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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힘, '스토리텔링'에 있다

이대현

이환경 감독의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관객 1,200만 명을 돌파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대성공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새로운 소재도 아니고 그리 잘 만들지도 못했다. 배우 연기에 의존하는 멜로물, 지능이 낮은 주인공의 영화는 숱하다. 군데군데 개연성도 부족하다. 애초 사회모순과 폭력에 대한 비판이 목적은 아니라고 하지만 여섯 살 지능밖에 안 되는 주인공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과정이 억지스럽다. 애틋한 부정(父情)으로 말하면 역시 교도소를 무대로 한 2009년의 영화 <하모니>의 모정(母情)이 더 진하고 감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7번방의 선물>의 주인공과 어린 딸의 만남에 웃고, 죽음의 이별에 눈물을 줄줄 흘린다. 이 영화는'사실'이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다. 관객들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느새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이야기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이미 2,5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다.

지금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 TV의 오디션프로그램도 출연자들의 음악에, 인생에, 대결과정에 대한 스토리텔링 없이 오직 노래실력만 겨룬다면 지금처럼 관심과 감동을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노래에 스며있는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아니었다면 정동진이 관광명소가 되었을까. 동해안에는 정동진보다 해돋이가 장관이 곳이 많다.

스토리텔링은 소설이나 영화, 연극, 뮤지컬 같은 언어적 예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림이나 춤, 건축, 음식, 게임 같은 비언어적 예술과 문화에도 있고, 또 있어야 한다. 같은 음식을 놓고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주는 의미와 가치의 차이는 <대장금>이 잘 말해 주었다. 넓게 보면 정치와 경제도 마찬가지다. 스토리텔링이 없는 정치와 정치인은 삭막하다. 좋은 정책만으로 국민을 감동을 시키지 못한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 영문학 교수인 브라이언 보이드는 <이야기의 기원>이란 책에서 왜 인간이 이야기에 탐닉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장식이 아니라 생활의 주축으로 본 그는 특히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인간진화의 매우 중요한 '적응'이라고 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유롭게 재구성한 경험과 상상한 미래에 관심을 갖고'공유'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야말로 서로를 관찰하려는 강렬한 관심이며, 타인을 이해하려는 능력이다. 때문에 이야기에 쉽게 감정이입이 되고, 그것으로 타인과의 공감의 폭을 넓힌다는 것이다.

픽션(허구)이라고 다르지 않다. 상상이나 꾸며낸 이야기도 결국은 사실과 인간경험의 바탕 위에 있다. 그래서'픽션은 사회적, 도덕적 감정과 가치를 끌어들여 협력을 키우고 우리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식으로 당면한 현실을 넘어 생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창조성을 촉진한다'는 것이 브라이언 보이드 교수의 설명이다. 소설과 영화들이 이런 저런 상상을 하지만 결국은 인간 공동체의 선을 위한 보편적 가치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토리텔링은 결국 타인과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여는 길일 뿐만 아니라, 문화 창조성의 바탕이 된다. 문화라고 늘 새로운 것만 추구하지는 않는다. 주제를 반복하고 변주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의 창조성은 모방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억압과 강요가 아닌 자유로운 상상력, 획일이 아닌 다양한 경험과 교육, 작은 것이지만 우리 고유의 역사와 전통의 절묘한 재조합에서 나온다. 그런 문화 예술이어야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다른 자원들과의 결합을 통해 산업으로서 경쟁력도 가진다.

지식기반사회가 되면서 창조가 화두인 시대가 됐다. 새 정부의 국정목표도 그렇다. 당연하다. 창조 없이는 국가의 발전도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창조는 다르게 보고 생각하는 능력인 창의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창의성을 길러주는 것이 문화다. 더 좁게 말하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자, 문화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좌우하는 '스토리텔링'이다.

- 한국일보 2013.03.13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3/h20130312210726243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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