·경제적으로 평등한 민주 세상이었다.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 미술은 소위 부르주아 미술로서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정권의 독재 상황과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발생한 빈부격차, 주권의 불평등, 반민주화 시대에 충분한 명분을 획득했다. 민중미술은 미술의 존재근거에 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한국미술의 또 다른 내용과 방향을 지시했다. 

민중미술이 주목했던 빈부격차와 반민주적 권력은 정치 상황을 넘어 ‘차별’이라고 하는, 한층 상위의 보편적인 문제로 시대를 초월한 저항 거리였다. 반면, 반민주적 권력은 권력 주체의 변화에 따라 변화의 여지가 있는 가변적인 저항 거리로 동시대성을 띤다. 미술의 저항은 시대를 초월한 문제에 대해 초점이 있어야 한다. 즉 시대에 따라 변하는 권력의 주체와 상관없이 언제나 동시대에 일어나는 ‘차별’이라는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태도가 사회에서 미술이 가져야 하는 역할이다.

‘차별’은 지배자의 편에서 이루어진다. 피지배자가 지배자를 차별하지는 않는다. 구별 짓고 편을 가르는 쪽은 권력을 가진 지배자다. 이런 점에서 차별에 대한 미술의 저항이 어디를 향하여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지배자가 늘 저항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회참여 미술은 어떤 시대든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피지배자,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의 반대편은 언제나 존재하며, 어느 시대이든 불평등은 존재한다. 사회참여 미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그 시대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발견하고 이를 표현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1970-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은 이러한 부분에 진지하게 접근했다. ‘흙손공방’과 ‘민족생활문화연구소’, ‘미술동인 두렁’, ‘임술년, 구만팔천구백구십이에서’, ‘서울미술공동체’,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등이 보여준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은 피지배자의 편에서 이루어진 자랑스러운 한국미술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벗어난 민중미술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일시적인 권력에 밀착함으로써 과거의 민중미술을 왜곡했다. 권력에 밀착한 순간부터 그들이 보인 정치적 편향성, 정권에 대한 무분별한 지지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운데 ‘차별’을 발견하고 저항해야 하는 미술의 고유한 가치를 훼손하였다. 그들의 ‘차별’에서 집권 세력에서 비롯한 차별은 제외되었고 심지어 집권 세력의 ‘차별’에 편승하기까지 하였다.

민중미술의 가치는 권력의 반대편에서 당시 존재했던 ‘차별’을 발견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동시대적 저항정신에 있다. 따라서 민중미술은 동시대의 상황 속에서 존재했던 미술로서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해야 의미가 있으며, 그 시대를 떠난 민중미술은 그 실체가 없으므로 이후 어떤 미술도 민중미술이라는 이름을 소환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소환할 것이 있다면 그 이름이 아니라, 민중미술이 동시대에 보였던 차별과 불평등, 빈부격차, 권력자에게 보였던 치열하고 진지했던 저항정신과 민중에 대한 애틋함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더 심화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차별’과 ‘불평등’은 여전하다. 이러한 때, 피지배자의 편에 서서 그들이 겪는 아픔에 시선을 주고 이를 표현하여 빈부, 권력, 남녀, 인간과 자연, 학벌 등에 존재하는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한 세상을 향한 미술의 역할은 더욱 절실하다. ‘차별’의 항상성, 영구성, 권력 지향성 때문에 시대적 불화를 낳을지라도 미술이 차별에 저항할 때, 그 사회적 존재가치는 빛을 발한다.

어떤 사람은 미술은 미술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소위 ‘미술의 자율성’이다. 그러나 미술의 자율성은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미술의 자율성은 근대 이후 종교로부터 정치, 경제, 예술의 역할이 분화하면서 구체화한 개념이다. 이는 미술의 자율성이 종교라는 권력에서 벗어나 본연의 역할을 찾겠다는 자구책이자, 미술이 다른 권력에 빌붙어 본연의 역할을 잃어버리는 데 대한 자성에서 나온 미술의 역할을 되찾기 위한 나름의 방어책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미술의 자율성은 미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미술을 사회적 역할에서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미술의 자율성을 사회참여 미술에 적용하자면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한 자율성인가’라고 하는 미술과 사회의 관계 문제에 가닿는다.

미술은 처음부터 인간의 삶, 사회와 관계를 맺고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동굴 속 그림은 동시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사냥이 주 대상으로 주술적 목적을 가진 삶의 예술로 공적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동굴은 사람들의 주거공간으로 동굴 속 그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그러나 사회계급이 형성되면서 미술은 삶과 대중을 벗어나 일정한 권력에 종속되었다. 미술은 권력자의 장신구, 거대한 무덤 속, 화려한 성전의 벽, 캔버스 등 사적인 권력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 결과 미술은 권력의 편에 서서 공중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미술의 공공성은 공중과 대립 관계에 놓였다. 20세기 들어 미술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와 거래 대상이 되었다. 이전의 기생적 특권을 잃은 미술은 자본에 종속되어, 미술과 공공성은 일상 공간에서 미묘한 공존 관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미술은 사회의 ‘차별’을 발견하고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사회 속에 존재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미술은 이 본능으로 변화하는 사회와 공존한다.

20세기 초, 뒤샹(Marcel Duchamp)의 레이메이드 이후 미술은 세상 속으로 들어갔거나, 세상의 것을 수용하였다. 이후 미술은 은은한 조명 아래 아우라를 풍기며 대중의 경외를 기다리는 성스러운 것(sacré)에서 다시 삶의 터전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 해프닝, 퍼포먼스, 거리 미술, 공동체미술 등 다양한 형태로 공공장소에서 펼쳐지는 미술은 원래의 그것처럼 미술의 특권을 거부하고 관람의 권리를 분배하고, 인간의 삶에 밀착하여 세속의 ‘차별’을 쟁점화하려는 시도로서 속세의(profane) 미술로 재귀함을 의미한다. 힐데 헤인(Hilde Hein)은 “미술은 미학적인 것을 보존하려는 사적 감성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술은 다시 한 번 거리로 내려와 공공 영역에서 자신의 자리를 일구고 있다”고 하면서 미술의 공공성·사회성의 복원을 알렸다. 

모든 미술은 그 표현 방법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차별’에 대한 관심의 정도에 따라 개념과 형태, 형식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유미주의, 초현실주의나 뉴미디어 아트, 퍼포먼스나 공동체미술 등 모든 미술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참여 미술은 누구를 위한 미술이고, 무엇을 위한 미술이냐는 물음 위에 존재해야 한다. 자기 완결적인 미술로서 미술의 자율성에 매몰되거나, 권력의 편에 속할 때 사회참여 미술의 사회적 가치는 강등한다. 오늘날 한국미술은 ‘탈(脫) 사회적’ 경향에 치우치거나 혹은 지나치게 정파적으로 권력에 밀착하는 극단의 이중성을 보이면서 세속에 존재하는 빈부 차이, 피지배자의 아픔을 발견하는 눈을 상실해가는 것 같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언제나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이 시대의 ‘차별’을 발견하고 이로 인한 ‘불평등’에 저항하는 사회참여 미술의 회복은 오늘날 한국미술 현장의 균형과 삶의 토대의 안정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2022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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