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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바다를 건너온 신성한 뱀

주강현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여자들은 시집갈 때 뱀신이 반드시 따라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토산 여자들과는 혼인을 피했고 제주로 유학 온 이곳 여학생은 하숙집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만큼 토산 및 제주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뱀이 확고부동의 신이다.

토산의 뱀은 전라도 나주 금성산의 귀 달린 뱀이다. 토산본향당(兎山本鄕堂)의 마을신인 뱀이 금성산에서 살다가 옥바둑ㆍ금바둑으로 변해 제주로 들어왔다고 한다. 금성산은 신령이 영험한 산으로 이미 태조왕건이 금성산신의 도움을 받아 건국을 꾀했고 고려조 7대 명산으로 5개의 산신 사당이 있던 명산이다. 그 뱀이 바다를 건너 신성한 지위에 올랐다.

전국 곳곳서 생명ㆍ재물 수호신 역할

뱀은 육지 동물로 알려졌지만 신화상으로는 이처럼 바다를 건너 대항해를 꾀한다. 정초마다 붕기풍어놀이를 하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 황도에서는 구렁이를 진대서낭이라 부른다. 진대란 길다는 뜻이다. 구렁이는 동네 당신(堂神ㆍ신당에 모신 마을신)이나 집안의 업신(재물복을 주는 가택신)으로 자리 잡아 인간사회를 지켜준다. 서해대교가 지나는 행담도에서도 뱀이 건너와 아산 맷돌포에 당도했다는 전설이 있다.

계사년(癸巳年) 뱀띠 해. 뱀 하면 그 어떤 아름다운 이유를 들이대도 징그럽다. 그렇지만 인간들은 뱀을 신성 그 자체로 보았다. 한 톨의 알곡도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쥐를 막아주는 이 파충류만한 막강 보호자가 있었을까. 그래서 뱀은 한반도 전역에서 신성한 신으로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다. 제주도가 유독 뱀 신앙이 강할 뿐 제주만의 특이성도 아니다.

일본 큐슈 남단 가고시마에서 오키나와 방면으로 내려가면 포르투갈로부터 철포(鐵砲ㆍ대포나 소총 따위)가 처음 전래된 다네가시마가 있다. 최남단 카도쿠라곶에 오르면 뱀신 신당이 신사로 바뀌어 있다. 이 신사의 문은 일본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문 중 하나다. 남단으로 불쑥 내민 곶에 단애가 형성돼 태평양의 도도한 물결이 굽이쳐간다. 사방팔통으로 굽어보이는 왼쪽에는 남만선이 당도했던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끝에 국립우주센터(NASIDA)가 자리 잡았으며 철포전래기념비가 굽어본다.

다네가시마 연안은 쿠로시오(黑島ㆍ흑도), 즉 흑조(黑潮)가 흐른다. 흑조 원류는 북적도 해류다. 온난하며 습기를 머금은 이들 흑조야말로 남방으로부터 철포 등 온갖 문물이 유입되는 근거가 됐다. 뱀 신앙이 이같이 남방의 쿠로시오해류를 통해 북상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아주 먼 바다를 건너온 신성한 뱀이다.

뱀이 흉물로 인식됨은 지난 100여년간 아담과 이브 류의 서양 담론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조상들도 뱀이 징그럽기야 하지만 반드시 신성물로 대접해 함부로 살생하지 못했다.

역동적인 뱀의 해 해양물류 꽃 피길

무수한 뱀 이야기 중에서 바다를 건너온 뱀을 중심 삼았음은 그만큼 뱀이 생각 이상으로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뱀 신앙이 흑조류를 통해 왔건, 행담도에서 건너왔건, 나주에서 제주까지 건너왔건 그 뱀들은 모조리 재복(財福)의 신이고 재생의 신으로 모셔졌다. 어쩌면 계사년 국운이 해양 루트를 통해 다시금 시작될 것만 같다.

사라졌던 해양수산부가 재탄생을 준비 중이다. 우리 경제가 수출입으로 먹고 산다면 해양 물류는 이를 지탱하는 거대 동맥이다. 한반도는 섬이기에 바다를 통한 항구 네트워크 없이는 불가능한 경제다. 그럼에도 바보처럼 소멸시켰던 해양수산부가 겨우 되살아나게 됐다. 바다를 건너와 재복을 안겨주던 신성한 뱀처럼 계사년의 풍요로움을 지금도 바다를 유영하고 있을 뱀에게 빗대어 기대해본다.

- 서울경제 2013.01.01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212/e201212311639164809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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