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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26/ 공동체적 방법론: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의 실제(3)

심현섭

공공미술 26/ 공동체적 방법론: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의 실제(3)

3. 지역주민의 참여강화 

협의체에서 미술인들은 주민과의 관계에서 예술의 절대화, 문화제일주의의 폐쇄적 실천으로 나아갈 가능성과 함께 무엇보다 관광주의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포스터가 경고한 “민족지학적 관찰자”의 태도는 미술전문가의 입장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다. 포스터에 의하면 “예술가는 자신을 재현하는 생산물에 지역을 개입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허가를 받은 권위 있는 전형적인 외부자”다. 

장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외부자의 유목은 여행자의 유람에 그칠 수 있다.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1963-2019)는 이러한 접근의 예로 <지구의 마술사>(1989)전을 든다. “장 위베르 마르탱은 오만하게도 다른 지역의 아카데미즘적 예술 작업을 아주 형편없는 모방이라 해석했기에 다른 지역의 아카데미즘을 부끄럽게 여겼다. 원시와 현대 간의 대비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극단적인 타자성을 가치화하는 과정에서 민족지학적 권위가 발생한 것이 지구의 마술사전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미술가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족지학적 관찰자로서 권위를 가지고 지역문제에 개입했을 때의 폐해, 즉 장소에 대한 왜곡과 과장, 과도한 투자의 후유증 등은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작가나 기획자가 아닌, 지역에 남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특히 장소를 기반으로 한 공공미술에서 해당 장소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배려가 선행하지 않으면 미술전문가는 민족지학적 관찰자의 오류, 즉 섣불리 잃어버린 역사를 밝히려 하거나 지역 거주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드러내려는 타자화의 욕망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장소에 거주하며 다양하고 구체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며, 그 장소와 연결되어 작동하는 거주자의 심리적 구조를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크다.(김영옥, 2010)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지역주민의 참여를 확대하고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마이클 켈리의 주장대로 미술이 공공적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예술가의 일부로 인식하면서 만들어져야 한다. 

공공미술의 한 주체인 지역공동체는 처음부터 장소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사업 수행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는 함께 참여하여 제작하는 과정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 기억을 장소에 투사한다.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기억이 뿌리내린 장소를 중요시하는 태도를 가진다. 지역거주자들은 자신들의 장소에 관한 한 ‘전문가’이고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도시의 구성 요소들을 능수능란하게 판단하며 지역적 분위기에 일체감을 느낀다.(맬컴 마일스) 이와 같이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할 수 있는 협의체의 존재는 공공미술의 성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4. 사업의 지속성을 위한 장기계획 수립

공공미술의 성공은 지속적인 수행에서 얻어진다. 공공미술에서 대부분의 경우 시간의 양과 결과의 만족도는 비례한다. 레이시 또한 프로젝트의 지속성이 공공미술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한다. 

“지속성이라는 쟁점 그리고 일반적으로 시간문제는, 제어 가능한 공간에서의 시간적으로 한정된 설치와 전시 주위로 형성된 재원과 지원 시스템의 자원을 얻어내야 하는 부담을 지우는 가운데, 새로운 공공미술을 위해서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다.”(수잔 레이시)

프로젝트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 수립이 필수적이다. 공공미술은 공중을 상대로 한 미술로써 상호간 의견을 교환하고 공감을 형성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레이시의 <크리스탈 퀼트 The Crystal Quilt>(1987)는 커뮤니티 조성, 예술 프로젝트, 여성 지도력 세미나 구성 등 3년의 과정을 퍼포먼스로 마무리한 프로젝트다. 애니스 자코비(Annice Jacoby)와 사진작가 크리스 존슨(Chris Jonson)과 공동 작업으로 이뤄진 <타오르는 지붕 The Roof Is On Fire>(1994)에서 레이시는 청소년들이 건전한 자아상을 확립하도록 5년여 동안 오클랜드 공립학교와 경찰청, 그리고 시청 관계자들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러한 장기적인 계획은 대중의 의식 수준을 높이고 전문가와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프로젝트가 일시적인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게 하는 밑거름이다. 이 같은 긴 안목의 계획은 특히 문화도시나 생태도시와 융합하는 추세에 있는 오늘날의 공공미술에서 필수적이다. 도시재생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도시공간의 창출이라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공공미술을 계획할 때 차별화한 도시공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사후 평가제도 도입  

작가 등 전문가, 행정, 대중 관객 등 다양한 주체들의 요구, 그것도 시간을 초월한 모두의 요구를 반영되는 이상적인 공공미술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소 배경이 변하고 사람들의 요구와 시대적 필요가 수시로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한 장소에 속한 공공미술의 영속성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는  앞서 던진 바 있다. 공공미술을 설치하기 전 협의체는 이러한 질문 가운데,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나마 그 이상을 조금이라도 반영하려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협의체의 결정은 사후 평가제도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공미술이 한정된 공적, 사적 재원을 가지고 운영된다는 점, 그 관람의 대상이 특정 관람객이 아닌 일반 대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효율적인 재원 분배를 위해서, 또 대중의 반응을 점검하기 위해서 사후 평가는 당연히 요구된다. 사후 평가는 제작과 평가(관람)를 분리한다는 원칙 아래 사전 협의체 구성원과는 별도의 협의체에 의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사후 평가 제도는 1) 민주적 절차를 수행하기 위한 공공작품 평가 위원회를 구성한다. 이는 설치를 위한 위원회(설치 전 협의체)와 별도의 조직으로 ‘공동체적 협의체’ 구성 원리에 따라 전문가(미술, 조경, 건축 등), 관료,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한다. 2) 위원회에서 철거, 재배치, 존속 등으로 작품을 분류한다. 3) 대안을 만들어 전문가, 지역주민 집단에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설문조사는 지역주민과 일시적 방문자 등 대중이 골고루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질문은 작품에 대한 감상의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그 외 작품의 배경과 같은 질문은 이미 사전 협의체를 통해 걸러진 상황이므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또 다른 객관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4)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시행한다. 

이 제도를 실시함에 있어 처음 작품을 설치하는 시점에서 작가에게 향후 평가에 의해 철거될 수 있다는 점을 계약에 첨부하여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후 평가 제도는 형태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장소와 그에 속한 주민들과 맞지 않은 공공미술의 무분별한 확산을 방지할 수 있으며, 설치 전 협의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작품의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갈등을 대중의 감각과 취향이라는 집단(공통) 감각에 의해 최종 수렴하는 효과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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