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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온 佛像, 반환이 먼저다

최영창

지난해 10월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쓰시마(對馬島) 시 가이진(海神) 신사와 간논지(觀音寺)에서 각각 도난당한 뒤 국내에 반입된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높이 38.2cm)과 고려시대 ‘관음보살좌상’(높이 50.5cm)의 반환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지난 1월 두 불상을 회수한 문화재청은 감정을 거쳐 주한일본대사관 측이 요청한 내용과 일치하면 문화재보호법과 유네스코 협약 등 관련법령에 따라 돌려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학계와 불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각에서 “불상을 일본으로 반환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내 여론도 출렁거리고 있다. 특히 복장(腹藏)에서 나온 주성결연문(鑄成結緣文)을 통해 1330년(충렬왕 17) 2월 제작된 ‘관음보살좌상’의 원래 소장지로 밝혀진 충남 서산 부석사와 교구본사인 예산 수덕사, 조계종 등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일본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가이진 신사의 ‘금동여래입상’과 나가사키 현 지정 유형문화재인 간논지의 ‘관음보살좌상’ 모두 국내 불교조각 전문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대다수 문화재 전문가들은 두 불상이 부산항 문화재감정관실에서 ‘위조품’이란 판정을 받고 세관을 통과한 사실도 놀랍지만, 국민 정서에 편승해 도둑질한 게 명백한 장물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현재 상황이 씁쓸하기 그지 없다는 반응이다. 

두 불상 모두 지난해 일본에서 훔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실은 분명한 반면, 과거 일본으로 나가게 된 과정은 추측과 심증만 있을 뿐 명확한 증거가 없다. 고려 말·조선 초 왜구의 약탈품인지, 일제시대 반출된 것인지, 아니면 한·일 교류의 산물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더욱이 8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은 ‘관음보살좌상’과 달리, 어떠한 명문이나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100% 신라 불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어 반환을 거부할 국제법·국내법적 근거가 없다.

고려국 서주(瑞州·서산) 부석사 당주(堂主)가 조성한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된 ‘관음보살좌상’의 묵서 명문도 이 불상이 고려 말 왜구에 약탈됐거나 일제시대 도난당했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관음존상을 주조해 부석사에 봉안하고 영원토록 공양하고자 서원한다’는 명문의 내용으로 볼 때 일본에 선물로 제공했을 리가 없으며 혹시 줬더라도 복장의 명문을 다시 만들어 이 같은 내용을 적어 넣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반면, 왜구가 훔쳐간 것이라면 복장 유물 중 명문을 없앴지 그대로 놔뒀겠느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왜구의 근거지이자 한·일 교류의 중계지였던 쓰시마에는 한반도에서 유래한 불교미술품만 100여 점이 전한다. 아무리 심증이 가더라도 약탈 문화재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면, “원래 우리 것이니 돌려달라”는 주장은 윤리적으로는 몰라도, 법적으로는 통용되기 어렵다. 국내 일각에서 유네스코 협약(1970년 채택)과 유니드로아 협약(1995년 채택),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박물관 윤리강령(1986년 제정), 문화재보호법 등을 예로 들며 “일본도 두 불상의 출처를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법적인 근거를 찾기 힘들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법적 절차에 따라 두 불상을 반환한 뒤 명문이 확실한 ‘관음보살좌상’의 경우, 조계종단 차원에서 ‘원래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취지로 간논지와 협상을 벌이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 문화일보 2013.02.14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2140103303007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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