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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만약 국립고궁박물관 지붕이 뚫렸다면

노재현

지난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색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하 1층 왕실의 회화실에 마련된 ‘일제 강점기 궁중의 일본 회화’전이다(5월 26일까지). 전시된 일본 작품은 딱 두 점. 교토파 화단의 대표적 인물로 동물화를 주로 그린 시미즈 도운(淸水東雲)의 매·곰 그림 병풍 세트와 작자 미상의 일본 가면극(노) 자수 작품이다. 눈 쌓인 겨울, 날개 펴고 소나무에 앉은 매와 새끼곰을 입에 문 어미곰을 묘사한 시미즈의 작품은 1910년께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수 작품도 20세기 초 궁중에 유입됐다고 한다.

 고궁박물관 관계자는 “두 점 외에도 일본 화가들의 작품 수십 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한·일 강제병합을 전후해 내한, 황실에서 활동한 이들의 것이라 한다. 이들은 조선총독부의 의뢰를 받아 순종의 어진, 궁중 장식화 등을 제작했다. 일제 침략은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부문에서도 속속 자행됐던 것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노라면 제국의 낙일(落日)에 대한 안쓰러움과 착잡함을 피할 도리가 없다. ‘불행했던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계기’라는 안내문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한편으로는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만약 일본인 절도단이 한밤중에 서울의 국립고궁박물관 지붕을 뚫고 들어가 시미즈의 그림과 자수 작품을 훔쳐 자기 나라로 도망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리타 공항이나 항만의 세관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뒤늦게 일본 경시청에 발각돼 체포되고 작품을 압수당한다면 말이다. 절도범이야 일본 국내법에 따라 처벌받겠지만, 일본 내 여론이 “원래 우리 화가가 제작한 문화재이니 돌려줄 필요 없다”고 아우성친다면? 당연히 한국은 반발 여론으로 들끓을 것이다.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침략 과정에서 제작된 미술품마저 자기들 것이라고 우긴다”고 할 것이다.

 사실 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일본인 작품은 입수 경위가 명확하지 않다. “스즈키 시미쓰로에게 금 200원을 하사하고 후지타 쓰구지에게 은제 주식 반기언 1개를 하사하였다. 어진(御眞·임금을 그린 그림)을 그린 노고를 치하한 것이다”(순종실록부록 4권, 1913년)처럼 대가를 치르고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얼마에 들여왔는지는 모른다. 만일 일본이 “당신들은 입수 경위를 잘 모르지만 작가가 일본인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니 돌려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나라를 통째로 삼킨 주제에 그림 몇 점 갖고 그러느냐”고 거칠게 받아쳐야 할까.

 지난해 10월 한국인 절도단이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의 가이진(海神) 신사 지붕을 뜯고 들어가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을 훔쳤다. 이들은 인근 관음사에서 관음보살좌상, 다른 신사에서 고려대장경도 몰래 갖고 나왔다. 용의자들은 “대장경은 곧바로 풀숲에 버렸다”지만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 관음보살좌상·금동여래입상은 일단 부산 세관은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경찰의 추적으로 두 점이 무사히 회수되고 절도단도 9명 중 8명이 붙잡혔다. 문제는 두 문화재의 앞날이다. 복장된 발원문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30년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초점이다. 부석사·신도 측은 “원래 우리 것인데 약탈당했을 테니 반환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환 소송에 앞서 일본에 돌려주면 안 된다는 반환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의 결정도 받아냈다.

두 불상은 지금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모셔져 있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사태는 장기화됐다. 그러나 정확히 683년 전의 유물이 언제 어떻게 일본에 건너갔는지 앞으로 정확히 밝혀낼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특히 금동여래입상은 갖고 있을 명분이 사실상 없다. “재판이 걸려 있기에 증거물로서 일단 소장하는 것”(허종행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이라는데, 당국도 여론을 살피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 궁내청에 있던 조선왕실의궤 반환에 앞장섰던 혜문 스님은 “금동여래입상은 지체 없이 반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님은 그러면서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부처님은 원래 무소유의 상징인데, 양측이 표상(表象)에 매몰돼 본질을 놓치고 있는 듯하다.”

 만일 절도가 없었다면 지금 같은 반환운동이 일어났을까. 이 지점에서는 솔직히 낯뜨겁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화재 반환과 별개로 도둑질은 도둑질이고 장물은 장물이다. 우리는 일본이 걸려들면 일반론에서 갑자기 특수론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특수론이 너무 판치면 정상적인 관계나 상식은 외면당하기 쉽다. 정작 부처님은 이번 논란을 보고 진작에 돌아앉았을지 모른다.
-중앙일보 2013.03.28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3/28/10668082.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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