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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23/상호소통과 공동체적 협의체

심현섭

공공미술 23/상호소통과 공동체적 협의체

1. 공공미술과 상호소통의 중요성

미술이 공적 장소와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등 미술관 밖 공공의 영역에 노출하는 공공미술로 전개하면서 상호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공공미술에서 상호소통은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전문가집단, 전문가와 지역주민, 관객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미술의 상호소통의 필요성은 기본적으로 수용자 집단인 관객, 지역민 등 비전문가집단에 의해 제기되었다. 사실 공적 장소와 공적 자금이 들어가지 않는 사적 장소인 전시관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자본의 손길을 기다리는 미술에 일반 공중은 별다른 소통을 요구하지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이런 쪽에서 나오는 소통은 대부분 관객 유입을 위한 미술관이나 갤러리 측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대중에게 열린 공공미술의 경우 대중은 미술이 나의 공간, 나의 재산을 점유하고 나의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기 때문에 소통을 요구하면서 수행과정에 개입한다. 

일반 공중을 소통의 대상으로 하는 공공미술로는 ‘공공장소의 미술’, ‘공공공간의 미술’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물질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가가 요구하지 않는 이상, 작품 제작 과정에 개입하는 일은 드물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상호소통은 작품을 제작하기 전 기획의도와 구상 단계에서 특히 장소와 조화로운 작품을 위한 협의다. 수잔 레이시가 명명한 ‘새 장르 공공미술’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기반 미술’은 쟁점을 매개로 이루어진 공동체, 즉 특정 공중을 대상으로 한 공공미술이라 할 수 있다. ‘새 장르 공공미술’은 “초점을 미술가에서 관객으로, 오브제에서 과정으로, 생산에서 수용으로 이행시킴으로써 특수한 관객 집단의 직접적인 참여”를 중요시한다. 예컨대 마을과 같은 거주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미술운동인 ‘마을 만들기’와 같이 ‘특정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미술은 프로그램 수행은 물론 그 전후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소통을 요구한다. 

이렇게 장소특정적인 공공미술에서 쟁점 특정적(issue specific) 공공미술로 전환한 ‘새 장르 공공미술'은 지역의 관심사인 여성, 이민자, 소수인종, 빈곤층 문제 등에 참여하여 사회 변화를 시도한다. 이때 ‘참여’는 불평등의 대상자들, 소외된 집단 등과 작업 제작과 관련한 전문가들이 공동체의 이슈를 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즉 작업 수행 과정을 함께함을 뜻한다. 이와 같은 작업에서는 전문가집단, 주민집단, 행정집단, 관객집단 등 각 사업 주체의 참여와 이들 사이의 소통 문제는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공동체적 협의체'는 이러한 소통을 실천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2. 공공미술과 ‘공동체적 협의체’

주디스 바카는 “종족적으로나 계급적으로 분열된 우리의 도시들의 미래와 관련하여 좀 더 깊고 희망적인 것을 대표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공동 작업을” 제안한다. 이와 같이 공공미술의 가능성은 공동으로 작업하는 가운데 발생한다. 레이시는 여성 폭력을 다루기 위해 작가들과 사회운동가들, 방송 리포터들 그리고 정치가들과 연대를 구축하였다. <아리아드네>(1978) 이후 예술과 미디어계의 여성들, 그리고 여성문제를 다루는 정부와 함께 결성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그 예다.(Whitney Chadwick) 레이시는 공동 작업을 자신의 작품 제작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로 여겼고, 이 점이 공공미술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요한 원인이다. 권미원은 레이시가 공공미술 <풀 서클 Full Circle>을 위해 구성한 지역주민 위원회가 미술가(레이시)의 아이디어를 확인하는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하면서 레이시의 작업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위원회 자체의 구성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통합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이때의 통합은 차이를 무시하는 완전한 합의나 통일을 의미하기보다는 서로의 공존을 확인하는 협의과정과 기대치를 상징하는 용어다. 통합과정 중에 일어나는 소통의 목적 또한 각 주체의 완전한 합의에 있는 것은 아니라,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토의와 논쟁, 그 자체에 있다. 협의체에서 일어나는 토의와 논쟁의 과정은 상호이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써 배려와 양보를 통한 차선의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배려와 양보가 공공미술의 진행을 원활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지식의 발전이 ‘사냥’, ‘습격’, ‘전략’, ‘전투’, ‘정복’같은 군사용어들로 진술된다는 사실은 주목될 만하다. 그런데 지식은 소통과정에서 소통을 위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던가? 방패와 무기를 겸비한 개인들이 서로 대결하다가 소통하기 위한 행동-맨손을 내밀어 악수하기와 말하기-을 시작할 때 그들의 폭력은 중단된다. 의견교환용 담론은 폭력을 저지하고 말(言)은 무장충돌을 잠재운다. 소통은 모든 투쟁의 저변에 공존하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공인하는 과정이다.' (알폰소 링기스)

협의체에서 각자의 선입견과 편견을 줄여나가는 과정을 거쳐 결정한 차선의 선택은 개인의 주관적 의견들을 조율한 상호주관성, 즉 간주관성(間主觀性 intersubjectivity)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참여자와 예술가 모두가 변화하는 토론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귀 기울이기”는 상호호혜적인 공감의 방식을 확장한다.(수지 개블릭) 개블릭은 이를 시각 지향적 미술에서 청각 중심적 미술로 변화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청각 중심적 미술에서는 자기표현의 양식만으로는 미술을 완성할 수 없으므로 배려와 연민을 기초로 한 상호접속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접속의 미학”은 개인을 치유하고 세계를 치유하는 모태다. 접속은 타자에 대한 갈망으로 서로 ‘결합’하려는 욕망이다. 이러한 미술의 “영적(spiritual) 전통”(수잔 레이시)은 협의체/공동체 안에서 오직 열린 상호대화만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해당 장소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는 작업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작업하는 공동체에서 사람들과 어마어마한 양의 대화를 한다. (…) 그리고 그것은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이다. 그것은 작업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변화시킨다.' (휴스턴 콘월)

대화로 가능한 타자에 대한 갈망의 채움, 상호이해와 인간적 접속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가 바로 협의체다. 그러면 공동으로 모인 개별자들의 차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각 사람, 각 단위의 이해 차이를 조율하는 마당을 이름 짓자면 ‘공동체적 협의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공동체와 협의체는 서로 보완하는 개념으로, 비교하자면 공동체는 이상적, 협의체는 현실적이다. 공동체라는 이상적 가치는 협의체라는 현실적 도구로 손에 잡힌다. 억압과 차이가 없고 식민화하지 않은 ‘진정한 공동체’는 ‘협의체’라고 하는 구체적인 시스템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정한 공동체의 동기가 시민들의 공유속성(commonality)으로, 이 공유속성이 개인들을 연대하게 할 뿐 아니라 동시에 힘 있고, 추진력 있고, 협력적인 집단성을 고무하기도 한다고 보는 알렌 레이븐(Arlene Raven)의 말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인간의 공유속성이 공동체의 지향의 계기는 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의 연대를 유인하는 동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연대는 활발한 토의를 통한 상호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의해 지속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적 협의체’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상호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구조이며 협업을 위한 협의구조체로서, 상호연대를 지속하기 위한 상호이익을 보장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적 협의체의 유기적 관계망


합리적 시스템의 작동을 전제한다면 집단의 판단과 집행은 개인에 비해 더 신뢰할 만하다. 여기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은 무엇보다 ‘상호이익의 공정한 분배’를 의미한다. 이익은 ‘경제적 이익’과 배려와 양보의 고취와 같은 ‘감성적 이익’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경제적 동물(Homo economicus)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합리성은 ‘경제적 이익’의 정당한 분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동체와 공동체성의 현실적인 구현 및 발현은 감성적 이익과 함께 이익의 공정한 나눔이 공동체 협의체를 통해 골고루 나누어질 때 가능하다. 인간은 현실적인 이익을 기대할 때 더욱 연대감을 발휘하고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특히 공공미술의 공동체는 이론적 토대와 함께 현실적으로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경제적 이익 창출과 공정한 배분, 사업수행 과정에서 맡는 역할의 합리적 분배 등이 이루어지는 시스템 구축에 힘써야 한다. 

다음: 공공미술 24/ 공동체적 방법론: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의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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