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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다

손철주

내 책상 위에 연필 두 자루와 만년필 하나가 있다. 연필 한 자루는 겉이 하얀데 깎으면 속이 까맣다. 흰 원피스에 검은 스타킹을 신은 여자마냥 섹시하다. 잡으면 여자의 다리를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어 연애편지 쓰기에 딱 어울린다. 또 한 자루는 독일제 스테들러다. 소설가 김훈이 쓰던 걸 뺏어 왔다. 노란 바탕에 검은줄이 쳐진 이 놈은 강고한 사내와 닮았다. 연필심이 종이를 튕겨내는 힘이 있어 전투적인 글을 쓸 때 알맞다. 만년필은 쓴 지 20년 넘은 몽블랑이다. 필촉이 갈라져 글씨가 툭툭 끊기는데, 파필의 묘미가 살아 있어 한시를 베낄 때 안성맞춤이다. 매끈한 감촉이 애인 허리에 팔을 두르는 설렘과 흡사해 몽블랑은 애물이 됐다. 내 연필과 만년필은 정겨운 페티시즘을 촉발한다.
시인 황지우가 조각 작품을 빚으면서 한 말이 있다. “흙 반죽을 주무르며 살을 느낀다. 살 것 같았다.” 그는 ‘촉각이 영혼을 발전(發電)시킨다’고 장담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필기구의 촉감은 필기의 내용을 장악한다. 글꼴과 글속이 한몸을 이루는 서예가 좋은 예다. 김훈은 노상 말한다.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온몸으로 쓰는 글은 필기구의 도움이 있어야 마땅하다. 글씨 쓰기, 곧 필기는 글자 두들기기, 곧 타자와 다르다.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쓴 글은 허공에 띄운 문장처럼 휘발할 것 같은 초조감이 든다. 실재감이 도통 안 든다. 깜박이는 커서는 변제를 재촉하는 빚쟁이 같다. 폰트의 무표정도 질린다. 필기는 글씨의 표정을 살려낸다. 굵고 가늘고, 빠르고 더디고, 강하고 약하고, 축축하고 마른 글씨의 모양을, 쓰는 이가 맘대로 연출한다.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고 그림은 표정을 짓는다. 관서지인(觀書知人)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지금은 퇴물 신세가 됐지만 필기구에 대한 옛사람의 아낌은 익애에 가깝다. 그들은 종이, 붓, 먹, 벼루를 ‘글 쓰는 집의 네 벗’이라 일컬었다. 벗 중에 하나라도 곁을 떠나면 상심했다. 대제학을 지낸 숙종 대의 김진규는 먹을거리가 떨어지자 좁쌀 몇 됫박을 얻으려고 금쪽같은 붓과 먹을 내주었다. 그는 ‘평생 남아도는 물건이 없는 서생이 하루아침에 두 가지를 잃었다’며 통탄했다. 당나라 회소는 초서로 유명한데, 그의 글씨는 지렁이가 소금밭을 지나간 자취와 같아 ‘미치광이 초서’로 불린다. 그는 몽당붓이 산더미를 이루자 무덤을 만들어주고 애도했다. 인조 대에 벼슬한 이현석 역시 ‘필총’(붓무덤) 앞에서 장례를 치른 사람이다. 영·정조 시절 이덕무는 한술 더 떠 붓무덤 곁에 파초를 심어 붓의 혼을 달랬다.

필기구를 애틋한 벗으로 삼은 문인이니 풍류는 절로 따른다. 퇴계의 제자 권호문은 벼슬을 버린 뒤 산기슭에 서실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 선비의 집은 가난이 끊이지 않고 선비의 벼루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 여름날 서실에 청개구리가 뛰어들었다. 그는 말한다. “벼룻돌 오목한 연지에 부어놓은 물에서 청개구리가 헤엄치니 이 또한 좋은 일! 미물이 비를 만난 교룡처럼 노니는구나.” 벼루 속에서 발길질하는 청개구리는 한소하되 안분을 아는 산림거사를 위로한다. 옛 문인들의 순정은 문방사우를 떠나지 않는다. 그들의 붓대는 손안에 그러잡은 자존이었다.

컴퓨터에 손글씨를 본뜬 글꼴이 많아졌다. 타자가 필기를 따라잡으려는 시도이자 글씨를 인격화하려는 욕망이다. 기계의 욕망이 희망이 될까. 컴퓨터와 살을 섞고 싶다 한 시인이 있었지만 복날 개 패듯이 자판을 두들기면 교합이 안 된다. 살가운 필기의 촉감은 겨우 살아 있는 아름다움이다.

- 한겨레 200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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