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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에펠탑 살린 파리시 지혜, 제주도엔 없었다

이해석

에펠탑은 프랑스의 상징이다. 파리를 찾는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이 한 번쯤은 에펠탑을 찾거나 먼발치에서 구경한다. 그런 에펠탑이 한때는 흉물 취급을 받으며 철거될 운명에 있던 시한부 건축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탑은 1889년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박람회조직위원회가 세웠다. 박람회장 출입 관문으로 사용하고 박람회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20년 뒤에는 철거한다는 조건을 붙여 허가를 받았다. 전에는 구경조차 못했던 81층 건물 높이(324m)의 철탑을 두고 ‘철 사다리로 만든 깡마른 피라미드’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하지만 파리시 당국은 허가 기간이 끝난 뒤에도 탑을 그대로 보존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구조물인 에펠탑이 언젠가는 파리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또 탑이 통신 시설로 가치가 충분하다고 봤다. 파리시 당국이 내린 ‘순간의 판단’ 덕분에 에펠탑은 프랑스 국민은 물론 세계인들이 앞다퉈 찾는 상징물이 된 것이다.

 파리시가 에펠탑 영구 존치를 결정한 지 104년이 지난 2013년,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한 건축작품을 두고 철거냐 보존이냐의 논란이 팽팽하게 벌어졌다. 멕시코 출신으로 세계적 건축 거장인 리카르토 레고레타(1931∼2011)의 유작인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의 ‘카사 델 아구아’(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란 뜻)를 두고서였다. 멕시코 정부가 여러 차례 보존을 요청해 오기도 했지만 행정당국의 입장은 달랐다. 해안선에서 100m 이내에는 영구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버텼다. 급기야 6일 포클레인을 동원해 부숴 버렸다.

 철거를 반대해 온 시민단체와 문화계 인사들은 현장에서 건물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환경영향평가 내용을 반영해 법규에 맞는 정상 건물로 되살려 존치하자고 건의해 온 시민들의 목소리는 철거현장의 자욱한 먼지와 함께 허공에 묻히고 말았다.

 카사 델 아구아는 건축 초기의 에펠탑처럼 부정적 평가를 받은 것도 아니다. 환경·사람·풍토를 반영하는 레고레타의 건축세계를 잘 담아낸 작품이라는 찬사가 국내외의 건축 전문가들로부터 쏟아졌다. 철거가 되고 나면 다시 못 볼지 모른다고 생각한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그의 작품 중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건물이었기에 더욱 아쉽다. 100여년 전 파리의 지혜를 거울로 삼지 못한 우(愚)를 100년 뒤 이 땅의 후손들은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 중앙일보 2013.03.08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3/08/10485907.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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