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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다독다독]만화산업의 무한한 가능성

한기호

2002년,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도쿄에서 디지털 시대의 출판 비즈니스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 소각칸의 멀티미디어 책임자는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아시아 출판사들이 일본 출판만화를 불법 복제해 출판 자본을 형성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상 앞으로는 자신들이 저작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책을 직접 판매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지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0년에 소각칸은 인기 만화가인 마쓰모토 다이요의 <넘버 파이브> 애플리케이션(앱)을 29개 나라에서 동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회는 무료로 볼 수 있지만 2회부터는 유료로 보는 방식이었는데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휴대전화로 자동번역으로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소각칸은 이미 부동의 업계 1위였던 고단샤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라섰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등 여섯 중견 만화가가 함께 그린 만화집 <내가 살던 용산>(보리)이 출간됐습니다. 평범한 이웃들이 그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망루에 올랐다가 다섯 사람(경찰특공대 한 사람 포함해 여섯 사람)이나 망루에서 목숨을 잃은 지 1주년이 되는 날에 말입니다. 거센 불길 속에서 타죽은 이의 주머니 속에 있던 라이터가 터지지 않았고, 지문이 그대로 살아있는 이의 장갑도 벗기지 않고 신원을 확인하려고 부검했다는 천인공노할 사실을 그 만화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그해에는 ‘돈도 재능’인 시대에 가난한 계층 출신의 아이들이 만화가가 되기 위해 다니는 미술학원의 애환을 그린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이 출간됐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기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촌철살인으로 연출된 이 만화는 그해 제51회 한국출판문화상에서 만화로는 최초로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저는 이 만화들을 통해 처음으로 만화라는 거대한 세상의 존재감과 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의 우수한 표현력과 위대한 예술성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글과 이미지가 상생하는 디지털 시대여서일까요? 만화에서는 소설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상상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10월에는 제가 주도하는 출판전문 잡지 ‘기획회의’에 ‘만화, 세상의 창이 되다’라는 특집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작년 말에 제가 참여하는 다른 잡지인 ‘학교도서관저널’은 <만화책 365>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동안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읽히려는 만화는 주로 ‘학습만화’였습니다. 덕분에 수천만 권이 넘게 판매된 학습만화가 꽤나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만화는 ‘불량’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만화가 적지 않음에도 늘 ‘출판의 서자’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교사와 학부모가 주도하여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만화를 골라준 <만화책 365>는 우리 ‘만화’에 붙어 있는 ‘불량’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한국의 만화는 여전히 ‘찬밥’ 신세입니다. 만화가 예술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번 보고 버리는 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만화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만화시장은 하나로 통합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킬러콘텐츠 만화는 출간 즉시 국내에 바로 상륙하는 시대이니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만화는 세계적인 만화로 볼 수 있습니다.

음식과 취재와 사진이 결합한 허영만의 <식객>(전27권, 김영사)은 만화산업에서 비소설 단행본 만화로 유의미한 성과를 낸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2007년 <이끼>(한국데이터하우스)로 여러 만화상을 휩쓴 윤태호의 신작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위즈덤하우스)의 성장세도 무섭습니다. 바둑 입단을 위해 7년을 허송한 주인공이 종합상사에 낙하산으로 입사해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 만화는 탁월한 ‘인생교과서’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이상 재미주의) 등 생활만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강풀의 만화들과 저승이라는 전통소재를 현대 생활에 상큼하게 녹여낸 주호민의 <신과 함께>(애니북스)도 우리 만화의 녹록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스마트폰 사용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선 지 한참 지났습니다. 스마트패드도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기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개인은 이들 스마트기기로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영상을 결합한 앱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만화산업의 성장세는 무섭습니다. 일본에서는 전자책 전체 매출의 85%는 휴대전화로 내려받아 보는 것인데 그 중 80% 이상이 만화라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은 전자책 만화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여 세계를 장악할 태세를 확립해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만화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만화(특히 웹툰)야말로 산업으로서 가장 가능성 있는 매체라는 인식이 절실합니다. 만화가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만화를 웹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매체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능력 있는 만화가들이 늘어나고 우리 만화가 세계를 주무를 수 있을 테니까요.

-경향신문 2013.02.0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204212320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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