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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재생’시키자

로버트 파우저

나는 한옥과 인연이 깊다. 1988년부터 89년까지 서울 혜화동 한옥에서 살았고, 2010년부터 지금까지는 계동 한옥에 살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체부동에 있는 한옥을 대폭 수리 중이다. 수리 공사가 끝나면 이사갈 예정이다. 계산해 보니 올해 한옥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25년이 된다. 하지만 내가 한옥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선 생각이 잘 정리돼 있지 않다. 한옥만의 매력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매력을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은 ‘한옥 지킴이’로서 언론에 가끔 등장하는 나에게는 불편할 때도 있다. 그러나 체부동 한옥이 완공에 가까워지면서 한옥의 매력을 더 느끼고, 생각을 조금 더 정리하게 된다.
북촌에서 시작된 한옥 붐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88년 혜화동 한옥에 살고 있었을 당시 북촌은 ‘가회동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있었고, 건축 규제가 엄격했다. 하지만 많은 주민이 개발을 원했고, 90년대 초 규제가 잠깐 풀리자 여기저기 빌라가 생겨났다. 이후 서울시는 한옥 보존을 위한 지원 제도를 도입했고, 2000년대 초부터 많은 한옥이 수리되면서 현재 북촌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여기에서 논쟁의 키워드는 ‘한옥의 보존’이었다. 북촌의 성공 사례를 통해 한옥은 ‘보존을 위한 전통적인 집’이라는 인식이 형성됐다.
그러나 북촌이 성공하면서 새로운 논쟁도 시작됐다. 자세히 보면 북촌의 많은 한옥은 신축에 가까운 대규모 수리를 했다. 한옥의 뼈대만 유지하고 외부는 ‘한옥답게’ 하되 내부는 비교적 자유롭게 수리하는 대규모 공사를 한 것이다. 사실 한옥 매니어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대규모 공사를 원할 것이다. 주방과 화장실을 마당이 아닌 집 내부에 두어 편하게 출입할 수 있도록 바꾸거나, 온돌이 없는 대청마루도 겨울에 따뜻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집의 내부 구조를 대폭 바꿀 수밖에 없다.
이런 대규모 수리 공사가 북촌에서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오리지널 ‘원형 한옥’이 없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한옥의 미학이 고착화되면서 한옥의 개성이 없어지고, 북촌이 인공적 테마파크처럼 돼버렸다는 비판은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 등장한 전주 한옥마을도 이런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한옥의 원형을 따지는 ‘원형 논쟁’이라 할 수 있겠다.
한옥을 ‘보존’의 틀에 가둬놓고 논의하면 한옥 발전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60년대 시작된 공업화에 따라 한국인의 생활 방식은 급속히 변했지만 한옥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불편하고 낡은 주택으로 추락해 버렸다. ‘보존’과 그 파생적 논의인 ‘전통’ 혹은 ‘원형’에만 계속 초점을 맞춘다면 결국 한옥은 현대인의 생활방식에서 제외될 것이며 ‘전통적 장식물’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지루한 논의를 멈추기 위해 나는 ‘한옥 재생’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재생’에 초점을 맞추면 전국에 현존하는 한옥의 다양한 활용가치가 보일 것이다. 한옥을 신축하거나 주거 목적 이외의 한옥을 짓는 것에 대해서도 폭넓은 논의가 가능하다. 2000년대 초부터 북촌에서 진행된 한옥 수리 작업은 사실 보존보다는 재생에 가깝다.
결국 나에게 한옥의 매력은 ‘재생’에 있다. 한옥엔 과거와 통하는 자연적 재료인 나무와 기와가 있으며, 마당처럼 자연과 바로 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옥의 이런 기본적 형태를 다양한 사람의 생활방식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매력적이다. 나무와 기와는 계속해 재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한옥은 결국 새로운 주인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재생되고, 그 과정 속에서 시간의 흔적이 담긴 재료도 장인들의 손길로 재생된다. 디지털 시대에 인공적 공간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한옥이라는 아날로그적 공간의 매력은 재생을 통해 더욱 커지지 않을까 싶다.
 

-중앙선데이 2013.01.07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8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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