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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콘서트]이상과 이반

김지연

올해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 인간, 난해한 작가로 꼽히는 동시에 한국 현대문학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천재작가로 대중의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문인 이상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하는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거나 준비 중인데, 여전히 그의 시에 대해서는 문학계의 전문가나 일반인 할 것 없이 난해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지금도 그러하니, 1930년대 발표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당혹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비상식적인 문법, 이해할 수 없는 기호 등으로 이루어진 ‘오감도’를 이태준의 주선으로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신문사에 온갖 투서를 넣었다고 한다. ‘미친놈의 잠꼬대’라는 비난은 그나마 양반이고, 신문사에 불을 질러야 한다는 둥, 작가를 죽여야 한다는 둥 사람들은 한 예술가의 작업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가차없이 쏟아부었다. 끝없이 밀려드는 투서에 결국 30회 예정의 연재는 15회 만에 멈추었다.

항상 사직서를 품고 다니면서 이 시의 연재를 온전하게 마치고 싶었던 이태준 역시 포기해야 했다. 이 사건이 ‘여론은 강하다’는 교훈을 전해주는 사례인지, 시대를 앞서간 가치는 결코 여론의 이해를 받을 수 없다는 교훈의 사례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에피소드는 이상의 작품세계와 그의 삶을 더욱 신화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를 비난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짧은 안목’을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상은 오늘날 한국문학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인물로 자리매김했으니 말이다. 이를 보면 예술에 대한 ‘다수’의 평가란 참 허망한 것 같다.

주변적 상황을 떠나, 당시의 이상 당사자만을 생각해본다면 그는 틀림없이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자신의 작업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우매한 범인쯤으로 치부하여 자신의 상처를 걷어냈을지도 모르지만, 작업을 그처럼 철저하게 거부당한다는 것은 자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으니, 이 경험을 떨쳐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관람자의 입장에서야 그가 단지 예술가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을 참고 수용해야 할 까닭이 없으니, 작가는 그에 대한 갖가지 반응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시련을 겪더라도 흔들림 없이 작업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알리고, 이를 매개로 소통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 같다. 그래서 혹자는 예술가로 사는 것을 ‘천형(天刑)’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얼마 전, 도라산역 벽화 철거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또 한 예술가가 겪었을 상처에 마음이 복잡했다. 작가 이반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통일부의 요청으로 도라산역 통일문화광장에 설치했던 15점의 벽화가 ‘민중적이며 어둡고 칙칙하다’는 관광객·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인 관계당국에 의해, 작가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철거된 것이다. 이는 아주 폭력적이고 무례한 태도다. 그는 ‘내 인생의 모든 작업이 온통 소멸되고 파괴된 것 같은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의 배경을 둘러싼 온갖 복잡하고 추악한 이해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작가의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을 참고, 분노를 삭이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을 대신해서 작가 이반은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 예술가가 존재해야 하는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경향신문 2010.9.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9032157425&code=9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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