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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12/새 장르 공공미술의 부상

심현섭

공공미술 12/새 장르 공공미술의 부상 

모더니즘의 끝자락에 위치한 <기울어진 호> 사건 이후, 공공미술에서 지역주민과 관객 등 공동체의 참여를 유도하라는 지침은 강화하였다. <기울어진 호>의 철거를 주장했던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지적 또한 미술 작업에서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점이었다. 세라의 작업에 동의하는 공공미술 전문가들조차 이 비판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켈리는 이러한 이유로 <기울어진 호>가 장소 특정적이지 않은 작가 스스로의 만족에 그치는 조각이라고 평가한다.(마이클 켈리, 1996)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기울어진 호>가 제거된 시기쯤에는 공공미술에서 ‘공동체의 참여’를 강화하라는 행정기관의 지침은 더 진지해졌다.(권미원, 2002) 

<기울어진 호> 논쟁이 철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일단락 하는 가운데 1989년 ‘새 장르 공공미술’ 담론이 본격화한다.(Suzanne Lacy, 1991) 레이시는 삶의 현실과 상황을 담은 공공장소에 작품을 전시하려는 세라의 움직임을 진보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기존 미술관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Suzanne Lacy, 1991) 따라서 레이시의 입장(새 장르 공공미술의 입장)에서 <기울어진 호>의 철거는 ‘고급미술’에 대한 ‘대중’의 승리로 이해될 여지가 있었으며, 공공미술에 대한 공동체 지향적 접근방식이 암시적으로나마 유효성을 인정받은 것을 의미했다(권미원, 2002). 이는 <기울어진 호> 철거를 바라보는 새 장르 공공미술의 미묘한 입장을 대변하고, <기울어진 호> 논쟁 가운데 부상한  새 장르 공공미술이 대중(공동체)의 제작권 및 향유권의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제작권에 대한 참여와 협력은 1960년대 이후로 꾸준히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온 일단의 미술가들에게는 이미 확립된 원칙이었다. 이들은 미적 감수성은 다르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유사한 시각을 가지고 동시대 쟁점들인 환경, 인종, 노인, 성차별, 문화적 정체성 등의 문제를 참여, 협력의 방식으로 풀어내고자 미국 전역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레이시는 자국에서 이어져온 이러한 미술을 지금까지 “공공미술(public art)”로 불려온 작업들인 설치와 조각들과, 형태와 의도 양 측면 모두에서 구별하기 위해 “새 장르 공공미술 (new genre public art)”이라 명명한다. 
동시대의 쟁점에 참여함으로써 미술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역사는 미술이 스튜디오를 떠나 삶과 사회 속으로 뛰어든 1950년대 말로부터 시작한다. 앨런 캐프로(Allan Kaprow, 1927~ )가 전하는 당시 상황은 이렇다.

      “스튜디오가 아니라 진짜 환경을, 좋은 물감이나 대리석이 아니라 쓰레기를 활용했다. 그들은 이전에 사용된 적 없는 과학기술들을 미술에 포함시켰다. 행위, 날씨, 생태, 그리고 정치적인 이슈도 다뤘다. 요약하자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더 알아가는 것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Suzanne Lacy, 1995) 

레이시는 이와 같은 80년대 이전까지의 참여미술을 ‘행동주의 미술’로 규정하고, 거기에서 통용된 관객, 관계, 소통, 정치적 의도 같은 개념들이 오늘날 ‘새 장르 공공미술 역사를 구축했다고 본다(Suzanne Lacy, 1995). 

공공미술이 정치·사회적 쟁점들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 계기는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 반대 투쟁 시기 동안에 정치적 행동주의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미술가들에 의해서 마련되었다. 이들은 “국가가 더 이상 민중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 시대에, 공동체에서 일하는 미술가들은 의식적으로 그들이 함께 일하는 민중들과 더불어 조직하고 비평하는 기술들을 개발할 필요”를 느끼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Suzanne Lacy, 1995). 캐프로, 주디스 바카(Judith Baca, 1946- ) 등 당시 행동주의 미술가들은 사회정치적으로 소외된 민중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려했다. 
미술과 삶의 밀착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급진전한다. 다원주의는 모더니즘 시대의 보편적 미는 지배 권력이 생산한 신화에 불과하다는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특히 그동안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여성, 소수인종, 동성애자 등을 중심으로 저마다의 입장에서 미를 추구하는 현상을 낳았다. 미적 감상이란 것이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무관할 수 없기에 미술에 대한 관점 또한 여러 갈래로 분산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미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도전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처음부터 삶과 밀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공공미술의 역할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 오늘날 공공미술은 사회적 억압, 성차별, 정치경제적 불평등, 문화적 소회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장”하고 “지원”하며 “참여”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행동주의 미술로 전개해왔다. 이와 같은 메리 제인 제이콥(Mary Jane Jacob, 1952- )의 표장, 지원, 참여의 행동주의 미술은 시대 흐름, 즉 민주화와 다원화의 역사적 흐름에 맞물린 공공미술의 변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까지 미국 전역에 걸쳐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그다지 ‘조직적’이지 않았던  행동주의 미술은 1980년대 보수적 반동의 일부로 인종차별과 폭력의 증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의 낙태권 등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재조정 시도, 보수적 근본주의자들과 결탁한 정치가들의 행동주의 미술가들에 대한 검열시도, 심각해진 보건 문제와 생태학적 위기 등을 계기로 서로 연계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고 레이시가 명명한 ‘새 장르 공공미술’의 역사적 토대로서 새롭게 인식되며 동일 범주에 속하게 된다. 레이시는 ‘새 장르 공공미술’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지금까지 공공미술이라고 불렸던 것들과 달리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이슈들에 관해 폭 넓고 다양한 공중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기 위해 전통적이거나 비전통적인 재료를 모두 사용하는 참여에 기반을 둔 시각예술이다.”(Suzanne Lacy, 1995) 

이에 따라 공공미술은 모더니즘적 작가의 주체성, 자율성 등 예술적 관습을 벗어나 작가보다는 관객과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오브제로서 작품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공미술은 미술 생산과 재생산의 전통적인 제도 공간들인 스튜디오, 미술관, 갤러리를 벗어나 공중의 삶과 쟁점에 집중한다. 
 
‘공공장소의 미술’에서 ‘새 장르 공공미술’로 전개해온  공공미술은 공공장소에서 물질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에서 장소를 정치·사회·문화적 참여와 협업, 소통의 공간으로 보고 비물질적인 상호 협력, 조율 등 제작 과정까지를 아우르고 문제시하는 미술로 이어졌다. 공공미술은 또한 제작의 절차와 과정에 미술전문가가 아닌 집단이 참여하고, 미술가와 관객의 교류가 심화되면서 작품 제작에 지역공동체와 관객이 개입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이러한 흐름은 시간에 따라 단계별로 진전해왔다기보다는 동시대에 서로 중첩하고 교차하며 공공미술의 다양성을 견지해왔다. 이러한 공공미술의 역사는 장소, 공동체, 소통이라는 공공미술의 핵심적인 쟁점들을 드러냈다. 이러한 과정에는 ‘공공’의 의미변화에 따른 미술의 민주화, 즉 미술이 공중을 위한 미술로 진화하는 커다란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다음: 공공미술 13/‘공공’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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