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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광화문 현판 균열 논란

노형석

[울림과 스밈]

한국 전통 건축에서 현판은 명칭인 동시에 건축물을 인격화시키는 요소다. 현판 하나로 건물 품격과 만듦새가 그대로 드러난다. 조선시대 나라 건물의 현판을 쓸 때 엄격한 법도에 따라 명필이나 중신 중에 서사관(글씨 쓰는 직책)을 정해 공을 들였던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었다. 고건축 연구자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현판만 보면 건축물의 나머지를 다 알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나라의 얼굴이라는 광화문 현판 균열 원인을 놓고 불거진 논란은 이런 전통에 비춰 적이 민망스럽다. ‘화룡점정’에 해당하는 현판의 본질적 의미를 젖혀둔 채 8·15 경축식과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라는 국가 이벤트에 맞춰 현판을 급조한 정황이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

당사자들의 해명은 계속 바뀌고 있다. 문화재청 쪽은 애초 균열이 나무의 팽창과 수축에 따른 자연현상이라고 밝혔다가, 학계에서 덜 마른 나무를 쓴 것이 확실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현판 교체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슬그머니 견해를 바꿨다.

복원 총책임자인 신응수 대목장과 현판 작업의 실무책임을 맡은 오옥진 각자장 쪽도 말을 번복하고 있다. 현판용 육송을 제공한 신 대목장은 “3년 이상 충분히 말린 나무를 썼다, 별문제 없다”고 주장했지만, 논란이 번지자 언론에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 사비로 새 현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오 각자장도 현판 균열 사진이 공개된 직후 “덜 마른 나무를 쓴 것”이라고 했다가, 다음날 “덜 마른 나무라면 작업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180도 해명이 달라졌다. 접착력 강한 본드로 현판 조각을 붙여 균열이 심화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오씨는 “전통풀 아교를 썼다”고 했지만, 함께 작업한 전수조교 김각헌씨는 “목공 본드를 일부 썼다”고 엇갈린 말을 했다.

지금까지 정황만 봐도 ‘주먹구구식’ 작업이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는 어렵지 않다. 오 각자장 쪽은 6월1일 신 대목장에게 나무를 받아 두달여 만에 현판 짜기, 글씨 새김 등의 작업을 마쳤다고 했다. 학계의 지적대로, 현판 나무의 수분 함량인 함수율을 분석해 건조 상태를 파악하는 작업은 없었다. 장마철까지 낀 작업 기간 동안 장인들의 ‘감’에만 의존해 현판을 올렸다가 화를 부른 셈이다.

현판 파동은 예측 불가능한 사태까지 대비해야 하는 문화재 복원의 기본 원칙이 무시된 데서 일어난 일이다. 나무 건조는 쉽지 않다. 나무는 대기와 호흡하기 때문에 겉으로 바짝 말라도 내부 수분 함량은 외부 대기 변화에 따라 계속 바뀐다. 학계 전문가들을 복원 과정에 함께 참여시켜 최적의 목재 상태를 짚어내는 과학적 분석을 병행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작 문화재청의 고민은 그런 쪽이 아닌 것 같다. 문화재청은 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장인과 목재학자들이 참석한 자문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현판을 내려 정밀조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부실 현판의 배경이 된 G20 행사에 사후 대책까지 눈치를 보는 격이다. 웃지 못할 문화재청 주연의 ‘코미디’다.
<-한겨레신문 2010.11.11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80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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