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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공건축, 왜 최악 건축물이 됐나

김억

2월 5일자 동아일보에 ‘한국 현대 건축물 최고와 최악’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1∼5위의 건축물이 소개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최고의 건축물은 모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개인이나 민간 기업이 건축주인 사적(私的) 건축물이고, 최악의 건축물은 공공기관에서 발주한, 일반 시민들을 위해 계획된 프로젝트라는 사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외국의 공공건축물은 감동적인 도시 상징물이 된 사례가 많다. 절대왕권시대 유럽의 건축물은 섬세함과 화려함으로 시선을 끌며, 민주시민사회가 정착한 이후의 건축물에는 우아하면서도 시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철학이 상징적으로 담겨있다.


혁신보다 답습 유도하는 심사

반면 한국은 한 해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 명이 넘지만 현대 건축물을 보러 오는 이는 찾기 어렵다. 공공건축물의 경우 설계안 선발부터 시공에 이르는 과정은 외국이나 우리나 비슷한데도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먼저 한국 건축 설계자들의 역량이 외국에 비해 부족한 것이 아닌지 물어야 할 것이다. 업계에 소속된 필자의 견해를 밝히자면, 국내 건축인의 역량은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생각한다. 상위 그룹의 건축가들 중엔 선진국 최고 수준의 교육기관과 설계사무실을 거친 이들이 많다. 다만, 이들에게도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능력은 2%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 때문에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건축은 아직 국제적인 명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이 더 잘 팔리는 것과 별개로 스마트폰이라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발안한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추앙받듯, 감동을 주는 건축물을 지으려면 디자인 ‘개선’을 넘어서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공공건축물이 선정되는 절차를 의심해볼 수 있다. 공공건축물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다. 국내외 저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가장 좋은 설계안을 선택하면 선정된 건축설계안에 대해서 심의위원회가 다시 열린다. 심의위원회는 설계안의 공공성, 미학적인 가치, 기능적인 결함 등을 검토한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위원회가 검토한 공공건축물이 최악의 건축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반면 법규 준수 여부 등 기본적인 건축 심의만 받고 완공된 사적 건축물들은 최고의 건축물로 선정되기도 한다. 따라서 오히려 공공건축에 대한 다양한 심사 과정이 건축물을 향상시키기는커녕 예산만 낭비하는 것이 아닌지, 혹은 정성적인 건축에 대한 평가를 정량적으로만 객관화해온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공공건축물의 목표와 책임자가 불명확한 것도 문제다. 공모안을 선정할 때 건축물의 주인이 모호하다 보니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심사 과정에서 지나치게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고, 결국 설계안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두루뭉술하게 변질될 위험이 크다. 건축물의 사용 목적도 대부분 추상적인 선에 그쳐 있고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사용 목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이 때문에 진취적인 아이디어나 새로운 공학기술을 건축물에 적용하기보다는 방어적으로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태도가 반복된다. 


초보적인 건축 시스템 개선을

공공건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단 기존의 것에 안주하는 모습은 최근 지어진 서울시청사나 정부세종청사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공공건축물의 수준은 우리 사회와 건축 산업의 현주소이자 선진화를 평가하는 척도다. 한국의 건설시공 회사가 세계에서 몇 개 안 되는 초고층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건축도 다른 분야처럼 시스템적인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세계 수준에 걸맞은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감동적인 공공건축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특별히 지성과 양식이 있는 전문가 집단의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리더십이 요구된다.

- 동아일보 2013.03.12
http://news.donga.com/3/all/20130312/53626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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