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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문화재와 사랑싸움

손철주

토끼 머리와 쥐 머리 모양의 청동 조각 두 점 때문에 중국과 프랑스가 시끄럽다. 크기라 해봤자 사람 얼굴만 한데, 두 나라가 주고받는 언사로 보면 주먹이라도 오갈 것 같다. 이들 청동상은 원래 청나라 황제의 별장인 원명원에 있었다. 2차 아편전쟁의 끝 무렵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빼앗아 갔고, 패션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손으로 넘어갔다가, 며칠 전 파리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됐다. 우리 돈으로 270억원씩에 팔렸다. 구리로 만든 세상에서 가장 비싼 토끼와 쥐가 탄생한 셈이다. 중국 정부는 ‘약탈 문화재를 경매 처분한 처사’에 불끈했다. 어느 중국인은 “프랑스인들은 중국이 뼈에 사무치는 일이 있었는데도 전혀 모른다”며 목청을 높였다. 크리스티는 은근히 약 올리는 기색이다. “역사적 유물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합법적 기회가 경매다.” 얘긴즉슨 ‘그렇게 소중하다면 응찰에 뛰어들지 그랬느냐’는 투다.
이번 경매를 주선한 피에르 베르제는 이브 생 로랑이 살아 있을 때 사업 동반자였다. 그는 경매 이익금을 에이즈재단에 기부하기로 작정했다. 제 주머니를 채우려는 경매가 아니란 뜻이다. 그 역시 중국의 흥분에 대해 크리스티처럼 얼른 들으면 모로 가는 듯한 대답을 했다. “모든 낙찰자들이 이번에 사들인 예술품을 진정으로 사랑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그는 뺏긴 자의 분노에 고개를 돌리고 사들인 자의 안목과 애정을 추어올린다. 유출 문화재를 둘러싼 시비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판정이 드물다는 사실을 그는 아는 모양이다. 중국은 문화재 약탈의 야만성을 애써 들추지만, 프랑스는 예술품 거래를 사랑싸움에 견주고 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하듯 사랑하는 자가 예술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원명원의 청동상을 프랑스보다 중국이 덜 아낄 리가 있겠는가. 돈을 덜 내는 분노보다 돈을 더 치른 사랑이 이겼을 뿐이다.

재계에서 은퇴한 미술애호가 한 분을 아는데, 경지에 오른 안목과 깔끔한 처신으로 존경받는 분이다. 미술품에 쏟는 그의 정은 철철 넘친다. 그는 젖먹이 어린애 주먹만 한 ‘백자 개구리 연적’ 하나를 총애한다. 깜찍한 앉음새에 두 눈과 콧구멍에 코발트색을 입힌 도자기다. 그는 이 연적을 두고 “통통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몸매에 똥그란 눈망울이 부잣집에 갓 시집온 새색시 같다”고 말한다. 개구리 연적이 새색시 같다니, 비유가 생경하지만 그의 상상은 더 나아간다. “수줍음이 많아 고개 숙인 채 행동거지를 반듯이 하는 모습이다. 시부모를 찾아온 손님이 들어서자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인사하고, 연두저고리 다홍치마 위에 하얀 행주치마를 두른 채 다과를 준비하는 맵시가 연상된다.” 무릇 물태(物態)에 근거해서 인정이 나온다. 예술 사랑이 골수에 스미지 않은 사람은 이런 ‘의인화’가 낯설 것이다.

사랑하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린다. 말 못하는 작품이 피붙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알게 되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못 말린다. 연적뿐 아니라 그분은 집에 있는 ‘백자 달항아리’를 향해 큰절을 올린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문갑에 올려둔 달항아리에서 장엄하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솟구쳐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는 것이다. 사랑에 대상과 경계가 없고, 물정 모르는 이는 사랑을 못한다. 골동품에 집착하는 사람을 흉보는 말로 ‘완물상지’(玩物喪志)라고 하지만, 마음을 빼앗겼다는 말은 집착이 아닌 사랑에 빠졌다는 뜻이다. 집착으로 문화재를 들여오긴 어렵다. 중국은 프랑스와 사랑싸움을 벌여야 한다. 긴 싸움이지만 결국 사랑이 판가름한다.

-한겨례 2009.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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