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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풍납토성

김태익

1925년 을축년 한반도에는 어마어마한 비가 쏟아졌다. 7~9월 네 차례 내린 큰 비로 전국의 강이 흘러넘쳐 647명의 사망자를 냈다. 가옥·농경지 같은 재산 피해액은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인 1억300만원에 달했다. 이런 재앙이 아이로니컬하게도 고고학에는 두 가지 선물을 가져다줬다. 홍수가 휩쓸고 간 광주군 암사리 한강변에서 신석기인들의 주거지가 발견됐다. 그보다 하류 쪽 풍납리에선 땅속에 묻혀 있던 백제 토성(土城)이 허리를 잘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백제는 고구려 주몽의 아들인 온조에 의해 기원전 18년 한강 가에 세워졌다. 백제는 한성·웅진(공주)·부여 등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 지속된 시대는 한성백제였다. 678년 백제 역사 중 웅진시대는 63년, 부여시대는 122년에 불과했지만 한성시대는 493년이나 됐다. 한성백제는 또 최근 사극으로도 인기를 모은 근초고왕의 영광이 아로새겨진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대 백제의 왕성(王城)이었다는 하남 위례성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1997년 아파트를 짓기 위한 터파기 공사를 하던 중 풍납토성 내부 4m 깊이 지층에서 백제 초기 토기(土器)가 출토됐다. 주변을 파보니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한성백제의 유물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왔다. 20평이 넘는 건물터는 기와, 주춧돌, 서까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민가가 아니라 관공서 자리가 분명했다. 한성백제의 왕성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유물들이 3만여점에 달했다. 어느 고고학자는 풍납토성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땅속에 묻혔다가 어느 날 17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로마 폼페이 유적에 비유해 '한국의 폼페이'라고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풍납토성 해자(垓子·성 주변에 둘러 판 연못)를 발굴했더니 온통 쓰레기 더미였다고 한다. 토성 남쪽 지역 8400㎡(2540평) 넓이의 땅에 3m 깊이로 각종 산업폐기물, 생활 쓰레기가 수천t 불법 매립돼 있다는 것이다.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 왕성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아가는 시점에서도 누군가 계속 쓰레기를 갖다 버린 것이다. 

▶풍납토성은 우여곡절 끝에 발견돼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았다. 토성에 대한 발굴·보존과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그런데 우리는 2000년 만에 깨어난 백제 건국 설화의 현장을 10년도 안 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하의 백제인들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현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 조선일보 2013.02.0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03/20130203011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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