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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문화재와 ‘어버이의 권리’

이상정

국무총리실은 지난 11일, 50년 미만의 근·현대 유물 중 보존가치가 있는 유물에 대해 ‘(가칭)예비문화재’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 사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근·현대 문화유산은 보존·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가치를 평가받기도 전에 훼손되는 사례가 빈번했다는 것이다. 그 예로서 박목월과 현진건의 생가가 소유자에 의해 철거되었고, 김수영 작가의 가옥은 폭설로 훼손되었으며, 현대 건축가 김중업·김수근의 건축물은 기초조사도 안 된 채 철거되었다고 한다. 

확실히 문화유산의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진일보된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도대체 문화재로 지정되려면 지정될 때까지 보존되어 있어야 하는데 자연재해나 소유자의 무지나 무관심으로 파괴되거나 훼손되면 지정하고 싶어도 지정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빨리 이 제도가 도입되기를 희망한다. 다만 이러한 예비문화재로 되기 위해서는 선정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과연 그 선정이 신속·적정하게 행해질 수 있는지는 숙제로 남아 있다. 

무관심에 훼손되는 문화유산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당해 예비문화재를 제작하거나 창작한 자에게 보존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하자면 당해 작품의 저작자에게 어버이로서의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존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자는 다름 아닌 작품의 저작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것은 작품의 철거와 파괴를 둘러싸고 작가와 국가 사이에 발생한 도라산역 벽화 사건이다. 벽화는 작가 이반씨가 통일부의 요청을 받아 2005∼2007년 도라산역의 벽과 기둥에 그린 것이다. 한용운의 생명사상 등을 형상화한 14점으로 구성된 것이었고, 길이 97m, 폭 2.8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이었다. 그런데 통일부가 2010년 초 ‘관광객의 이해 곤란’ 등의 이유로 철거한 후 폐기하였다. 

이에 작가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자 1심 법원은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고등법원은 지난해 11월 29일, 도라산역 벽화철거는 헌법상 보장된 예술의 자유나 국가 미술품보관규정 등에 비추어 위법이며, 국가는 원고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였다. 고등법원은 통일부의 행태를 여러 가지 점에서 나무라고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이 사건 벽화를 소각할 예정임을 원고에게 미리 알렸다면 원고는 자신의 작품을 보존하기 위하여 다시 매수하는 등의 조치를 강구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보임에도 아무런 통보 없이 폐기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을 때마다 소송을 통하여 구제를 받는 것보다 이러한 내용을 저작권법이나 문화예술진흥법에 명문화하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참고가 되는 것은 스위스 저작권법이다. 동법 15조는 ‘원작품의 소유자는 그 작품의 별도의 복제물이 존재하지 아니하고 또 저작자가 보존에 관하여 정당한 이익을 가진다고 추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먼저 저작자에게 반환의 제의를 하여야 하며, 이러한 제의를 하지 아니하고는 파괴하지 못한다. 소유자는 저작자의 반환 제의시 당해 작품의 재료비 이상을 청구할 수 없다. 그리고 소유자는 원작품을 되돌려주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적당한 방법으로 원작품의 복제를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철거 앞서 저작자 뜻 확인하길

궁극적으로 파괴여부의 결정은 소유자가 하되 일정한 절차를 거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법에 끌어들일 경우에는 약간 손을 보아야 하겠지만 본받을 만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내용이 도입되면 이번에 발표된 ‘(가칭)예비문화제’ 제도와 서로 보완되어 상승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 국민일보 2013.01.14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799184&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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