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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종갑]심미적 사회, 몸이 예술작품이다

김종갑

외모 가꾸기 열풍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얼짱, 몸짱, 식스팩, 짐승남과 같은 용어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외모 가꾸기 열풍은 1980년대 후반 제법 풍요로운 사회로 접어들면서 시작됐다. 궁핍했던 시절에는 부족하지 않게 먹고 입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이제는 멋있게 먹고 입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회다. 이것은 일상이 심미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뜻한다. 외모도 그냥 생긴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사람도 예술작품이 되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아름다워지고 싶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시부족도 화장을 했으며, 이미 기원전에 성형수술이 시술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외모를 가꿀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제한된 특권적 계층과 부유한 소수만의 특권이었다. 대다수의 백성들에게 몸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닳고 마모되는 노동력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외모에 신경을 쓰기 위해서는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했다. 화장과 성형, 의복으로 외모를 가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행운이며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이 무조건적인 축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외모를 가꾸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개성이 아니라 타성적 유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외모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아름다움은 선함과 능력, 지성, 매력의 보증수표로 통용되는 한편 가꾸지 않은 추한 외모는 부도수표로 처리된다. 그냥 아름다운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게 됐다. 남들보다 더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워졌지만 과거의 어느 때보다 더욱 불행해지고 있다.

경쟁하면서 불행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아름다워져야 한다. 누군가는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은 선의 광채라는 말도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같은 논리로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추하다고 말해야 한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당신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때 아름다움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다. 번듯한 이목구비나 백옥 같은 피부가 아니라 행동이, ‘하는 짓’이 예쁜 것이다.

아름다우면서도 정작 불행한 이유는 ‘하는 짓’이 아니라 ‘생긴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기 때문이다. 동적인 행동 대신에 정적인 생김새, 표정이 아니라 이목구비에 지나치게 연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표정이 없는 얼굴은 죽은 얼굴, 간판이 아닌가. 진정한 의미의 아름다움은 외면과 내면의 균형과 조화, 그리고 해맑은 눈빛에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아름다움을 보고 감별할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는가. 시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TV나 영화, 화보 등을 통해 연예인과 방송인을 만나기 때문에 시각적이며 가상적인 아름다움에 매몰되기 쉽다. 행동이 내뿜는 아름다움의 의미에 무지하기 쉬운 것이다. 아름다운 외모가 행복과 맺어지기 위해서는 행동과 결합되어 조화, 즉 코스모스를 이루어야 한다. 일상이 심미화된 현실에서 우리는 아름다워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삶은 예술작품으로 완성해야 하는 과제이다. 시각적 외모가 아니라 아름다운 행동으로 예술작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아일보 2013.02.05

http://news.donga.com/3/all/20130205/52819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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