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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품격있는 춘화

유인화

이재용 감독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는 18세기 조선시대의 풍속을 재현한 작품이다.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한 영화에는 바로크풍의 음악과 우리의 창, 정숙한 부인과 바람둥이 남자, 열녀문을 자랑하는 양반집의 엄격함과 춘화에 탐닉하는 양반의 난잡한 생활이 함수관계를 이루며 충돌한다. 영화에서 조선의 카사노바 역을 맡은 배용준은 정절녀 전도연과의 정사를 떠올리며 노골적인 춘화를 그리거나 음탕녀 조씨부인역인 이미숙의 누드를 그리는 등 양반들의 성풍속을 적나라한 그림으로 보여준다. 배용준 대신 실제 미대 교수가 그린 영화 속 춘화는 조선의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그렸다고 알려진 춘화를 참고했다고 한다.

조선의 춘화들은 그린 사람이 밝혀지지 않지만 단원과 혜원의 작품으로 전해지거나 그 화풍을 모방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당시 춘화들을 보면 남녀의 야한 자세뿐 아니라 표정, 운우지정(雲雨之情)의 배경인 계곡과 바위의 위치, 꽃색깔과 나무의 기울어짐 등 음양결합의 세밀한 암시와 운치있는 산수 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남녀가 대등한 관계로 묘사된 춘화는 성행위자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상상력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혼음, 승려와 일반인의 정사 등 구체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대목도 춘화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유교의 금욕적 규율이 완강해지자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 춘화가 오히려 더 잘 팔렸다고 한다.

춘화가 성행한 조선시대 이전의 성문화에는 야한 정서에 앞서 해학과 에너지가 담겼음을 알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삼국시대 유물 중에서는 남녀의 성기를 생명의 원천으로 표현하거나 성행위를 위트있게 묘사한 토우나 토기들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 청자나 청동거울 뒷면에 새겨진 체위상도 음탕하기보다는 종족보존과 노동력 확보를 위한 자연적 에너지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오는 2월24일까지 열리는 ‘옛 사람의 삶과 풍류-조선시대 풍속화와 춘화’ 전시에 가면 조상들이 품격있게 해석한 춘화를 볼 수 있다. 춘화를 처음 대하면 낯이 화끈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너머 그림 배경인 자연의 음양 조화를 생각해 보면 인간 본성이 담긴 춘화야말로 그 시대와 지역의 가장 정직한 유물임을 알 수 있다.

- 경향신문 2013.01.2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120210949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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