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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삶](Ⅰ-6) 포도주 같은 건축

유현준

ㆍ삶이 층층이 퇴적된 역사를 담을 수 있어야 좋은 도시 건축

팰럼시스트(Palimpsest)란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원래 양피지 위에 글자가 여러 겹 겹쳐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양피지에 글을 쓰던 시절에는 귀한 양피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 이미 쓴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글자를 써서 이전에 쓰인 글자들 위로 새로이 쓴 글자가 중첩되어 보이는 일이 흔했다. 이런 뜻의 단어가 건축에서는 오래된 역사적 흔적이 현재의 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은유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되고 있다. 

■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가?

가장 손쉬운 예로 강북의 복잡한 도로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도시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없었다. 하지만 상하수도 시설은 인간이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건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런 인프라가 구축되기 전 조선시대 주거들은 한강의 지류를 따라서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실개천 주변으로 주거들이 들어서게 되고 그 옆으로 사람과 말들이 지나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도로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시대의 도시는 수변 공간 주변으로 빨래를 하고 상하수도 시설로 사용하는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로마의 나보나 광장은 고대 도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과거의 전차 경기장은 퇴적된 흙으로 덮여 없어졌지만, 그 형태는 말발굽 모양의 나보나 광장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후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하천의 위생 문제가 심각해지고 동시에 자동차 도로의 확보가 도시 형성에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부각되면서 하천 부지는 거의 대부분 복개되어 도로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강북의 도로망은 많은 부분이 구불구불한 자연하천과도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대형 간선도로가 들어서게 되면서 과거 하천 중심으로 커뮤니티의 중심권이 형성되었던 것과는 반대로 도로가 기존 커뮤니티를 나누는 문제가 대두되었고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과거의 기술적 한계와 오랜 시간의 역사가 현재 우리가 사는 공간을 규정하고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로마는 팰럼시스트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로마는 과거 인구가 100만명에 이르다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로마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타이버 강의 범람으로 6m가량의 퇴적층이 쌓여서 과거 유적들을 덮었다. 이후 꾸준히 인구가 늘게 되면서 점차 고대 로마의 도시 흔적이 다른 종류의 도시 공간으로 전이됐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전차경기장이었던 곳으로, 경기장은 퇴적된 흙으로 덮여 없어지고 형태만 남아서 지금의 나보나 광장이 되었다. 실제로 필자가 나보나 광장의 뒷골목 어느 식당에 갔을 때 식사를 하던 위치가 과거 전차경기장의 좌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안내지를 본 적이 있다. 전차경기장은 없어지고 르네상스 시대에 베르니니에 의해서 아름다운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바뀌었지만, 말굽 모양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나보나 광장의 형태는 과거 로마시대의 전차경기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로마시대 때 만들어진 도시와 중세시대 때의 도시로 나뉜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듯이 과거 로마의 도시에는 대부분 검투사 경기를 위한 콜로세움이 있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 주민들이 당시로서도 귀한 건축 재료였던 돌을 얻기 위해서 콜로세움에 있는 돌을 뜯어냈다. 그러나 돌이 무거운 관계로 멀리 가지 못한 채 콜로세움 주변에 건물을 지어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콜로세움 모양의 달걀 형태 광장이 생겨났다. 어떤 경우에는 콜로세움을 집합주거로 변형시켜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역사가 깊은 도시들은 마치 여러 장의 트레이싱페이퍼 그림들이 쌓여 있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도시 디자인은 쌓여 있는 여러 장의 트레이싱페이퍼 그림들을 한 장씩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어느 부분은 지우고 어느 부분은 살리면서 상호관계를 조절해 오늘의 이야기를 하는 그림을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500년이 더 된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 역시 여러 시대에 걸쳐서 많은 이야기의 층들이 쌓인 도시이다. 이를 잘 이용하는 건축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나보나 광장이 전차 경기장으로 사용됐을 때의 모습을 그린 17세기 판화.

■ 건축 디자인은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건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벽돌을 쌓아 집을 짓고, 도로를 깔고, 지붕을 만들고, 창문을 만드는 일들을 상상한다. 과연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들이 건축의 전부일까?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로 잠시만 살펴본다면 앞서 말한 건축행위들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기 위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연극을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시나리오를 쓰는 일이다. 무대 디자이너는 그 스토리에 맞추어 최소한의 공간과 재료로 최적의 무대세트를 디자인한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건축가는 먼저 사람의 행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시나리오를 먼저 쓰는 것과도 같다. 연극 시나리오 없이 무대세트가 디자인될 수 없듯이, 사회와 삶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 건축물이 디자인되어서는 안된다. 

건축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간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집이라는 성전조차도 인간이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한 장소이지, 하느님이 집이 없는 분이라서 지은 것은 아니다. 절이나 다른 종교건축들 역시 인간의 행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건물이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걸맞은 환경을 연출해주기 위해서 건축은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극의 스토리는 빈약한데 무대장치만 블록버스터급으로 해놓으면 안되듯이 너무 부족해도 안되지만 너무 과해도 안되는 것이 건축이다.

우리의 삶은 개개인 하나만 살펴보아도 복잡하고 파악하기 힘들다. 그런데 건축은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더 복잡하고 심오한 사회를 담아내는 장치이다. 이 복합적 삶들을 담아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행동들을 건축을 통해서 조절하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건물을 짓든 그 건축물이 들어서는 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곳이다. 모든 땅은 위도가 같으면 경도가 다르고, 경도가 같으면 위도가 다르다. 그 땅 주변 상황들을 살펴보면 하나도 같은 조건인 땅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 제대로 된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주어진 땅에 대해 이해하고 그 땅 위에서 일어날 프로그램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이때 여러 가지 주어진 조건들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조건들이 만나서 시너지효과를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 긴장감이 도는 줄다리기의 줄 위에서 아름다운 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는 경제, 심리, 인간행동, 문화, 기술, 각종 사회현상 등 여러 가지 요소들 간의 상호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짜인 이들 요소 사이의 관계의 망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거미집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 

꼭두각시 인형들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위에서 사람이 줄을 이용해서 춤을 추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꼭두각시 인형의 줄들이 바로 건축가가 디자인하는 벽, 기둥, 창문, 슬래브 같은 물질로 이루어진 건축 요소들이다. 이 줄들이 모여서 도시라는 인형과 그 안의 사람을 춤추게 한다. 하지만 물질이 합쳐져서 나타나는 건축‘물’이 궁극적인 목표여서는 안된다. 그 이후에 만들어져야 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삶이 우리 건축가가 궁극적으로 바라보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 지향점이다.

■ 소주 vs 포도주

좋은 건축은 소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다. 소주는 공장에서 화학 공식에 따라서 대량생산되는 화학주이다. 소주는 생산하는 사람이나 지역의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반영되지 않고, 인간과 격리된 가치를 가지는 술이다. 건축에 비유한다면 찍어내듯이 양산되는 아파트나 지역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국제주의 양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소주 같은 화학주는 잘돼야 고급 위스키 정도가 될 것이다. 

반면 포도주는 다르다. 같은 종자의 포도라도 생산되는 땅의 토질에 의해서 다른 포도가 생산되고, 같은 종자의 포도와 같은 밭이라고 하더라도 그해의 기후에 따라 다른 포도가 생산된다. 똑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포도주를 담그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포도주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세상에 단 한 종류밖에 없는 포도주가 완성되는 것이다. 

건축도 이같이 지구상 단 하나밖에 없는 땅 위에, 특별하게 주어진 프로그램에, 특정한 건축가가 개입되어 단 하나의 디자인이 나와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성과 건축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TV 광고로 포장된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로는 좋은 건축이 만들어질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좋은 디자인은 건축된 대지에서는 아주 좋다가 그 대지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순간 나빠지는 디자인이다. 이 말은 좋은 건축 디자인은 그만큼 대지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이용하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약 건축된 대지 위에서도 좋았으나 거기서 옮겨져서 다른 곳으로 가서도 계속 좋다면 그 디자인은 그 대지와 상관없이 디자인되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대지를 바꾸었음에도 그 차이가 없는 만큼 대지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에너지와 연결되지 못했거나 대지의 에너지를 이용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 아이들의 웃음이 있는 환경

‘건축과 삶’ 시리즈 제1부를 마무리하면서 여기서 잠깐 지난 30년간 세계 현대건축의 큰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필자가 보기에 지난 30년간 세계 건축계의 주요 변수는 크게 소련의 붕괴와 컴퓨터의 발명이었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기 전에는 미국과 소련의 40년 동안의 냉전시대였다.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양분되어서 엄청난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이때 사람들에게는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따라서 건축도 이데올로기가 패권을 쥐고 있는 형세였다. 다시 말해서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인문학적 철학적 이념이 건축을 압도하고 이끌어 갔다. 따라서 1980~1990년대에는 해체주의를 말하는 피터 아이젠만 같은 건축가들이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의 붕괴를 기점으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독주를 하면서 자본주의를 등에 업은 렘 쿨하스(서울의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가 추앙을 받았다. 동시에 1990년대 IT기술 발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프랭크 게리(LA의 디즈니 콘서트홀을 설계한 건축가)나 자하 하디드(동대문 디자인플라자를 디자인한 건축가)가 새로운 모양의 건축물로 잠시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자본주의가 건축을 지배하던 추세는 2007년 미국의 경제위기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한풀 꺾이게 되었다. 이때 자본주의 건축가들도 함께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점으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화려한 등장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듯했다. 2012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중국 건축가가 받은 것은 이러한 커다란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 최근에는 친환경과 더불어 일본에서 시작된 공동소유의 개념이 도입된 공동주거가 나타나면서 1990년대식 자본주의 건축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가 전개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건축은 정치, 경제, 기술,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그 나라 건축의 수준은 그 나라 문화와 국민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 나올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1997년 IMF라는 경제위기 이후 지난 15년간 오히려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은 상당히 높아졌다. 여기에 걸맞은 수준의 건축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이는 한두 개의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건축의 수준이 높아져야 우리의 삶이 좋아질 것이고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숲보다 더 좋은 도시는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환경의 도시를 함께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리즈 1부를 마무리할까 한다.


- 경향신문 2013.01.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041930315&code=9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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