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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숭례문의 분신

정종미

작년 말 도쿄국립박물관을 방문했다. 일어로 쓴 자필 편지를 보내고서야 겨우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이 바로 일본화보존실이었다. 좌식의 다다미 바닥 위에 화려한 에도시대의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수리자는 그 그림 위에 나무판을 돋워놓고 올라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박리된 안료를 다시 정착시키느라 주사기로 아교와 해초액을 투사하고 있었다. 금박 배경에 수레가 그려진 이 그림은 한때 화려함을 구사했으나 오랜 나이를 먹고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다. 마치 응급실에 실려와 의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급한 환자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인들과 함께 상설전을 둘러 본 뒤 우에노 공원을 거닐었다. 아름드리 나무와 고풍의 건물들은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공원 내 스타벅스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스타벅스는 미국 커피의 대명사이지만 이 카페는 나무로 지어져 일본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전통 경시해온 우리를 향한 경종

일본인의 전통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그리고 매우 선진하다. 특히 전통 안료에 대한 연구는 우리보다 50년 정도 앞서 있다. 일본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터이나 가장 결정적인 예로는 나라지방 호류지(法隆寺) 화재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친 중의 방화로 일어난 이 일로 일본인들은 많은 좌절감을 느꼈다. 호류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고 그 중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금당벽화다. 6세기 고구려인 담징이 그린 이 벽화는 소실되어 검은 그림자만 남게 되었다. 이 벽화를 소생시키는 일은 일본인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존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 벽화에 사용된 안료와 기법 등을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벽화를 건강하게 부활시켰을 뿐 아니라 오늘날 전통 회화의 맥을 이어가는 일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전통 회화에 사용된 천연 안료는 아름답고 선명한 색감과 뛰어난 내구성을 지녔으나 경제성과 채산성 등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일본화가 이 천연 안료에만 의존하면 사양길을 갈 것이라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전통 안료 대체용 인공 안료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경비를 투자했다. 

이렇게 개발된 인공 안료는 천연 안료의 한계를 극복해 주었고 이것의 등장으로 인하여 일본화는 서양 유화의 한계까지 뛰어넘는 기량을 발휘하게 되었다. 바로 벽화 소실로부터 발생한 전통 안료에 대한 탐구가 오늘날 일본 전통 회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었고 현대적 확장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일본화의 재료는 전통 재료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극복한 형태로 건강한 표현법을 구사해내고 그것이 현대미와 잘 조화되어 있다. 전통 예술의 건강한 현대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전통 회화의 맥을 잇는 한국화는 일본화와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 맥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그림뿐이겠는가? 문화재 전반에 걸친 열악함과 후진성은 전통문화 지킴이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日, 호류지 벽화 소실을 교훈삼다

숭례문에 대한 우리의 정서는 일본인이 지닌 호류지에 대한 그것 이상일 것이다. 숭례문과 호류지는 똑같은 화재 사건이고 자국민에게 똑같은 자괴감을 주었다. 그러나 후일 이 두 사건을 비교한다면 상징적인 면이 있을 것이다. 호류지의 화재만큼이나 숭례문의 그것 역시 그 이후의 성찰과 반성이 유사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숭례문 단청에 사용된 안료나 교(膠)가 일본산이라는 것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으나 이에 대한 다른 대안이 없으니 자괴감을 삼키고 복원은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러고서도 아무런 대안이나 비전 없이 지나쳐 버린다면 이미 한번 분신한 숭례문은 다시 한번 절규할 것이다.

숭례문이 사라진 날, 나는 TV를 통해 지켜보며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전통 회화의 계승자로서 무력감에 빠져 밤새 숭례문의 비명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전통문화를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재개발 등 편의성과 경제성만을 앞세워 온 우리들의 만행에 대해 국보 1호 숭례문은 기꺼이 분신한 것이다. 더 이상의 황폐는 용서할 수 없다고 모든 문화재를 대신해서 분신한 것이다. 

- 국민일보 2013.04.01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038464&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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