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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신하순

진실한 마음 담긴 작품이 감동 전달
새해는 자신 돌아보는 여유 가지길


내가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근원 김용준(1904∼67) 선생의 수필집 ‘근원수필’(近園隨筆)을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동료가 작은 문고판을 구해 보내왔다. ‘근원수필’에 보면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는 운치가 있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수묵화처럼 그윽하고 고담한 수필집을 읽다 보면 집 가까운 어느 집에 피어있는 매화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피폐한 식민지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글귀를 보며 ‘현대인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도 바빠졌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을미년을 맞으며, 이참에 교내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근원의 매화 그림을 만나 봤다. 그리 급하지 않게 툭툭 쳐 가볍게 그린 듯한, 그러면서도 느리지 않은 필치로 그려낸 매화 줄기와 꽃을 만난 것이다. 묵향과 함께 그의 채취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감이 가득하고, 삶의 여유가 묻어났다. 매화 그림을 보며 무뎌졌던 감성이 자극받고 지친 마음도 위로받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 받았다.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그중 화가의 경우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진솔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타인을 감동케 하는 원동력이 된다. 화가가 그림에 자신의 개성과 감성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다른 사람과도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반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에는 위선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엔 위선과 거짓으로 혼선이 빚어지고 부조리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다.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예술가는 끊임없이 영혼을 정화(淨化)하고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가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가식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게 된다. 결국 위선과 허세는 창의성을 악화시키게 된다. 위선 뒤에 숨은 창의성은 영혼 없는 예술가를 낳는다.

대부분의 예술가가 창의성이라는 큰 벽 앞에서 자신의 미적 언어가 초라해 보여 스스로 상처를 받고 힘겨워한다. 그러나 창작은 모방을 통해 더 나은 창조적 산물로 탄생할 수 있다. 모방을 통해 자신의 미의식이 거듭나고 새로운 자신의 언어를 찾게 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불리는 피카소도 “뛰어난 예술가는 모방을 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했다. 피카소는 자라면서 아버지의 그림을 시작으로 일생 동안 거장들의 그림을 숱하게 따라 그렸다. 피카소가 보인 천재성의 출발점은 ‘모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현대 회화의 문을 열어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피카소는 모방을 통해 자신만의 새롭고 독창적인 화풍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창의성은 예술의 본질이다. 창의성은 인간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힘도 있다. 예술은 영혼을 맑게 정화시키고 묘하게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창의성과 예술은 삶의 여러 가치 중 하나이다. 인간의 창조행위는 좁게는 예술로, 넓게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현대 들어 문화적 대중화가 문화 형태의 풍부함을 가져다 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중예술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분야에서 예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도록 철학적 가치와 문화적 감수성을 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전예술도 보다 많은 사람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틀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문화 활동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보다 나은 삶의 풍요를 위해 누구나 자신의 감성을 한껏 느끼며 즐길 수 있는 격조 높은 문화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

창의적인 발상은 생각의 여유에서 나온다고 한다. 계몽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산책처럼 창의성은 여유로움 속에서 비로소 발현되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더욱더 사색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의 시간을 가져봄이 어떨까.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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