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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책읽기 풍경

손철주

옛 그림에 책 읽는 사람을 그린 장면이 더러 있다. 그런 그림을 보면 독서의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독서는 혼자 해야 맛인데, 조선 후기 화가인 강희언과 유숙은 유별난 그림을 남겼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글 읽는 장면을 그렸다. 턱을 괴고 누워 책을 보는가 하면 시라도 음송하는 양 먼산바라기를 하거나 글쓰기에 나선 인물들이 그림 속에 한꺼번에 등장한다. 이들에게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 풍류처럼 보인다. 시쳇말로 ‘열공’ 모드가 아니라 품격 높은 놀이다. 독서는 한갓진 여흥이 됐다. 화가 윤덕희는 드물게도 아녀자가 독서하는 장면을 그렸다. 지그시 눈을 내리깔고 손가락으로 글자를 더듬으며 책을 읽는 모습이 무척 엄숙하다. 이 여인의 책읽기는 한가롭긴 해도 풍류는 아니다. 그렇다고 출세를 노리는 독서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수신에 가깝다.
독서가 마냥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조선 말 유운홍은 책읽기의 고단함을 그린 화가다. 젊은이가 걸어가며 독서하는 그림인데, 땔감을 굴비 두름처럼 엮어 어깨에 멘 사내는 책 읽는 데 혼이 팔린 모습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한나라 무제 때 승상을 지낸 주매신이다. 집안이 가난해 나무를 팔아 끼니를 마련했다는 그는 한심한 책벌레로 아내에게 구박받았고 밤낮으로 책만 읽다 종당에는 이혼을 당했다. 절치부심한 끝에 그는 태수 자리에 올라 금의환향한다. 이 뻔한 성공담 속에서도 그의 이름이 회자되는 이유는 회개한 아내가 용서를 빌 때 이를 물리치면서 한 말 때문이다. 그가 내뱉은 말은 ‘엎지른 물은 다시 담기 어렵다’였다. 주매신의 입신양명은 책읽기에 힘입은 바 크고, 그에게 독서는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는 희망이었다. 유운홍의 독서 그림은 고진감래의 교훈을 담았다.

오원 장승업도 책 읽는 그림을 남겼다. 저 유명한 <고사세동도>가 그것이다. 제목은 ‘선비가 오동나무를 닦다’는 뜻인데, 숨은 이야기가 재미있다. 마당 안에서 선비는 독서삼매에 빠져 있고 그 곁에서 시동이 수건을 들고 부지런히 오동나무를 닦고 있다. 그림 속 선비는 원나라 말기의 시인이자 화가인 예찬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일찍이 학문과 예술에 심취해 가산을 털어 골동과 악기와 서책을 사 모았다. 그는 누각을 세워 그 안에 수천 권의 서책을 쟁여놓고 일일이 교정을 봤다. 탈속한 선비답게 그는 늘 책을 읽거나 시를 지었다. 그에게는 몸에 밴 버릇이 있었다. 병이 될 만큼 심한 결벽증이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목욕했다. 세수를 할 때는 물을 몇 차례나 갈았고 의관도 하루에 서너 번씩 정제했으며, 심지어 정원에 있는 괴석이나 나무도 시종에게 시켜 하루종일 닦아내도록 했다. 이 결벽증이 오원이 그린 그림의 모티프가 된 것이다.

음풍농월로 지샌 예찬에 비하면 오원은 파란곡절을 겪은 잡초였다. 오원은 문자에 어두운 화가로 남의 집을 전전하며 끼니를 때웠다. 타고난 그림 솜씨 하나로 낮은 직급을 얻었지만 그것도 잠시, 인생을 제멋대로 산 인물이었다. 시속과는 문 닫아 건 예찬의 일화를 저잣거리 화가인 오원이 그린 것은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은 닮았다. 예찬은 유용성의 책읽기에서 벗어나 바라는 바 없는 무위의 독서를 추구했고, 오원은 데데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일탈과 방임을 좇았다. 멋부리기 독서가 있는가 하면 제 몸을 닦기 위한 독서가 있고 출세를 위한 독서가 있다. 심지어 하릴없는 독서도 있으니 옛 사람들이 남긴 갖가지 독서 풍경이 다채롭다. 바야흐로 청량한 가을인데, 무엇을 도모하며 책을 읽을 것인가.

< 한겨레신문 2008.11.08 삶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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