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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또 한 번의 도전

심현섭

: 왜 가업으로 이어야 하고, 그 후계자는 당신인가?

: 부족하지만 나는 회사의 목표와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회사가 운영되었고 유지되었는지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회사의 목표와 목적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무엇보다도 나는 회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또 김달진의 자녀로서 정통성이 있다고 여긴다.

 

: 정통성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가?

: 나는 어려서부터 이경성관장님과 김달진 관장의 관계를 지켜봤다. 관장님은 이경성 관장님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경성 관장님 또한 김달진 관장님을 자식처럼 여기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김관장님이 어떻게 이경성 관장님을 모셨는지, 그들의 관계가 인간적인 관계를 넘어서 어떻게 박물관의 역사를 잇는 역사적 관계로 맺어졌는지를 나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그 정통성과 역사 흐름에 내가 있다고 여긴다.


: 일에 대한 사명의식이 있다는 말인가?

: 나는 사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타인의 본이 되는 사람이 목표이다. 할 수 있는 데까지 가다가, 영 회사가 어려워지면 억지로 매달리지는 않겠다. 가족과 먹고 사는 문제가 내게는 더 중요하다. 누나는 관장님이 부재한 박물관을 상상하지 않는다. 관장님의 인맥, 경험 없이 어떻게 박물관이 유지되겠냐는 것이다. 우려할 상황이지만, 나는 할 때까지 해본다는 입장이다.

 

; 어릴 적 가난하게 살았는가?

: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힘든 것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 속에서 아카이빙은 종교적 관심에 따라, 권력자의 욕망에 따라, 학문연구를 위한 수단 또는 지적 충동의 평등을 추구하는 정치적 열망, 또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서 그 필요를 반복하며 확대되어 왔다. 김달진의 수집도 욕망의 구현이라는 본능과 이후 경제활동과 같은 사회적 필요가 결합된 기록의 역사였는지 모른다. 김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지금 또 한 번, 역사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에 어떻게 응전하여 훗날 어떤 식으로 기록될 것인지는 이제 그와 가족의 의지와 결단에 달려있는 듯하다. 험한 역경을 딛고 온 지금, 아직 김달진의 휴머니즘 아카이브 인생은 완성되지 않은 것인가.

 

김달진은 무던하면서도 답답한 사람이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그냥 끌어 모으고 정리하고 또 더 좋은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그 많은 걸 이고지고 이사 다니고, 또 일부는 고향집 창고에 팽개쳐 두고 그런 와중에도 또 뭔가를 가져나르고귀소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꿀벌과 개미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박물관장이 되었다. 우선, 선배관장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축하하며 환영하는 바이다.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측면에서 보면 그가 수집하고 연구·관리한 소장자료는 차치하더라도 그 사람의 지금까지의 모습에서 그 과정과 미래가 무엇보다도 밝게 예견되어 기대와 더불어 기쁘기 그지없다.


뿐만 아니라 이미 김달진은 우리나라 박물관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사학자겸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인 이경성 선생을 지극히 모실 줄 아는 경로사랑의 실천가였다. 이경성 선생이 우리나라 박물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김달진에게 전달되었을 많은 잠재적 유전인자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미래를 밝게 예견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김달진 그의 철학과 행위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박물관의 DNA가 내포되어 있었으며 그 가시적 실천이 다름 아닌 이번에 설립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인 것이다. 13)


13) 김종규, 아름다운 시작-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달진! 그 무던한 사람이 만들어낸 박물관이기에, p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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