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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최악의 건축물 1호

김태익

프랑스 파리의 복합 문화 공간 퐁피두센터도 1977년 처음 지어졌을 땐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건물 벽 속에 감춰져 있어야 할 철근과 배수관, 통풍관들이 그대로 겉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미술관·박물관 건물은 대리석으로 우아하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였다. 어떤 사람은 '창자가 밖으로 나온 건물'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짓다 만 공장 같다'고 했다. 

▶2002년 런던 템스 강변에 기괴한 모양을 한 건물이 하나 들어섰다. 투구를 엎어놓은 것 같기도 했고 달걀이 기울어진 것 같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남자의 고환(睾丸) 같다고도 했다. 영국이 자랑하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 시청사였다. 런던은 세인트폴 성당,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 성당을 비롯해 유네스코 세계유산급 건물이 즐비한 도시다. 당연히 도시의 고풍스러운 격조를 해친다는 비난이 잇따랐다. 


▶지금은 누구도 퐁피두센터나 런던 시청사를 '흉물'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퐁피두센터는 '미술관은 고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누구나 편하고 자유롭게 드나들며 즐길 수 있는 명소가 됐다. 런던 시청사는 주변의 오래된 건축물과 때론 대비를 이루고 때론 조화를 이루며 런던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파격적 외관으로 도시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공공 건축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세간의 비난이라는 면에서만 보면 작년 문을 연 서울시 신청사도 퐁피두센터나 런던 시청사에 못지않을 것이다. 600년 고도(古都)인 서울 한복판에 웬 외계인 같은 건물이냐는 사람도 있고, 시멘트 숲 속에 결박당한 곤충 같다는 사람도 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서울시 신청사도 퐁피두센터나 런던 시청사 같은 명물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 눈도 일반 사람 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한 건축 잡지가 건축가 100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한국 최악의 현대 건축 1호'로 서울시 신청사를 꼽았다.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빌딩을 세우는 데는 마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축가는 이 마술을 위해 사회학자이고 시인이며 과학자가 돼야 한다.' 문제는 서울시 신청사에선 시(詩)도 과학도, 건축의 새로운 시대를 돌파하려는 의지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시 신청사는 '무개념'이다. '일제마저 특별한 공을 들인 서울 심장부에 우리 스스로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어느 건축가의 평가가 그래서 아프다.

- 조선일보 2013.02.0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05/20130205023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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