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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란, 삶은 예술

김준기

‘삶은 계란’이라는 말이 있다. 삶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 ‘삶은 계란’이라는 말로 웃어넘기는 재치와 여유가 묻어나는 말이다. 정원이 아닌 타원, 껍데기와 알맹이, 노른자와 흰자 등의 구조나 관계를 가진 계란을 삶에 빗대어 ‘삶=계란’이라고 유추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의 핵심은 삶이라는 복잡다단한 상황에 대해 불가지(不可知)의 입장을 밝히는 데 있다. 그만큼 삶이란 어려운 문제다.

‘삶은 예술’이라는 말도 있다. 이 경우에는 삶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 ‘삶=예술’이라는 명제는 훨씬 더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예술이라는 매우 난해한 개념을 삶에 빗대어 놓고 보니 간극이 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과연 삶을 예술에 갖다 대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삶과 예술이, 또는 예술과 삶이 서로 연관을 갖고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의 삶이 과연 예술을 끌어안을 만큼의 여유와 풍요를 지니고 있는가?

인간의 삶은 사회를 매개로 존립가능하다. 예술은 사회 현상의 하나이다. 사회는 개인이 아닌 복수의 인간이 만들어 낸 집단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인간 삶의 집합체인 사회 속에서 존립가능하다. 예술과 사회는 상동성을 갖는다. 사회의 정황과 예술의 면면이 서로 닮았다는 얘기다. 종교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중세 사회와 고딕이라는 예술은 수직상승이라는 동질의 코드를 가지고 있다. 불교사회인 고려의 화려함과 유교사회인 조선의 절제의 미학도 사회와 예술이 구조적으로 동행한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는 예술이 인간의 삶을 그 원천으로 한다는 점을 확인하게 한다. 요컨대 예술은 삶으로부터 나왔다. 말하자면 ‘예술은 삶’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명제의 앞뒤를 바꿀 수 있을까? ‘삶은 예술’이다? 어려운 문제다. 예술이 삶을 배반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으로부터 나온 예술이, 인간 삶의 총체인 사회와 동행해온 예술이 언제부터인가 삶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독자행보하기 시작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예술일 수는 없을까? 삶 그 자체가 예술일 수 없을까?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명제도 결코 삶을 도외시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와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나온 명제이지 예술을 삶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속류 예술지상주의자들을 위해서 나온 말이 결코 아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 듯이, 삶은 예술을 낳고, 예술은 삶을 살찌운다. 창의와 상상, 일탈과 환상, 성찰과 소통이 넘쳐나는 예술적인 삶을 생각한다. 삶 그 자체가 예술인, ‘삶은 예술’을 다시 생각한다.

-대전일보 2010.7.22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9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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