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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21/ 동시대 미술의 쟁점(장소 2): 장소의 비-물질화가 낳은 작가의 상품화

심현섭

공공미술 21/ 동시대 미술의 쟁점(장소 2): 장소의 비-물질화가 낳은 작가의 상품화 

60년대 이후 미니멀리즘은 이전의 모더니즘의 관념적 공간을 물질적 공간과 일상적 공간으로 대체하였다. 미니멀리즘의 ‘맥락적 사유방식’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제도비판 미술과 개념미술은 장소를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견지에서뿐 아니라 미술제도에 의해 규정되는 문화적 틀로서 다양하게 상정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미술에서 실제적인 장소의 중요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미니멀리즘이 미술 오브제의 의미를 오브제 자체로부터 그것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향하게 하면서 자율적인 미술 오브제라는 관념적 신비주의에 도전했다면, 제도비판은 전시 공간 자체가 지닌 관념적 신비주의, 즉 제도적 위장,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복무하는 규범적인 전시 관습 등을 부각시킴으로써 미술과 그 제도가 사회경제적, 정치적 과정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을 폭로했다.”(권미원, 2002) 

이렇게 미술의 장소는 미술이 놓이는 공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제도비판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담론으로 조금씩 이동해갔다. 특정한 입지를 지닌 물리적 조건으로서 장소가 미술의 중심적 요소에서 부수적 요소로 여겨지면서 장소의 실질적인 정의가 물리적 근거가 있는 고정적이고 실제적인 입지로부터 유동적인 가상의 담론적 벡터로 전환하였다. 미술의 장소가 담론 중심으로 변한 상황은 장소 특정적 미술의 진정성과 같은 전통적인 미학적 가치, 저자의 역할, 비물질과 반상품의 위상, 유목주의의 시장자본화 등과 같은 쟁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담론 중심의 미술은 모더니즘 미술 시대의 작가의 주관성을 소환하는 역설을 낳았다. 장소가 물리적 장소에서 담론적 벡터로서 비물질화하고 추상화하면서, 담론을 생성하는 작가는 장소 자체를 생산하는 주체가 되었다. 장소는 더 이상 고정적인 특정한 입지로서보다는 작가가 이슈를 발견하고 담론화하는 곳이 곧 장소가 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1960년대 후반,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오브제성보다 그것이 놓이는 공간 사이의 관계성이 중요하게 된 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서 작품의 이동과 작가의 이동을 분리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 작품이 여러 장소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장소의 공중에게 새로운 감각과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공공미술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의 유목주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유목주의는 작가로 하여금 굳이 하나의 장소를 고집하지 않게 하며, 나아가 해당 장소의 역사와 현실 보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먼저 작동하는 ‘관찰자적 태도’를 취하게 하는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장소라는 기표 대신 작가의 의도인 기의가 중심이 되는 이러한 미술에서 작가의 신화적 주체성은 소환된다. 이는 미술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과 같이 미술자본과 유통을 장악한 큐레이터의 위치와 역할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작가의 주체성은 큐레이터의 주체성에 함몰하기도 한다. 2017년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do it>은 단적인 예다. 세계적인 스타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1993년 파리에서 시작한 전시의 서울판인 이 전시에서 작가와 작품은 큐레이터의 기획의도에 철저히 종속된다. 이는 장소의 비-물질화가 낳은 또 하나의 현상으로 작가의 상품화라고 할 수 있다. 큐레이터의 영웅적 주체성에 함몰된 가운데 이루어지는 작가의 상품화는 장소를 ‘상품화’하고 시리즈화하면서 장소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고유의 장소성은 사라지고 장소 특정적 미술이라는 허명아래 장소는 지배문화(큐레이터의 영웅적 주체에 의한)와 자본주의(큐레이터의 영웅적 주체의 근본적인 배경으로서)에 포섭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장소가 차별과 개성이 없는 무장소로 전락한데는 장소의 비-물질화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공공미술 22/ 동시대 미술의 쟁점(장소 3): 장소해제를 넘어 장소지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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