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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과 관객 객체의 과잉 문제

심현섭

<프롤로그> 나는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주·객체 논의의 비현실성에 회의가 들었다.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이어져온 인간의 주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 사상이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 속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에 반동하여, 저 반대편으로 뛰쳐나가더니 드브레가 스치듯 말한(그러나 간단한 내용이 아니다), 동물이 마치 사람과 같이 취급받는 시대를 뒷받침하기에 이르렀다고 여겨지던 때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주체 해체론은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춰야하지 않을까. 적어도 인간이 자연과 동물, 무엇보다 인간 사이에서 가져야할 책임감을 상실하거나,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기 전에. 한동안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을 접하였다. 그는 말한다. 객체는 동등하게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이 일방적일 수 있다는 점을 전제하는 가운데 동등하다고. 내가 없어진다 해도 태양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와 태양은 객체로서 평등하다. 인간과 자연, 동물, 인간 사이의 평등은 나와 태양과 같은 관계와 같지 않을까. 태양과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 일방적일 수 있는 상호작용, 거기에서 일어나는 타자에 대한 책임감을 부정하는 일은 오염된 인간 중심적 오만이 담긴 욕조의 물을 버리려다 인간과 인간이 가져야 할 책임감까지 버리는 오류다. 하먼은 자신의 사유를 뒷받침하기 위해 프리드의 연극성을 인용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연극성 논의를 읽으면서 미술의 자율성 혹은 주체성을 견지하고자 했던 프리드의 심정이 궁금했다. 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연극성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담론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이는 어쩌면 주체의 책임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과 관객 객체의 과잉 문제 


목차

I. 서론 
II. 객체지향존재론의 객체 
  1. 평평한 객체 
  2. 공생하는 객체
  3. 쿼드러플 오브젝트
III, 연극성과 관객 객체 
  1. 작품의 심층과 관객 객체
  2. 은유와 연극성
  3. 하먼과 프리드의 연극성
  4. 관객 객체의 과잉 
IV. 결론  

I. 서론 

그레이먼 하먼(Graham Harman)의 객체지향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은 인간 주체를 포함한 주체/객체의 위계를 해체하는 가운데, 말 그대로 객체를 지향하는 존재론이다. 하먼은 자신의 객체지향존재론을 미술에 적용하면서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의 연극성을 중요한 논거로 제시한다.  
하먼의 객체지향예술론에서 예술작품은 작품과 관객의 혼성물이며,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은 동등하게 객체로 존재한다. 따라서 연구자는 작품을 작품 객체, 관객을 관객 객체로 부르며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예술의 역사에서 작품 객체는 작가 객체와 결과적으로 중첩하였고 따라서 두 객체의 구분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하먼은 오랫동안 주체의 위치에 있었던 작품/작가 객체의 주권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온 모더니즘 이후, 특히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자의 죽음’이나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의 ‘열린 예술’ 개념이 이끌어온 사조에 따라 의도적으로 관객 객체를 지향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적으로 작품 객체가 약화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객체지향존재론이 추구하는 공생이 어려움에 처하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 부분, 즉 하먼이 관객 객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가운데 작품 객체를 소외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핵심 논리인 객체끼리의 평평한 공생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원인을 탐구한다.  
연구자는 이러한 역설이 프리드의 ‘연극성’에 대한 하먼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하먼이 객체지향존재론을 예술에 적용하는 가운데 인용한 프리드의 연극성에 대한 오해, 즉 둘 사이에 드러나는 연극성이라는 용어의 이해 차이를 살펴보고, 특히 하먼의 연극성이 지나치게 관객 객체를 강조한 결과, 작품 객체를 소외시키는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II장에서는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에서 미술의 객체와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라고 여겨지는 평평한 객체론과 공생 개념을 살펴본다. III장에서는 객체지향존재론을 기반으로 한 예술의 객체 문제를 관객 객체와 연극성을 중심으로 다룬다. IV장에서는 프리드의 연극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온 하먼과 프리드 사이의 연극성 차이를 살펴보고, 하먼의 연극성에 내재한 관객 객체의 강조가 상대적으로 작품 객체를 소외시킬 가능성을 지적한다. 결론으로 관객 객체의 영향력이 팽배한 오늘날, 프리드가 제기한 연극성 문제가 작품 객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함으로써 양자의 공생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중략)

IV. 결론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은 미술의 존재론적·미학적 담론을 풍성하게 하는 철학임에 분명하다. 그가 강조한 관객 객체와 작품 객체가 혼합하는 혼성 객체의 생성은 확실히 미술 제작과 감상의 핵심 조건이다. 그러나 연극성을 비예술의 조건으로 본 프리드와 다르게, 관객 객체의 개입을 유도하는 연극성을 예술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본 하먼의 객체지향예술은 결과적으로 관객 객체의 과잉을 낳는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 속에서 전개해온 작가를 포함한 인간 주체 의식의 편향성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 객체 사이의 계층을 인간이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객체 사이에는 더 강한 주체성과 그보다 약한 주체성이 존재한다. 문제는 강한 주체성을 가진 객체(주체라고 불리는)가 얼마나 다른 객체 사이의 균형(주체 사이의 균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을 모색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방법은 시대에 따라 강화한 객체를 약화하고, 약화한 객체를 강화함으로써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처럼 객체와 객체 사이에 형성되는 주체적 힘의 인장과 압축은 고정된 현상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벡터다. 주·객은 언제나 변한다. 
예술에서 관객 객체의 강화는 바르트와 에코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먼 역시 자신의 객체지향존재론을 기반으로 한 예술작품론에서 작품에 내재한 은유를 풀어내는 해석자로서 관객 객체를 강조한다. 그러나 주체 혹은 어느 한 객체의 지나친 강화는, 그 역과 마찬가지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가 우려한 주체의 이동일 뿐이며. 하먼이 지향하는 객체의 자율적 공생을 깨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의 부상을 보면서 프리드가 품었던 우려는 작품을 둘러싼 연극적 요소와 그로 인한 객체의 과잉과 미술의 자율성 훼손에 있을 것이다. 프리드의 우려는 오늘날 현실화하고 있다. 미술 내 장르뿐 아니라 기술과학 등 다른 학문과 융합하고 혼성하는 미술이, 미술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기류 속에서 연극적 요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관객과 소통하는 일이 미술 제작과 전시의 모든 덕목을 수렴하고, 관객 객체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화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관객의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1차 객체 혹은 원-객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자체의 창의적 생산력은 위축하고 제작자의 의도는 연극성에 함몰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관객 객체의 지나친 개입을 우려하는 가운데 미술의 자율성과 작품 객체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프리드의 연극성 논의는 관객과 작품/작가 객체의 공생을 지지함으로써 미술 제작과 감상 경험의 긴장과 균형을 유도한다. 


(심현섭,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과 관객 객체의 과잉 문제」, 『미학예술학연구』 제71집 (2024.02),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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