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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공간' 부도(不渡)

김태익

서울 비원 옆에 있는 공간사 사옥(社屋)은 기능이나 효율 면에선 높은 점수를 못 받는 건물이다. 층 사이 경계도 모호하고 미로 같은 통로가 오르내리는 사람을 번거롭게 한다. 그런데도 이 건물은 한국 현대건축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설계자 김수근은 자신의 건축 미학을 응축한 이 건물을 두고 '자갈리즘'이란 말을 만들었다. 아기자기하고 맨들맨들한 돌멩이처럼 사람을 편하게 하고 즐거움을 주는 건축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김수근은 스물여덟 나이인 1959년 남산 국회의사당 설계안이 당선돼 국내 건축계에 등장했다. 워커힐과 자유센터, 타워호텔, 경동교회, 마산 양덕성당, 문예진흥원, 샘터 사옥 같은 건물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김수근의 첫 작품인 자유센터는 콘크리트로만 지어진 국내 최초의 건물이다. 그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입지 선정 등 산업화 전초작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깊숙이 참여했다. 

▶젊은 나이에 한 시대 건축계를 주무른 그였지만 늘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화가 권옥연과 함께 차를 타고 자신이 설계한 건물 앞을 지날 때였다. 그는 '형, 다이너마이트, 다이너마이트 없소? 아아, 창피해 미치겠소' 했다. 권옥연이 '이봐, 나도 내가 그린 그림 보고 그런 생각 들 때 많아' 하며 어깨를 두드리자 김수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 '그림은 그래도 방 안에나 있지. 건물은 저렇게 거리에 떡 버티고 있지 않소.' 


▶그 무렵 김수근이 이끌던 '공간'은 인재들이 모인 건축 왕국이었다. '공간' 가족들은 그를 사장이나 대표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승효상 같은 신참들은 김수근의 카리스마와 통 큰 스케일을 두고 그를 '왕당'이라 불렀다. 오늘날 한국 건축을 이끌고 있는 수많은 인재가 '공간 스쿨'에서 나왔다. 

▶올해로 서울 안국동에 김수근건축연구소가 선 지 52년이다. 1966년 이름을 바꿔 한때 한국 건축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던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연초 부도 처리 됐다. 국내 건설 경기가 신통치 않아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건만 여기서도 설계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김수근이 세상을 뜬 후 그의 후광을 넘어서는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탓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겉으론 화려하게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 건축계가 속으론 꽤 많이 앓고 있는 모양이다. 


- 조선일보 2013.01.07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06/20130106012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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