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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겸재 옆집에 살아보니

정종미

얼마 전 광화문 근처로 이사했다. 서촌의 오래된 가옥을 수리하여 보금자리를 틀었다. 춥고 불편하지만 아파트 공간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화초가 있는 마당은 하나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이 집에 담겨있는 세월의 느낌이 나를 참으로 편안하게 한다. 알고 보니 조선미술의 대가 겸재 정선 선생의 집이 이웃이고 천재 시인 이상의 집 또한 지척이다. 겸재가 ‘인왕제색도’을 그리던 자리에 내가 서있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그뿐인가. 아침마다 산새들의 지저귐에 하루를 시작하며 박새, 직박구리, 오색딱따구리 등 다양한 새들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당초에는 마당을 없애고 빌딩을 올려 요긴하게 쓸 임대 공간까지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60년이나 된 낡은 집을 수리해서 쓰기로 하였다. 이 갑작스런 변심에 대해 몇몇 지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낡아서 아름다운 서촌 풍경

세계의 화젯거리인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오래된 발전소를 수리한 것이다. 미술관 건립자는 발전소 굴뚝을 영국 현대미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낡은 터빈은 마치 설치작품처럼 전시되어 이 미술관을 명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이렇게 리모델링하는 것이 낡아빠져 골칫거리인 발전소를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4배의 경비가 든다고 한다.

영국 정부가 엄청난 돈을 투자해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이곳 역시 건립 당시에는 영국 최고의 작품이었고 영국의 역사와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로운 것 혹은 경비절감이라는 이유로 역사를 버리고 신축을 선택하지 않았다. 현대미술의 메카라는 이곳, 그야말로 컨템퍼러리한 아트만 취급하는 이곳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내세워 일약 세계의 명소로 떠올랐다.

물론 이런 선택이 쉬운 것은 아니다. 여러 경제적 여건이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일 일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예전과 비교해서 우리의 상황은 훨씬 나아졌고 경제대국이라는 칭호까지 듣고 있음에도 체감되는 상대적 빈곤감은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율성이 부각되는 대신 역사와 문화는 상실되어간다. 그러니 우리 삶이 경제적으로 풍족하면서도 공동체의 정서는 점점 불안해지는 것이다.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이 팽팽하게 맞서 서로를 독려하는 일본이나 서구의 문화와 달리 우리의 현실은 사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조화가 깨진 지도 오래다.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지는 끔찍한 시행착오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생명을 무시하고 효율성만 노린 축산의 결과가 구제역이라는 끔찍한 형태로 나타났고, 글로벌 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각종 금융사건도 경제성만 노린 대형화 집중화가 문제라고 하지 않는가.

상생의 문화 활짝 꽃 피길

그래서 나부터 결심했다. 더불어 사는 상생의 의미를 실천해보고자 신축보다 수리를 선택하였다. 함께하는 이웃의 건물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이 동네의 역사가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은 군인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겸재의 집터를 보라.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장인의 집조차 기념관으로 만들어 관광지로 만드는 일본이나 유럽과는 달리 우리 미술사에 우뚝 선 대가의 집은 그저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언젠가 다시 복원될 것을 기대하여 정선은 자신의 집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려놓은 건 아닐까.

동네를 거닐며 예전엔 이 길이 모두 흙과 석회로 된 꽃담이었다는데 일부라도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다. 전통의 미감이 우리의 각박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줄 것이므로. 새해에는 자연과 인간, 과거와 미래, 순수와 실용 등 모든 대립되는 개념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생의 문화가 활짝 꽃피길 기대해본다.


- 국민일보 2013.01.28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843664&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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